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이자 "썸" 타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 직 후, 사우디 리야드 국립중앙병원에 임상병리사로 파견되어 젊은 날을 보낸 나의 리야드 연가(戀歌)이다.
1980년대 한국은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민주화운동의 열기만큼이나 경제도약의 시기였다. 여기에 멀고 먼 무슬림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는 오일머니를 내세워 중동건설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건설노동자의 수요는 말할 것도 없고, 자국민이 감당할 수 없는 전문직 분야에서 외국 일손을 아쉬워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늘 돈을 사랑하는 법. 한국에서 버는 돈이야 생활비 수준이고, 중동에서 뿌려대는 오일머니에 비할 수 있으랴.
사우디행 편도에 몸을 싣는 이들에게 50도를 육박하는 중동의 한낮 열기는 오아시스와 같은 신기루로 보였고, 낯선 이국땅은 램프의 요정 지니가 사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신밧드 나라였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주무대는 이라크 바그다드지만 중동으로 떠나는 초짜들에게 장소가 뭔 상관이 있으랴!-
나는 ‘12시, 종이 울리면 떠나요. 왕자님’ 하는 신데렐라 과는 아니고, 단지 한국 가족에게 생활비를 대야 하는 무수리과 였지만, 설핏 사우디 왕국의 아웃사이드 프린스를 사랑한....., 한 여인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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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밝혀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 이 이야기는 사우디아라비아 생활 경험담을 에세이형 소설로 각색했다.
* 등장인물은 가명이며, 지명은 당시 이름을 사용했다.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외국인 대화는 대부분 영어이지만, 내용 전달의 편의상 한글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