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 이자 "썸" 타는 이야기
1988년 10월 4일 KAL 사우디아라비아행 비행기 안.
‘거머리들아! 잘 있어라. 나는 한국을 떠난다.’
대한항공 KAL 747 점보 여객기 32열 우측 A좌석에 앉아 나는 창밖을 내다봤다. 스멀스멀 움직이던 여객기가 활주로를 박차듯 스피드를 냈다. 순간 몸이 뒤로 쏠렸다. 누가 목덜미를 잡아당기나 싶어 ‘엄마야’하고 싶은 심정인데, 무슨 쾌감이 들었는지 이렇게 외쳤다.
‘거머리들아!’
탑승 1개월 전
“선배님, 선배님! 혈관을 못 찾겠어요.”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육십 전후로 보이는 여성 환자는 맥없이 앉아있었고, 후배 다영은 주사바늘을 잘 못 찔렸는지 민망스러운 표정이다. 맨날 지청구를 할 수도 없는 노릇. 웃는 낯짝에 대고 너 제대로 하는 게 뭐니?, 했다가 후배는 태움한다고 울고 짜고 할 계집애다.
“손을 꽉 쥐어 보세요. 혈관이 잘 잡히질 않네요.”
여성 환자는 귀티 나는 하얀 얼굴이다. 창백하단 말은 차마 못하고, 돌려 말하면 그렇다는 뜻이다. 오른쪽과 왼쪽 손등, 팔뚝을 번갈아 가며 혈관을 찾았다. 왼쪽 팔뚝이 좀 더 확신이 들었다.
환자는 잔뜩 찌푸린 얼굴이다. 내가 들고 있는 주사바늘만 쳐다봤다.
“자, 이제 주먹을 펴세요.”
주사기 안으로 선홍색 혈액이 수도꼭지 물처럼 똑, 똑 떨어지다 쏟아졌다. 파도처럼 짜릿한 전율이 온 몸으로 출렁였다. 또 뭔가에 동공이 쪼그라들었다. 반짝하고 뇌리를 스쳐갔는데 다시 떠올리려면 눈앞에 풍경밖에 없다. 가끔 나에게 섬뜩한 느낌을 주는 채혈환자가 있다.
한 방에 끝내줘서 고맙다, 며 환자는 후배 쪽을 설핏 보며 일어났다. 마치 보고 배우라는 듯이….
“역시 선배는 채혈을 잘…하네요. 히히. 뭔 비결이라도.”
피죽도 못 먹은 양 바짝 마른 환자 팔뚝에 피멍들게 해놓고 웃음이 나오니, 하려다
“뭔 비결? 십년감수했구먼.”
나는 부산 모(某) 대학교 임상병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병원 건강검진센타에서 첫 인턴근무를 시작했다. 임상병리사는 뭐가 뭐니 해도 채혈제일주의다. 채혈 못하면 째려보는 환자의 눈을 얼른 피하는 반사 신경이 발달해야 한다. 고개를 잘 숙여야 한다. 하루 300건 이상 채혈만 하다 보면 내 팔뚝에 마치 300개 멍 자국을 낸 것 같은 통증에 시달린다. 퇴근 후 직원들과 어울리는 건 사치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건어물녀가 된다. 다음날 출근 전까지 휴가차 방콕에서 지낸다. 이런 증상은 명절까지 이어진다. 명절에도 방문 밖 출입은 자제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있다. ‘명절증후군’ 이따구 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친척들이 방문을 두드리고 오히려 문안인사를 할 정도다.
“수진이 언제 이렇게 다 컸어?”
가끔 친척 중에 이러는 분도 있다. 용돈봉투를 꺼내다 도로 집어넣는다.
나는 사회생활을 거부하는 건 아니니까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다. 그리고 외롭지도 않다. 내 머릿속에는 두 녀석이 함께 산다. 하나는 착한악마, 또 한 명은 나쁜천사 라고 이름 지었다. 애들은 각자 방을 따로 쓴다. 나쁜천사는 좌뇌에, 착한악마는 우뇌에 산다. 나는 방 안에 눌러 붙어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착한악마 : 침대가 몸의 연장선 같지 않니, 너무 좋아….
나쁜천사 : 넌 지금 침대에 빠져 죽는 거야.
생활 패턴을 바꿔보고 싶었다. 대학원에 진학했고, 전공으로 택한 건 임상심리학. 좀 더 순수 학문 쪽에 다가갔다. 임상병리사도 뭐 나쁘진 않지만 평생 남의 피만 뽑고 사는 뱀파이어 인생은 그렇지 않나 싶었다. 채혈을 하다 보니 핏빛만 봐도 환자 마음이 와 닿았다. 핏빛엔 굳고 무른 부분이 얽히고설켜있다. 환자가 살아온 삶의 결이 핏빛에 새겨있다면 좀 그럴까? 아무튼 그 결에 숨어든 영혼이 말을 걸어왔다.
