물 흐르듯.... 그런 듯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의 마련

by 김필필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 주변과 환경이 누군가에 의해 이미 마련되어 진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가끔 일이 술술 잘 풀리기도 하고, 우연인듯 아닌 듯한 일들의 경과로 인해 뜻밖의 결과를 맺기도 하고... 잘 맞춰진 테일러드 양복처럼 직소퍼즐의 한 조각처럼 정확하게 필요한 시점과 필요한 공간에 누군가가 또는 무언가가 나타나기도 때론 사라지기도 한다. 세상에 오로지 나뿐인 젋음으로 가득찬 육신은 미쳐 그 이면을 들여다보지 못할진데, 지금의 내 육신은 이미 젊은 혈기가 빠져나가고 세상에 대한 관조가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터라 하루하루의 의미 또한 남다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누구에게나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고, 그런 인간의 본능적인 이면을 들춰낸 나와 동지들은 우여곡절 끝에 호주로 미지의 경로를 설정했다. 우리 나라와는 전혀 다른 학제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지라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검색이 필요했다. 친구의 지인이 살고 있는 호주의 소도시로 터를 정하고 아이들 학교를 검색하고 유학원을 알아봤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양질의 컨텐츠를 가려내고 그 중에서 우리에게 적절한 내용을 추려내는 어마어마한 시간 속에 우리는 이미 지쳐갔다. 이미 어떻게든 해외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로 작정한 마당에 우리의 살길은 정보뿐이었다. 다행히 친구의 지인이 그 지역의 학교와 살 집을 알아봐주기로 하였고, 덕분에 우리는 호주에서 필요한 것들, 꼭 가져가야할 것과 조심해야할 것들, 다양한 사례들을 수집하여 정보를 공유하였다. 호주 행을 결정하고 석 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검색과 수집과 결정과 번복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더디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우연히 방문한 블로그에서 우리가 살기로 한 지역에서 일 년을 살았던 분을 알게 되었고, 그 분과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분 또한 친구와 자녀들과 동반하여 호주에서 일 년을 생활하신 분이었고, 그 분의 자녀들이 다녔던 학교가 공교롭게도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공립학교였다. 게다가....... 호주에 사는 친구의 지인과 다리 건너 알고 있는 사이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지금 호주에서 자주 외치는 한 마디를 처음으로 외쳤던 순간이었다. "What a small world!!"


'우연'이라는 단에에 '겹치다'라는 다른 의미가 있었던가? 우연은 가끔 겹치기도 하고 겹쳐진 우연은 작은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가본 적도 없는 호주 땅에 집과 학교를 알아보고 삶의 터전을 닦는 일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구글지도와 검색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녹록치 않았다. 그런데 마침 친구의 지인이 알아봐준 학교에서 입학 허가가 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거리에 알맞은 크기와 가격의 집을 렌트하게 되었다. 심지어 외국인에게는 렌트도 쉽지 않다는 글을 읽은 뒤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그리고 지인의 세컨드 하우스의 세입자가 갑자기 집을 빼게 되어 그 곳의 가구며 생활용품을 헐값에 넘겨받게 되다니.......그렇게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세팅이 완성되어 가고 우리가 주인공이 될 호주 생활이 성큼 다가왔다.


석 달...... 100일이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2년여의 호주 생활을 준비하였고, 우연과 작은 기적들로 차곡차곡 켜켜이 우리의 큰 무대를 메꾸어 갔다. 준비하는 동안에는 그저 운이 좋았다. 신기하다를 연발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주의 기운이, 누군가의 큰 힘이 우리를 이끌었던 게 아닐까?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계획하고 준비하듯이 100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호주는 그저 우리와 동떨어진 대륙의 한 나라로, 해외 생활은 그저 누구나 꿈꾸는 신기루로, 휴직은 그저 궁상맞은 월급쟁이의 달콤한 꿈으로만 여겨졌는데..... 그저그랬던 그것들이 누군가의 마련과 무언가의 이끌림으로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천천히, 급하지 않게 하지만 어눌하지 않고 적절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아니, 우리가 찾아간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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