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왔을까? 생각...

by 김필필

늘 그랬던 것 같은 사실이 언제부터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부터 어떤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는지, 언제부터 생각할 때 다리를 떨거나 하늘을 쳐다보았는지 구체적으로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해서 그게 언제부터 어떻게 나의 생각과 습관으로 자리 잡았는지 관심이 없었고, 생각해 볼 이유도 없었다. 그림을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왜 아이들이 그림을 좋아했으면 좋겠는지도, 나는 원래 그림을 좋아했는지 아니면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단편적인 몇 장면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나는 늘 가족들 사이에서 또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 사이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애, 손재주 좋은 애, 미술 잘하는 애였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좋았고, 어렸을 적 나의 기억에 나는 늘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들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새 학년에 올라가기 전 학교에서 교과서를 나누어 주었다. 딸 셋이 모두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날이면 우리 집 거실에는 다음 학년에 필요한 새 교과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매년 그렇게 나는 동생들과 나의 새 교과서에 새 옷을 입히곤 했다.

단독주택이었던 우리 집은 거실이 너무 추워 거실 중앙에 난로가 있었고, 난로 위에는 늘 물 주전자나 간식거리를 구워 먹던 작은 은박 접시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카펫이 깔린 바닥은 난로의 열기가 미쳐 닿지 않아 제법 차가웠지만, 널찍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나는 두툼한 방석을 깔고 거실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인 교과서들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위, 아래 내복을 입고 털양말까지 신었지만, 손은 조금 아렸다. 난로 가까이에서 몸을 녹이고 손을 비벼 열을 내어 가면 얼마간의 시간은 무언가를 하기에는 충분했다. 층층이 쌓인 교과서는 크기가 제각각이었고, 해가 지난 빳빳한 하얀 달력들을 교과서의 크기에 맞게 재단하는 일이 첫 번째 일이었다. 달력의 표면은 빳빳하고 매끄러웠다. 하얗고 차가운 느낌의 달력 표면을 잘 드는 가위로 한 번에 자르기 위해서는 가위 날의 방향을 목표 지점을 향해 고정하고 양날의 기울기를 알맞게 조절해서 정확한 힘과 속도로 한 번에 종이를 가로질러야 했다. 엄마한테도,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고서도 나만의 경험으로 왠지 전문가의 기술을 터득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교과서의 크기와 수대로 깔끔하게 재단된 달력을 준비하고 나면 어느새 손이 얼어 굳어 있었고, 또 얼른 난롯가에서 손을 녹이고 비비면서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채 녹지 않은 손 그대로 제자리로 돌아가 두툼한 방석에 앉아 달력 위에 교과서를 올리고 표지를 하얀 달력으로 감싼다. 모서리에 맞추어 달력에 손톱으로 자국을 남기면 두꺼운 달력이 훨씬 쉽게 접어져 깔끔한 책 표지가 되었다. 책의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는 부분은 달력을 사선으로 잘라주어 서로 겹치지 않게 해야 두께가 일정해진다. 또 책 등과 표지 사이는 칼로 살짝 오려내어 자연스럽게 책을 넘길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 어느 한 곳 치우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손톱과 손끝으로 두꺼운 달력을 책의 모서리와 책 등의 모양에 맞게 잘 접어 두고 적당한 크기의 테이프를 뒤집어 동그랗게 말아 준비하면 겉에서는 보이지 않게 깔끔하게 책과 달력을 접착시킬 수 있다. 정확한 크기로 재단된 달력으로 교과서 표지를 깔끔하게 감싼 후 정확하게 잘라낸 모서리와 보이지 않지만 깔끔하게 접착된 테이프로 고정된 마무리 부분을 볼 때면 아무도 모를 뿌듯함과 희열을 느꼈다.

