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이자, "썸"타는 이야기
다음해 여름 7월, 킹 칼리드 리야드 국제공항
나는 공항 로비에 앉아서 창문 너머로 끝 간 데 없는 사막을 바라봤다. 모래사막과 맞닿은 지평선 위로 새털구름이 날개를 펼쳐놓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착했던 그 날 저녁을 기억했다. 그 때 내 머릿속은 북새통이었다. 전두엽에선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고 있었고, 신경계를 타고 내려와 심장을 쿵쿵쿵, 쳤다. 마치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 연주하듯 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사막 풍경은 쇼팽의 피아노 독주곡 녹턴 20번을 듣는 것 마냥 편안하다. 신경안정성분인 세로토린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오히려 풍경이 잔잔하다 못해 애틋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온 지 1년을 거의 목전에 두고, 다시 킹 칼리드 리야드 국제공항에 돌아왔다. 사우디로 올 때처럼 캐리어에 한가득 짐을 담았다. 내 손에는 비행기 티켓이 들려있다.
‘한국행 편도(?) or …….’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어떨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올해 5, 6월에 걸쳐 이슬람을 믿는 국가들은 30일간의 라마단 금식기간을 가졌다. 초승달이 뜨면서 시작되는 라마단기간 동안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모든 행위가 금지된다. 무슬림에게 이 성스러운 달(이슬람력 9월)은 절제를 위한 시간이자, ‘알라’에 헌신을 다짐하는 마음가짐의 시간이다. 달리 생각하면 매년 그들은 이 믿음의 시험대에 오른다.
다시 초승달이 뜨고 이슬람력 10월, 첫째 날부터 사흘간 ‘이드 알 피트르’(Eid al Fitr) 축제가 열렸다. 무사히 라마단 기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이슬람 최대 축제이다.
그 축제의 마지막 날, 그가 병원에 축제음식과 선물을 들고 찾아왔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알 사우드의 혈통이다. 그리고 멋진 아라비안 왕자이다. 그의 어머니는 흑발의 사우디여성이 아닌…, 금발의 미국인이다. 나는 그를 흉보며, 애교스럽게 ‘아웃-사이드 프린스(Out-side Prince) 씨!’ 하고 부른다.
아웃사이드란 말 그대로 그는 반항아이다. 자유분방한 어머니 피가 그 속에 흐르는….
그가…, 그날 고백을 해왔다.
첫 출근 날,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여자 기숙사
첫 출근 날이다. 김 사감은 방을 돌며 복장검사부터 시작했다.
‘아, 그녀의 히잡 색깔이 바뀌었다.’
어제는 검은색이었는데 오늘은 흰색이다. 스카프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패션 감각이 남달라 보였다.
“외국 여성에게는 사우디여성만큼 엄격하게 잣대를 대지 않지만 옷차림은 조심해야 해요. 다들 정장바지 차림이 보기 좋은데요. 후훗.”
역시, 그녀의 앳된 미소는 살갑다. 기숙사의 아침 출근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다.
“사실 여기서 외국여성은 제 3의 성과도 같아요. 무슬림 여성이 아니니 엄격하게 코란의 율법을 갖다 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처럼 대하기도 좀 곤란하고, 약간 중성 같은 느낌이죠. 여러분에게 히잡을 쓰고 얼굴을 가리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죠.”
어제 느꼈던 그녀의 분위기와는 조금 달랐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히잡에 가려진 그녀의 그늘을 한 꺼풀씩 벗는 건 아닐까 싶었다.
“오늘도 한 낮 기온이 45도를 웃돌 거라고 하네요. 괜히 열 받지 마시고, 사우디 분위기를 맘껏 느껴보세요. 자, 인샬라.”
그녀는 손을 흔들며 1차 선발대 인원을 출근버스에 태웠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모두 얼굴이 긴장 모드로 돌아갔다. 첫 날, 첫 근무의 스트레스는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얼굴에 ‘울상’이라는 글자만 안 쓰여 있지 다들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래도 나보다는 영어를 잘 할 것이고 임상경험도 풍부할 터였다. 유창한 영어실력의 1차 선발대니까.
‘누가 나한테도 1차 선발대원이라고 말 좀 해줘. 흑흑.’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병원까지 가는 데는 족히 20분은 걸렸다. 야자수가 줄선 가로수 거리를 한참 달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입구에 섰다. 근무지에 첫 발을 내딛었다.
‘첫 인상’이 어땠냐면….
