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이자, "썸"타는 이야기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여자기숙사
저녁 늦은 시간, 여자 일행을 태운 버스가 골목길로 들어와 기숙사에 닿았다. 남자 일행은 오는 도중 도로변 아파트 단지 앞에 내렸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봤다. 병원과 합체된 기숙사인 줄 알았는데, 야자수가 자라 아이보리 색 담 너머로 출렁거리는 일반 주택가다. 눈앞엔 베이지색 5층 건물이 서있었다.
인솔자는 '앗쌀람 알라이쿰' 하며, 현관에서 기다리는 여성과 인사했다. 가볍게 포옹하고는 양 볼을 번갈아 가며 부딪쳤다. 현관에서 손을 흔들며 맞이하는 앳된 여성은 분명 한국인이었다. 그런데 아바야와 히잡을 쓰고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눈인사를 나누며 그녀 옆을 스쳐갔다.
2층 교육관에는 오리엔테이션 자리가 세팅되었다. 바닥에 배열된 철제 접이식 의자, 사우디아라비아 국기가 인장처럼 박힌 강연 단상, 그리고 회색빛 콘크리트 벽면 한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현 국왕 사진. 친절하게도 한글로 ‘파흐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فهد بن عبد العزيز السعود) 5대 국왕’이라고 설명을 달아놓았다.
그런데 이 분위기. 뭔가 익숙하다! 꼭 한국 동사무소 2층 강당 필(feel)이다. 벽면에 태극기와 나란히 현 대통령 사진을 걸어놓은 그 동사무소 말이다.
철제 의자에 앉자마자 몸이 녹다운되었다. 나의 들뜬 분위기도 콘크리트 회색빛에 묻혀버렸다. 간호복을 입은 중년 여성이 앞으로 나왔다.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간호부장 이은실입니다. 온다고 고생 많았어요.”
그녀는 의자에 앉은 1차 선발팀을 휙, 저어봤다.
“앞서 파견된 인원 중에 계약 만료로 한국에 돌아간 친구들이 많아서 급하게 1차 선발팀을 뽑게 되었어요. 여기 생활이 맞으면 여러분은 오래 있기를 바래요. 계약은 1년 단위지만 얼마든지 연장은 가능하니까.”
“간호부장님은 몇 년 근무하셨나요?”
“7년째 근무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 사감 선생님. 저 뒤에 계신 김 선생님은 이곳에서 결혼도 했어요.”
이 간호부장은 현관에서 우리 일행을 맞았던 김 사감을 소개했다. 김 사감은 교육관 뒤편에 서있다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여기 사우디 여성들은 일이 제한되어 있어요. 김 사감도 간호사로 왔지만 결혼하고, 여성들만 접촉할 수 있는 일로 바꿨어요. 이 일도 남편이 관대해서 봐 준거죠.”
간호부장은 입술을 살짝 실룩했다.
“그런 이야기는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아무튼 1차 선발팀은 내일부터 바로 병원 근무를 시작할 거예요. 일손이 부족해서 휴식을 줄 여유가 없네요. 한국에서도 사전교육을 받았겠지만 사우디는 전혀 다른 나라예요. 혼자서 근무지 이탈하지 말고 긴급한 일은 저를 찾으세요.”
나는 간호부장과 김 사감을 번갈아 바라봤다. 간호사 제복만큼이나 딱딱한 말투의 이 간호부장, 히잡을 쓴 김 사감의 앳된 미소가 서로 엇박자를 그었다. 닮은 듯, 닮지 않은….
“김 사감님, 방 배정하세요.”
이 간호부장은 김 사감을 앞으로 부르면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간호사들은 인원수가 많아서 2인 1실이 주어졌다. 나는 1인실을 배정받았다. 낯을 가리는 편이라 누구와 방을 같이 쓰기도 서먹했을 텐데 다행이었다. 그런데 방으로 가는 동안 캐리어를 질질 끌다시피 했다.
‘당장 내일부터 근무라니….’
잡다한 생각으로 마음이 터무니없이 무거웠다.
‘최소한 시차 적응을 위한 시간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하고 따지고 싶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보다 여섯 시간 늦다.
‘그럼 6시간은 더 자게 내버려 두면 안 돼.’
고작 내가 생각하는 시차 적응의 수준이라니, 하며 내 혀를 찼다.
방문을 열자, 사각 창문이 보이고 뭔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야자수가 심어진 길 건너 앞 동네가 담겨있었다. 전망 좋은 2층 끝 방이었다.
크기는 3평 남짓, 목재 침대와 간이 책상, 옷장 하나.
나는 새로운 서식지를 찾았다. 여기는 나의 올빼미 방…, 이 될 터였다.