한 권, 한 권 조금씩, 조금씩 반듯한 책들이 쌓여가는 것을 보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고, 교과서 표지 싸는 작업은 자주 하루를 넘기곤 했다. 완성된 책 표지에 교과서의 제목을 쓰는 시간이 되면 마음이 경건해졌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글씨의 획이 달라지거나 비뚤어지게 되고 그럼 모든 작업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 가지 색깔밖에 없는 매직을 나름대로 교과서의 성격에 맞게 분류하여 준비했다. 이를테면 국어는 검정, 수학은 파랑, 미술은 빨강, 또는 검정과 파랑, 검정과 빨강 등으로 조합을 하기도 하면서 색을 나누는 내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 교과서 속표지의 제목을 수십 번 확인하면서 쓸 준비를 했다. 겉표지 달력의 하얗고 반들반들한 표면 위에 위와 아래의 적당한 여백을 두고 오른쪽과 왼쪽에 가능하면 정확한 여백을 만들기 위해 쓰면서도 글씨의 크기와 자평을 조절했다. 국어 교과서에는 궁서체를, 미술 교과서는 그림을 곁들인 예쁜 글씨체를, 수학 교과서에는 고딕 양식의 글씨체 등을 고안해 내고 쓰면서 표지를 디자인하고 다 쓴 글씨 주변에는 세 가지 색깔로 밑줄을 긋거나, 상자를 넣거나, 구름 모양으로 교과서 제목을 감쌌다. 복잡하고 정교한 작업들이 마무리될 때쯤이면 목이 굳어 너무 아팠고, 다리는 저려 움직이기 불편했다. 손가락들은 얼어 굳어 있고 손가락 끝은 무뎌져서 감각이 없었다. 하루 종일 말도 하지 않고 먹지도 않은 입 안은 바짝 말라 있었고, 온몸의 관절들이 움직임을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우두둑 둔탁한 소리를 내고 삐걱댔다. 마지막 책의 글씨를 마무리하고 천천히 몸을 움직여 일으키는 속도는 영화의 느린 화면을 보는 것처럼 느렸고, 몸의 관절과 마디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기지개를 켜면 너무나 상쾌하고 개운했다. 몸을 한껏 펴고 내려다보면 어디서 왔는지 모를 종이 조각과 먼지들이 온몸에 붙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들을 툭툭 털어내면 모든 작업을 마친 실감이 났다. 마치 다시는 이 힘들고 지루하고 똑같은 반복 작업을 하지 않을 것처럼 힘차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매 학기가 시작되면 늘 똑같은 자리와 자세로 나는 그 자리에 앉아있곤 했다.

그렇게 완성된 교과서는 비록 눈부신 하얀 달력에 투박한 검정, 파랑, 빨강의 세 가지 색으로 장식된 책 표지였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책 표지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어디에든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과 달력을 준비하고 재단과 표지 작업 등의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면서도 늘 새롭고 즐겁고 재미있었다. 딱 맞춰 잘려 나가는 종이를 보고도 즐거웠고, 손톱이 닿고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두꺼운 달력을 접어대도 재미있었다. 책 제목에 어울리는 매직펜의 색깔과 글씨체를 고민할 때, 한 획 한 획에 심혈을 기울여 글씨를 쓸 때도 전혀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으레 새 교과서를 받아오면 내가 모든 표지를 싸서 동생들에게 나눠주는 걸로 생각했고, 예쁘고, 단정하게 잘 싸인 교과서를 보신 부모님의 칭찬과 동생들의 기쁜 얼굴은 하루, 이틀 고생을 싹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늘 그렇게 일상에서 관심 있고, 재미있는 것들을 그리고 만들곤 했지만, 공공연하게 미술을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애는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중학교 1학년 미술시간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미술 교과는 그리 중요한 교과목이 아니었지만, 늘 과제와 수행평가 등이 있어서 친구들이 피곤해하고 과하게 과제에 집착하는 미술 선생님은 늘 불만의 대상이었다. 나는 미술학원을 다니지 못해 수업 시간에 기술이나 기교를 배우고 싶었는데 늘 그냥 해보라는 식의 수업이 진행됐고, 어쩔 수 없이 나는 책이나 선생님이 보여주는 자료를 어설프게 따라 하는 정도로 미술 수업에 참여했다. 그래도 새로운 미술 도구와 용품 등을 사용해 보고 재미있는 기법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미술 수업이 싫진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날 미술 선생님은 동판화 과제를 내어 주셨다. 동판화에 날카로운 도구로 좋아하는 그림 등을 이용하여 스케치를 해 오는 과제였고, 수업 시간에 그림을 발표하고 직접 찍어보는 수업이었다. 나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선택해서 작업을 진행했다. 동판화의 차가운 질감이나 뾰족한 도구를 어떻게 사용해서 표현했는지, 신윤복의 미인도를 동판에 어떤 비율로 옮겨 그렸는지 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치마의 주름을 표현할 때 책 표지를 쌀 때처럼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깊고 얕은 주름을 따로 표현하기 위해 뾰족한 도구와 동판의 각도를 조절하고 힘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주름의 깊이를 표현했다. 처음 시작과 끝의 주금의 깊이가 다르고 주름의 방향과 흐름까지 생각해야 했으므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처음 간단한 스케치보다 치마는 한껏 부풀려 있었고 주름은 물결치는 것처럼 많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주름이 선으로만 표현된 것이 아쉬웠다. 주름이 생기면 당연히 옆면 옷감에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림자의 크기에 따라 주름의 크기가 느껴질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림자를 평면 그림처럼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아 뾰족한 도구를 최대한 옆으로 눕혀 주름과 옷감이 닿아 그림자가 생기는 부분을 긁어냈다. 주름과는 다른 느낌의 선들을 만들어 겹쳐 그림자를 표현하고 그림자의 강약을 통해 주름의 크기와 깊이 등을 돋보이도록 표현하였다. ‘동판화는 재료만 다르지 그림과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세를 몰아 가채를 올린 미인도의 머리 부분도 주름으로 익힌 기교를 이용하여 좀 더 풍성하고 다채롭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마저 동판화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기할 따름이었다. 마지막 나비들과 꽃 등을 더하여 스케치를 마무리하니 숙제로 마지못해 시작한 작품은 그럴싸한 느낌이었고, 작품을 완성했다는 뿌듯함과 왠지 모를 설렘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과제를 발표하는 날이 되었다. 여름이 가까웠고 하복 교복을 입고 있었다. 늘 그렇듯 미술 선생님은 성의 없이 그냥 쓱 애들 작품을 훑어보시고 수업을 시작하시려는 듯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 옆에 멈추시더니 동판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셨고, 나는 뭐가 잘못된 건 아닌지 싶어 놀라고 긴장된 마음으로 선생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선생님은 물끄러미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동판화를 쓸어보시기도 하고 돌려보시기도 하시더니 “조상 덕을 많이 본 실력이네~”라고 하셨다. 엉뚱한 말 한마디로 애들은 웅성웅성했고, 아무래도 칭찬인 것 같은 분위기에 나의 미인도를 힐끔거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이후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소 뚱하고 내색도 칭찬도 하지 않던 미술 선생님의 한마디가 가슴에 꽂히고 나는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나의 조상님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작은 고모가 미대를 나오셨지, 큰아빠도 그림을 그리시고, 아빠도 늘 그림을 그리셨으니 나의 미인도가 훌륭한 것은 왠지 필연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나는 미술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림을 잘 그리는 부모 세대 덕분에 미술에 타고난 아이가 되었고, 신윤복의 미인도는 이미 나의 미인도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나의 용기가 발하였을까 그 이후 늘 미술시간에 아이들은 나의 작품을 참고작품으로 보고자 했고, 거기에 상응하기 위해 나는 더 열심히 미술 수업에 참여하고 미술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당시 있었던 클럽활동도 당연히 미술부, 방과 후 활동도 미술 부서 등 나의 일상은 당연하다는 듯이, 늘 그랬다는 듯이 미술을 가까이하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미술 작품을 생각하면 재미있고 즐겁게 되었고, 그 속에 숨은 이야기들이 궁금하고 그 이야기들로 위안을 삼고 위로를 받아왔다.

