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이자 "썸"타는 이야기
‘88서울올림픽’,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세계인의 축제가 한국에서 열린다. 이 조그만 땅 덩어리에, 그것도 남과 북이 땅을 반반씩 나눠먹은 이 코딱지만 한 땅에서….
대학병원 구내식당 한 모퉁이, GoldStar 마크가 새겨진 대형 TV 브라운관에서 매일 홍보프로그램이 방송됐다. 한국의 팝가수 코라아나가 부른 ‘hand in hand(손에 손잡고)’ 는 모든 방송의 배경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눈은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향해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공고문만 떠다녔다.
보경이가 은색 스텐 배식판을 들고 옆에 와 앉았다. 쟁반에 한가득 담긴 밥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났다. 햄 소시지 야채무침이 오늘의 반찬 메뉴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사람들이 뭘 먹을까?”
“뭐?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야?”
보경이는 밥 먹다 말고 뭔, 똥 씹는 소리냐는 표정이다.
나는 해외파견 근로자 모집공고에 대해 그녀에게 말했다. 밥보다 더 구미가 당기지 않냐, 고 넌지시 되물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이잖아. 거기서 뭘 한다고? 영어도 아랍어도 모르잖아.”
“사실 오늘 아침에 모집 담당자한테 전화해 봤어. 접수한다고 당장 가는 건 아니래. 일단 접수만 받는 거고, 어쩌면 일 년 정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대. 접수해 놓고 기다리면서 영어공부하지 뭐.”
“너 대학원은 어쩌고. 학비가 아깝지 않아?”
“사실 대학원은 집에 쳐 박혀 있기 싫어서 다닌 것도 있어. 내가 엄마하고 사이가 별로거든. 아빠하고 말이 안 통하니까 맨날 나한테 하소연이야. 결혼을 잘했니, 못했니. 이젠 화풀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니가 없으면 나도 스트레스 풀 친구가 없는데, 침샘이 말라 버릴 거야. 넌 올빼미 이긴 한데 말은 잘 들어주잖아.”
하도 기가차서, 나는 침은 밥만 먹어도 생겨, 하고 말하려다 “심심할 것 같으면 같이 가자. 응” 했다.
보경이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만 내려다 봤다. 아마 밥이 모래로 보였을지 모른다. 가보지도 않은 사우디 사막 모래를 씹은 양 울상을 지었다.
나는 눈을 돌려 TV을 봤다. 방송에서는 역대 올림픽 스토리가 나왔다. 반쪽 올림픽 이야기였다. 앞선 두 번의 올림픽이 이념갈등으로 반쪽 났다며, 1980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22회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미국 등 서방 60여 개국이 불참했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23회 올림픽은 소련 등 동유럽 국가 들이 불참했다.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제24회 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한다면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올림픽이 될 거라며 굉장한 지구촌 축제를 염원했다.
나는 화면에 떠오르는 오륜마크를 보면서 마치 세계지도를 펼친 듯 사우디아라비아는 어디 붙었지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가는 날까지는 엄마에게 비밀로 붙였다. 면접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데 괜히 집안을 난장판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여시(여우)과라서 낌새를 잘 챈다. 허튼 행동은 절대 금물이다. 해외 파견 근무 신청서와 신원증명 서류, 병원 경력 증명서, 임상병리사 면허증을 복사해서 부산지방노동청에 접수했다.
그날 바로 부산 서면 중심가에 위치한 민병철 영어 학원으로 달려가 등록을 마쳤다.
오랜만에 서면 번화가를 걷다가 부전시립도서관에 들렸다. 도서관에서 아랍문화에 대한 책을 몇 권 빌릴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책이 없었다. 아동문고판 ‘아라비안나이트’가 그나마 두툼해 보였다. 소개하는 책이 별로 없다는 건 그만큼 사우디아라비아가 닫힌 나라란 뜻이다. 38선 하나만 넘으면 닿는 북한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만큼 사우디아라비아도 똑같은 나라였다. 도서관 열람실 책들 사이에서도 별종 취급받는 머나먼 사막의 나라일 뿐이었다.