캐리어를 열고 짐을 꺼내다, 대략 난감한 나를 발견했다.
‘태화고무장갑, 신라면, 속옷, 바지 정장 몇 벌’, 이게 다였다.
화장품? 한국 집에도 없는 걸 어떻게 가져와. 꼭 며칠 해외연수 다녀오는 기분으로 캐리어를 챙겼나 싶었다. 태화고무장갑은 대사관에서 사전교육을 받을 때, 사우디 직원을 통역하던 한국 직원이 꿀팁이라며 일러줬다.
‘손빨래를 해야 해요, 물 펑펑 못써요. 거기는 물 값이 기름 값보다 더 비싸답니다.’
신라면은 무조건 챙겨가라고 했다. 여기 한국 직원뿐만 아니라 외국직원들에게 인기 짱이란다.
‘친구 사귀려면 신라면 선물하든가, 같이 끓여먹든가.’ 하라고.
신라면은 나온 지 몇 년(1986년 출시)되지 않았는데 삼양라면을 가뿐히 제치고 한국에서도 광풍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이틀에 한 끼 정도는 신라면으로 때웠다. 화장품보다 오히려 신라면 한 박스 챙긴 건 신의 한 수였다.
나는 신라면을 선물포장지에 싸서 줘, 어떻게 해, 하며 쿡쿡거렸다.
짐을 정리하고, 내 방구석 패션의 결정체. 추리닝 윗옷과 바지로 갈아입었다. 파란색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는 나이롱 스판 옷. 전등을 끄고 침대에 퐁당 빠졌다. 만사가 귀찮아서 코를 골며 잘 것 같았는데 눈은 말똥말똥했다. 이대로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날개가 5개 달린 프로펠러 선풍기가 천청에서 돌아갔다. 유리창에는 야자수 그림자가 살랑거렸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에 다가갔다. 창틀엔 모래먼지가 녹슨 때처럼 끼여 있었다.
‘잠 못 이루는 리야드의 첫날밤.’
나에게 이 밤은 오늘 밖에 없을 것이고, 사우디의 첫인상이 될 터였다.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배울 때, ‘첫인상’에 대해 어떤 미국 심리학자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험한 내용이 있었다. 첫 만남, 첫 대면에서 받은 인상이 그 후 줄곧 이어진다는 '단순노출효과'를 검증했다. 이를테면 이렇다. 첫인상이 좋았다면 단순히 자주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느끼고, 나쁜 인상을 받았다면 보면 볼수록 비호감을 느낀다나.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없다면 말이다.
‘나의 사우디에서의 ‘첫인상’은 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착잡한 심정?’
내일 당장 영어로 어떻게 대화를 해, 하면서도 조금 전, 교육관에서 보았던 이 간호부장과 김 사감의 얼굴이 교차했다.
이 간호부장은 뭐랄까? 업무적인 스타일의 딱딱한 말투, 콧대를 세우고 전방을 응시하는 눈매, 상대를 장악하려는 권위의식이, 오랫동안 몸에 밴 습성처럼 자연스러웠다. 전형적인 보스형이랄까. 김 사감을 소개할 때도 마치 자기 방식으로 말했다. ‘김 사감이에요. 아바야 의상이 이쁘죠.’ 해도 될 일이었다. 결혼해서 간호사도 못하고, 관대한 아랍인 남편 허락이나 받아야 하는 여인처럼 내려 보는 시선으로 말했다.
‘나도 여기서 오랫동안 오일머니에 물들면 저런 모습으로 변할까?’
나는 그녀에게서 창틀에 낀 녹슨 때처럼 쉽게 지워지지도, 바스러지지도 않을 첫인상을 받았다.
‘뭐야? 임상심리학을 배웠다는 내가 이렇게 쉽게 첫인상을 결정하면 안 되지.’ 하면서 고개를 살랑 저었다. 반전 매력이 있을지 모르는데….
김 사감은 현관에서 스치듯 나눈 눈인사 때부터 호감이 갔다. 방 배정할 때 미소 띤 앳된 얼굴로 다가와 차분하게 말했다.
“혹시 방이 불편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김 사감은 전형적인 도우미형이다. 말랑말랑한 그녀의 솜사탕 말에서 포근함을 느꼈다. 착해 보이는 그녀도 이 간호부장의 말을 어떻게 받아넘겼을까 싶었다. 그녀도 남의 비난에는 상처 받기 쉬울 것이다.
‘그녀는 여기서 어떻게 결혼했을까?’ 그냥 궁금했다.