군데군데 야자수가 심어진 오아시스가 펼쳐지고, 그 사이사이로 난 커브길을 따라가면 양파머리를 가진 멋진 돔형의 병원이 나올 거라고 상상했다.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주변은 허허벌판이다. 아니 넓은 공터다. 그 공터 위에 3층 높이의 옅은 아이보리색 콘크리트 건물이 길게 뻗어 있었다. 메인 건물은 그렇고, 그보다 낮은 부속건물 몇 동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한국의 대형병원들은 보통 도심의 노란 자위 땅에 세운다. 그러니 건물 허우대만 높다. 이 병원은 널찍한 주변 공터까지 확보하고, 나지막이 드러누워 있는 모양새다.
화려한 궁전 같은 모습은 어쩌면 특별히 찾아가는 관광지가 아니면 보겠는가. 병원은 일상적 삶의 한 장소일 뿐 궁전이 아니잖은가.
오전 8시 30분. 병원 컨퍼런스 강당에 1차 선발대원이 모였다. 이 간호부장이 중년의 사우디 남성과 함께 걸어 나왔다. 그 남성은 똥배가 살포시 드러난 하얀 깐두라를 입었다. 얼굴엔 구레나룻 수염이 인상 깊었다.
“Welcome to Saudi Arabia.”
그의 첫 마디 부터가 영어다. 그 뒤로 스피드하게 버터 발린 발음으로 쭉 달렸다.
“굿모닝 에버리원, 리야드 국립중앙병원에 이브라임 이븐 칼레드 병원장입니다.”
병원장 이름은 확실하게 귀에 들어왔다. 그는 이름만큼은 특별히 강조해서 천천히 강한 악센트로 말해줬다.
“어떻게 이름이 낯설게 들리나요. 낯선 얼굴, 낯선 이름, 낯선 근무환경에 긴장도 될 터인데 곧 익숙해 질 거예요. 여러분은 엘리트들이니까요. 그렇죠!”
1차 선발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해맑은 미소를 띠는데, 나만 어설픈 미소로 어리둥절하며 두리번거렸다.
‘아, 뭐야! 답답해’
이건 어느 소극장 연극 무대에 서 있는 기분이다. 관객이나 주변 배우들은 다 알아듣는데 주인공인 나만 못 알아듣는 방백을 듣고 있었다. 진짜 나만 못 알아듣는 거야?
“리야드 국립중앙병원은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만든 병원입니다. 병원비도 거의 무료이고, 국가에서 부담하죠. 여러분도 병원 입구에서 봐서 알겠지만, 화려하게 꾸민 병원이 아니에요. 좀 실망했나요?”
그는 중년의 품위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를 찾는 환자들에게 한국 근무자들은 인기가 많습니다. 친절하고, 성실히 진료하고, 무엇보다 주변 정리를 잘해요. 그리고 옆에 계신 이 간호부장 같은 분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성실하게 일해준 덕분에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습니다.”
병원장은 말하다 말고 이 간호부장을 바라봤다.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다들 따라서 박수를 쳤다. 나도 일단 동참했다. 박수 따라하기. 어쨌든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눈치껏 살아남아야 하니까.
이 간호부장은 고개를 약간 치켜들고 정면을 응시했다. 어제 보였던 내려다보는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 분명 병원장은 그녀를 칭찬하는 말을 했을 터였다.
“이렇게 말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다른 외국 근로자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잘해요. 베리 굿, 엑셀런트!”
병원장은 엄지척을 하는데, 나는 도통 전체적인 문맥이 잡히지 않았다.
동료들은 같이 웃었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고문하듯 간지럼을 태우는데 울어야 할 판에 헛웃음만 나왔다.
“사실, 일급비밀인데 제 아내도 한국인 간호사입니다. 여기서 일하는 모습에 반해버렸죠. 더없이 좋은 사람이고요. 하하하”
내 귀에 ‘Korean nurse’ 이런 말은 들렸는데 또 뒷말이 어디론가 흘러가 버렸다. 옆에 선 친구들이 웅성웅성했다. 나는 천정을 우러러 봤다.
‘오,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산신령님, 귀신님, 뭐하세요? 무덤에서 낮잠만 자지 마시고, 누가 나 좀 말려주시지.’
킹 칼리드 리야드 국제공항 로비
‘흐훗’
나는 공항 로비에 앉아 실없이 웃었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터키 이스탄불 행 비행기에 탑승할 손님은 17번 게이트에서 탑승수속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끌고 탑승 게이트로 향했다. 30일간의 긴 여름휴가를 받았다. ‘Summer Long-Vacation’, 한국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여기서는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몇 안 되는 친구들을 만나 볼까 했지만 여행을 선택했다. 그것도 자유여행. 아라비안나이트의 관광여행지를 찾아서 터키와 이집트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보다 사실은…,
사우디를 잠시 떠나 있고 싶었다.
‘아웃사이드 프린스씨’,
그의 고백이 마음에 걸렸다.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