‘나 괜찮은 거죠! 이야기 좀… 나눌까요?’
누가 임상심리학을 왜 배우냐, 고 묻기에 ‘피가 말을 걸어와서….’ 했다. 말을 걸어오니까 참~ 좋은데, 어떻게 대구할 방법도 없고,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해서 마음을 한 번 배워보고 싶었죠, 했다. 사실 피는 환자에 대해 많은 걸 말해 준다. 수치로 나오는 혈당, 콜레스테롤, 헤모글로빈 등 건강상태뿐만 아니라 주로 뭘 먹고 사는지, 스트레스는 심한지, 성격은 어떠한지, 가늠할 수 있다. 나는 피에 새겨진 다른 면을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마 점집에서나 찾아야 할 운명 같은 거 말이다.
대학원에 간다고 했을 때, 엄마가 심하게 반대했다. 어서 돈 벌어 결혼해야지, 하는 서툰 말투와 ‘공부는 뭔 염병할, 생활비 대야지’ 하는 속내가 공기반 노래반처럼 절묘하게 공명했다. 나라고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지 않겠지만, 부모가 일상이라며 보여주는 결혼생활은 따로국밥 같았다.
돼지고기를 넣은 뜨끈한 국물 뚝배기는 환상적이다. 식은 찬 밥 한 공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한 배 속에 넣어 말아먹다간 내 나이엔 배탈 나기 딱 좋아보였다.
낮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근무 타임을 이브닝으로 바꾸었다. 병원은 낮에는 환자들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밤이 되자 뚝, 발길이 끊어진다. 낮밤 체감차이가 이보다 심할 순 없다. 그래서 생활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올빼미 둥지 위로 날아간 시간이었다. 검사실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고, 뭔가 토닥토닥 거렸지만 멈춰진 시간이었다. 나는 검사실을 일명 ‘올빼미 둥지’라고 불렀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소니 워크맨 카세트를 틀었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콧노래로 허밍을 했다.
‘마마(엄마), 우후후. 당신 딸이 사람을 죽였어. 바로 자기 머리를 쐈어. 당신 딸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나는 돈을 물어다주는, 벌레 잡는 새가 아니야. 우후후.’
나는 노래를 내 취향에 맞게 개사해 부르는 걸 좋아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방송 금지곡이다. 'Mama, just killed a man‘이란 가사가 폐륜이라서, 아니면 노래를 부른 프레디 머큐리가 게이, 이 점은 인정. 뭔 조선시대 미풍양속 타령이야, 하겠지만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젊잖게 19금 성생활은 자제하길, 당부할 뿐이다. 또 다른 이유는 보헤미안이 공산주의 국가 체코에 속한 땅이라나, 누가 콩사탕은 싫어요, 국가 아니랄까 봐.
무슨 이유든 금하면 금할수록 사람 심리는 더 궁금해지는 법이다. 금지된 장난마냥 금지곡들이 불법 음반으로 노점상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오페라 같은 웅장한 멜로디도 그렇고, 내 안에 잠재된 반항심을 드러내기엔 안성맞춤 곡이었다. 이브닝 타임의 올빼미 둥지에는 늘 팝송이 흘렀다. 올리비아 뉴턴 존, 마돈나, 휘트니 휴스턴, 마이클 잭슨, 퀸의 카세트테이프가 책상 서랍에 일렬로 대기했다.
임상병리학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 한 가운데 ‘팝음악의 세계’(DJ 김기덕 지음) 란 책이 마치 별이 빛나는 밤에 달만큼이나 환했다. 팝음악 영어가사가 뭔 뜻이 있나, 알아보려고 영어공부를 했을 지경이었다.
병원엔 절친이 없지만, 3교대 근무를 하는 보경이가 이브닝 근무만 되면 꼭 내 올빼미 둥지로 날아들었다. 일명 딱따구리 새다. 몸집은 통통한데 날카롭고 단단한 부리를 가지고 있다. 내 둥지로 쉬는 시간이면 쫓아와서는 조잘조잘 쪼아댄다. 내 올빼미 새끼였으면 벌써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별 관심도 없는 병원 내 개성파, (음…, 이쪽은 병은 확실한데, 병명을 달고 다니지는 않는다. 주로 병원 쪽 사람들이다.) 그리고 인상파, 이쪽은 나이롱환자들이다. 소식부터 주말드라마에 나오는 배우 뒷담까지 한시도 입을 가만 두지 않는다.
