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옆에서 아들이 물었다. "엄마, 왜 나는 매일 어린이집 가고, 할머니는 회관에 가고, 할아버지는 운동을 가고, 엄마, 아빠는 학교에 가야 해요?" 우리 아들은 38개월을 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아들에게 언뜻언뜻 입술만 움직이고 뭐라고 뚜렷하게 해 줄 말이 없다.
유아기에 호기심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답변은 양 뇌의 균형 잡힌 발달을 도을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고, 주고받는 질문과 답변 속에 엄마와의 친밀감 또한 깊어지리라..... 만.... 어서 빨리 입술을 움직여 말을 뱉어내어야 하건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나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왜 그래야 하지? 38개월의 인생을 산 어린 사람의 철학적인 질문에 38년 가까이 산 어른 사람이 할 말을 잃었다. "어... 다 자기 할 일이 있는 거야. 우리 재유는 어린이 집 가서 친구도 만나고 공부도 하고, 엄마랑 아빠는 일을 해야 우리 아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주지~"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 듯..."매일매일매일매일... 이렇게 나랑 놀아주면 안 돼? 왜 매일매일매일 가야 해?" 글쎄... 왜일까? 먹고살기 위해서? 자아실현? 자기 계발? 아님... 사회봉사와 의무감? 모두가 답일 수도 있지만, 모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두려웠다. 모두가 그럭저럭 한 이유는 되지만, 완벽한 이유일 수 없잖아? 왜 매일매일을 소풍처럼 놀아줄 수 없는 걸까? 갑자기 일하는 엄마의 슬픔이 밀려오는 듯하다가 아~ 놀고 싶다... 하는 백수 심리가 꿈틀댄다.
뭐 비싼 스테이크 대신 소박한 집 밥에 김치, 나물 정도만 먹고 산다면.... 백화점 매장 멋진 마네킹이 입은 옷 대신 마트 매대 위에 누워 있는 옷들로 옷장을 채운다면... 럭셔리한 해외여행 대신 집 앞 공원에 돗자리 깔고 누워 빈둥댄다면... 매일매일 소풍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삶의 질이 떨어지는 걸까? 삶의 질의 문제는 객관적인 잣대가 아닌 개개인의 내적인 가치관에 의한 것일까? 그렇다면 내 안의 기준은 어디에 맞춰져 있는 걸까?
그동안 사회가 제공하는 물적, 인적 인프라를 활용하여 나름 깔끔한 경력과 배경을 장만해 온 사회인으로서의 기준인가? 아니면 나라는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38개월 아들을 둔 엄마의 기준인가? 내가 그 깔끔한 경력의 지성인인데? 동시에 워킹맘이고, 직장에서는 능력 있다고 인정받는 여성인걸? 어떻게든 맞춰 온 사회적 틀과 가치 관점에 따라 내 안의 그 무엇이 나 닮아 또 우유부단하게 움직이지나 않았나 심히 걱정되는 가운데... 내가 바라는 게 진정 뭐지?라는 원초적 물음에 또 한 번 흔들린다. 아들과 놀고 싶다. 매일 일하기 싫다. 아침에 빨리 일어나기 싫다..... 그럼 한 번 마음껏 놀아볼 거야? 그것도 확신 없는 망설임뿐....
직장 때려치우고 여행 가서 만들어온 여행책자 보면서 부러운 탄식을 연발하고, 사표 던진 그놈, 또 그놈이 냈다는 카페나 레스토랑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그들의 놀이를 향한 자유가 부러운 건지, 아니면 그들의 용기가 부러운 건지.... 아... 아리송해~ 나도 한 번 질러놓고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