물론 교사가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 적절한 교사 발문과 그에 따른 학생의 영향 등을 고려하거나 미술 작품 감상 수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과정 중에 학생들의 작품을 살펴보게 하거나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분명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어쩌면 숨어있던 미술을 좋아하고 사모하는 마음의 시발점이 되고 마중물이 되어 용기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이었는지, 언제였는지 미술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을 엄마께 전했더니 엄마는 너무 자랑스럽게 또 우리 조상님들의 미술 실력을 읊어주시고 더불어 본인도 그림을 잘 그리신다며 말씀을 더 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말씀을 하신다. 물론 나는 그 이후 여러 사연들로 미대를 진학하진 못했지만, 늘 미술을 사모하고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중학생이라면 본인 생각과 의지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 교사의 말 한마디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었는데 아직도 그 말을 잊지 못하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내가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던 것이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말 한마디의 중요성과 그 영향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물며 초등학생에게 교사의 말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궁금한 점들이 생기고 새로운 의문점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재미있고 흥미롭기도 하지만 더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나는 늘 아이들이 그림을 좋아하고 기술적으로 표현력이 떨어지더라도 즐기고 사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1학년 아이들을 여러 번 가르치면서 드는 의문이 생각났다. 아이들과 색연필 크레파스를 처음 사용해 보면서 간단한 꽃, 집 등을 그리려고 하면 대번에 학급의 두세 명의 아이들은 “저 그림 못 그려요”라고 하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신기하게도 매년 들 비슷한 비율로 그림을 못 그려서 좋아하지 않는 아이를 만난다. 그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왜 자신들이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분명 요즘 부모들이나 유치원 선생님들이 “너 그림 못 그린다.”라고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그림 잘 그린다의 기준이 되는 것들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을 텐데.... 도대체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벌써 그림을 못 그린다는 자기 평가를 할 수 있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 생각을 가지게 된 경로가 어떻게 되며 어떤 것들의 영향으로 인해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나아가 더 신기하고 궁금한 것은.... 그 아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서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해 주고 싶은 교사의 심정으로 그들의 그림을 봤을 때 나의 생각이다. 내가 봐도 못 그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슬프게도... 그래, 못 그리긴 하는구나, 그래도 용기를 가지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그림을 좋아하게 되고 잘 그리게 될 거야!!라고 말하기에는 그 사이의 과정과 논리의 공백이 너무 크다. 그냥 무심코 애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림 못 그린다는 소리를 들었을까? 라며 선생님들과 웃어넘기던 몇 년이 반복되다 보니 궁금해졌다. 중구난방식으로 궁금증과 생각들이 많아지는데 좁혀지거나 가지를 칠 여력이 없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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