“오늘은 또 뭘 쪼아대려고 온 거야. 지금 검사업무가 밀렸어.”
“응급실에 새로 온 인턴 선생, 너 봤지. 체구는 쪼그마해가지고, 채혈을 제대로 할 줄 아나, 환자한테는 엉뚱한 소리나 하고, 그래도 자존심은 세 가지고 의사 꼴값하는 거. 한 대 쥐 박고 싶더라.”
나는 그녀의 스트레스 해소용이다. 대화의 8할을 그녀가 차지한다. 나는 그랬어. 안됐네. 어쩌니, 하며 맞장구 쳐준다. 이게 뭔 대화야. 추임새지.
“너는 여기 구석방에 쳐 박혀서 검사실 기계나 돌리고 팔자 좋잖아. 나는 밉상들 뒤치다꺼리 하는 데 지친다.”
보경이는 바퀴가 셋 달린 회전의자에 앉아 몸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나는 꾹 참고 너 참 말을 곱게 한다, 며 웃을 수밖에.
“그래도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고 해야지. 거의 이브닝은 니 차지잖아.”
“학비내야 해. 집에선 보태줄 형편도 안 되고, 되러 공부가 밥 먹여 주나는데.”
“뭐, 그래서 공부한다고 밥도 안줘?”
보경이가 나를 빵 터지게 웃겼다. 애는 남의 말은 어느 귀로 듣고 어느 귀로 흘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공부하는 자식이 미운가 봐. 돈 벌어서 집에 세금내야 하는데.”
병원에선 정말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다. 그 돈으로 대학원 등록금 챙기고, 엄마에게 생활비 주고나면 용돈하기도 빠듯했다. 친구만나고 여행? 언감생신같은 소리다.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올빼미 둥지는 잔소리 반경에서 벗어나 있다. 물론 여기도 나를 심심풀이 땅콩이나 스트레스 해소용을 삼는 친구가 있다. 이 거머리 녀석까지 벗어날 수 있다면….
응급 호출벨이 울렸다. 벽에 걸린 세이코 전자시계가 밤 11 : 45 분을 찍었다. 가운데 문장부호의 쌍점이 깜빡깜빡하다 어느새 ‘삐뽕삐뽕’ 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대학생이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소주 잘 마시는 친군데…. 몇 잔 마시다 갑자기 쓰러졌어요.”
같이 따라온 대학생 한 명이 울먹이며 자초지정을 말했다.
“무슨 잔으로 마셨어요?”
“양재기(양푼이 그릇)….”
보경이가 나에게 손짓을 보냈다. 나보고 채혈하라는 듯이. 응급실 인턴 의사 뒤에서 양 손으로 엑스를 만들었다. 이 인턴이 바로 그 애송이야, 뭐 이런 신호다.
채혈을 하려고 환자의 팔뚝을 잡은 순간 머리가 지근지근했다. 표정을 감추려고 얼굴을 숙였다. 바늘을 팔뚝에 꼽자, 혈액이 튜브를 타고 흐르는데 마치 쓰나미가 덮치듯 공포가 밀려들었다.
검사실에 돌아와서도 정신이 수습되지 않았다. 왜? 어떤 환자는 채혈만 해도….
정말 물음표만 달고 있을 게 아니었다. 이유를 알아봐야겠다 싶었다.
‘혹시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징후를 감지한 건 아닐까?’
임상심리학을 공부하다 보니 이런 징후에 대한 물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검사실에 비치된 차트를 뒤져서 몇 명의 이름을 따로 노트에 적었다.
‘보경이에게 이름을 건네주면 환자의 치료이력을 알아봐 줄 거야.’
나는 검사실을 나와 미로 같은 복도를 걸어갔다. 평상시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복도 게시판에 공고가 하나 붙어 있었다.
『Wanted』
지명 수배? 는 아니고 구인 공고였다. 그것도 ‘해외근무자 모집공고’
‘엥, 이게 뭐지?’
나는 게시판 쪽으로 자석처럼 빨려 들어가 구인내용을 읽었다.
『Wanted』
사우디아라비아 중앙병원에서 해외근무자를 모집.
의사,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0명.
대우는 준 공무원.
여자는 기숙사. 남자는 사택.
1년 단위로 계약 연장 가능.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함.
영어가능자 우대.(영어 또는 한국어 면접 선택 가능)
신청기간 1988년 9월 20일까지
- 노동부 인력 해외파견 담당자 02-0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