그녀가 입은 아바야, 머리를 두른 히잡. 그런 복장이 그녀를 이슬람 여인으로 보이게 하진 않았다. 어쩌면 앳된 미소 뒤에 감춰진 그녀의 그늘을 복장이 덮고 있는 듯했다. 그녀와 신라면을 끓여 먹으며 아라비안 남자를 사랑한 첫날밤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아 참! 내가 빠트리고 말하지 않은 게 있다. 책도 몇 권 챙겨 왔다. 하나는 아라비안나이트 문고판, 다른 하나는 ‘어린 왕자’ 영어판, 마지막 하나는 칼린 지브란의 ‘예언자’ 다.
아라비안나이트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가 나온다. ‘셰헤라자데’.
원나잇 하고, 다음날 바로 동침녀를 죽여 버리는 무자비한 샤 리아르 왕이 나오는데, 그를 깨우치려 그녀는 무려 1001일 동안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왕에게 들려준다.
‘나 같으면 뭔! 재미난 이야기. 첫날 –다음날이 없으니- 비수를 챙겨가서 니죽고 나죽자했을 텐데.’ 원래 이런 게 리얼한 이야기 아니야! 아무튼 내 아라비안 첫 입문서다.
영어판 ‘어린왕자’는 표지가 예뻐서 충동 구매했다. 내 머릿속에서 나쁜천사와 착한 악마 두 녀석이 책 표지를 보고 있을 때, 한마디씩 했다.
나쁜 천사 : “영어도 못 하는 게 어딜 간다고…, 무식이 용맹이냐!”
착한 악마 : “혹시 모르잖아, 이 책의 영어문장을 주문처럼 외우면 멋진 왕자님이 나타날지.”
나는 가끔씩 착한악마를 지름신이라고 부른다. '내 귀에 캔디' 같은 말만 골라서 하니까.
칼린 지브란의 ‘예언자’는 사우디에 급 관심이 생기면서 찾아본 책이다. 레바논에서 태어난 아랍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예언자’를 읽다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책에다 새겨 넣을 게 아니었다. 가슴에 새겨야 할 경구(警句)처럼 다가왔다. 만약 ‘코란’이나 ‘성서’에 나오는 신이란 단어를 ‘쏙’ 빼버리고 다시 쓴다면 꼭 이렇게 쓸 것 같았다.
그의 연애편지도 마음에 와 닿았다. 레바논에서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만난 인생의 후원자이자 연인인 메리 헤스켈과 나눈 러브레터. 나는 편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잠 못 이루는 이 낯선 도시의 첫 밤을 이렇게 기억하리라. 외로운 나….’
*어느 거대한 낯선 도시에
들어서게 되면,
나는 낯선 방에서의 잠,
낯선 곳에서의 식사를
사랑합니다.
이름 모를 거리를
거닐며,
스쳐가는
모르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을 사랑합니다.
나는
즐거이
‘외로운 나그네’이고자 합니다.
- 1911년 5월 16일 칼릴 지브란
새벽녘, 외로운 나그네는 침대에서 여전히 엎치락뒤치락했다. 장시간 비행으로 몸은 고단한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사우디에 도착했어!’ 하며 아드레날린을 팍팍 내뿜던 흥분보다 사실, 걱정이 앞섰다. 밤새 세로토닌이 너무 많이 분비돼 불안하고 우울증세가 왔다. 침대에 풍덩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때 창문이 파르르 떨렸다. 밖에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목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기숙사 거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높은 첨탑 하나가 보였다. 여명의 새벽, 동트기 전이었다. 불빛을 반짝이는 첨탑은 마치 등대와 같았다. 외로운 나그네의 앞길에 밝혀 놓은 등불. 그 옆에는 양파 모양의 둥근 돔 사원이 자리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목소리는 높은 첨탑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이란 노래 소리였다. 아랍어로 외치는 뜻 모를 메들리에 나는 귀 기울였다. 템플스테이할 때가 생각났다. 새벽예불 때 스님이 외우는 잔잔한 독경과는 달랐다. 그 목소리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다. 회색먼지 내음이 자욱한 새벽공기를 타고, 키다리 야자수가 심겨진 주택가를 휘돌았다. 외치는 소리는 내 귀에 어떤 해석도 달아주지 않았지만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줬다.
‘왠지 잘 될 것 같아, 으싸!’하는 허튼 용기가 생겼다.
그 목소리에 대해 먼저 밝혀두자면 이런 뜻이 있다.
‘신은 위대하다. 신은 한 분이시고, 그 분 이외에 그 누구도 없도다. 무함마드는 그가 보낸 사도. 예배 보러 올 지라. 기도와 성공의 길로 올지니….’
뜻을 알고 보니, 못 알아들은 게 아니고 마음으론 간절히 우주의 기운을 끌어당기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