내가 아는 중동 이미지도 실상 별반 차이 없었다. 그림엽서에 나온 이미지가 다였다. 뾰쪽한 탑과 돔형 건축물로 된 사원, 하나 더 있다면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에 나오는 램프의 요정 ‘지니’가 사는 나라였다.
어릴 때 TBC에서 ‘신밧드의 모험’이란 만화영화가 방영되었다. 방송이 나오면 주제가를 입버릇처럼 따라 불렀다.
♪어딘지 모르는 신비의 나라,
우린 우린 가고 싶다. 모험의 나라
펼쳐라 펼쳐라 너-의 모험담♬
아마 주제가를 따라 부르던 그 어린 시절, 나의 뇌 어딘가에 요술과 모험이야기로 가득 찬 신비의 나라로 찍혔나 보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책을 뒤적거리다 문득 대학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시험기간이 낀 주말에는 늘 여기서 공부를 했다. 부산 중심지인 서면 번화가에서도 노란 자위에 위치한 명당자리였다. 도서관엔 늘 두 부류의 그룹이 존재했다. 데이트 족과 두더지파. 데이트 족은 자리만 잡아놓고 남친과 어디를 싸돌아다니는지 모른다. 두더지파는 테이블에 쌓인 책만 파헤친다. 의자에 엉덩이가 붙였는지 한 번도 일어나질 않는다.
나는 어떤 쪽이었냐면 데이트 족이 책상에 펼쳐 놓은 책 지킴이였다.
“여기 자리 있는데요.”
시무룩하게 하루 종일 앉아서 하는 말이다.
그러면 남친과 데이트를 즐기다 돌아온 친구가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사줬다.
“수진아, 넌 미팅도 안하나?”
“내가 너처럼 잔뜩 꾸밀 여유가 어딨니? 너, 귀걸이 안 아파? 구멍 뚫어서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아플 것 같은데.”
“이런 소리나 하니까 남친이 없지.”
나는 종종 뒤통수 얻어맞을 이야기를 잘한다. 대학 친구들에게도 나는 별종이었다. 동아리 활동으로 들어간 교지편집실에서 내 담당은 책 정리였다. 여기에서 낯부끄럽게 청소담당이었다는 이야기는 못하겠다. 기획회의를 하면 도서관에 들러서 책이나 자료를 찾아주는 역할도 일부 있었다. 그래도 책 정리는 깨끗이 했다. 아니 교지편집실을 광택 나게 닦아줬다.
‘집 나와서 학교 갔다가 교지편집실 들러서 다시 집으로.’
잘 보자, 여기서 교지편집실이라도 안가면 내 삶의 동선이 너무 단순해 보이지 않는가. 나 스스로도 이런 쳇바퀴 인생은 어떻게 분류해야 하나 싶었다. 단순히 틀 안에 갇힌 다람쥐과로 취급하긴 싫었다.
도서관에서 기획회의 자료를 찾는다고 백과사전을 뒤지다 올빼미에 눈이 갔다.
첫째, 둥근 얼굴 한 가운데 눈만 빠끔한 것이 생김새가 나와 닮았다. 백과선생 말이 눈이 얼굴 가운데 있으면 시야는 좁아진단다. 대신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가 깊어져 원근감을 잘 느낀다나. 거기에 바깥깃털이 들쭉날쭉해서 공기의 흐름을 흩트린다. 이런 구조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지우고, 소리 없이 날갯짓을 할 수 있다. 밤에 먹잇감을 찾아야 하는 올빼미에겐 정말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었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내 습성과 너무 비슷했다. 나는 천상 올빼미과였다. 물론 나라는 올빼미형 인간은 사교성도 없고, 약간 자아도취적인 면도 없지 않다. 누구에게도 지기는 또 그렇게 싫었다. 두더지파라서 학교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올빼미처럼 눈을 한가운데 모으고, 먹잇감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대학원 진학을 하면서 검사실을 나만의 올빼미 둥지를 만들었다면, 사우디아라비아에 가는 일은 소리 소문 없이 날아가 먹잇감을 낚아채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