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 이자, "썸"타는 이야기
사우디아라비아행 비행기 안.
비행기 고도가 올라갈수록 귀가 먹먹해지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귀를 막고 눈을 꼭 감았다. 비행기 타기 한 시간 전에 멀미약도 먹고, 청심환도 챙겨 먹었다. 그런데도 머릿속이 지근지근했다. 코와 귀를 꽉 막고 ‘흥’ 했다.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그러고 있었다. 안전벨트 해제 경고등이 뜨고서야 겨우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물을 좀 마시면 나아져예.”
옆 좌석에 앉은 일행이 물병을 건넸다. ‘다이아몬드 생수?’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름에 나는 주춤했다.
“올림픽 때 팔더라고예. 외국인 전용으로. 생수라고 먹는 샘물이라네예. 수돗물보다 더 위생적이라나.”
나는 앞뒤 가릴 처지도 아니어서 일단 받아 마셨다. 한결 숨쉬기가 편해졌다.
“말씨가 경상도 쪽인 것 같은데 어디 살아요? 나는 부산이라….”
“아, 반갑습니더. 나는 다 서울 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수경입니다.”
그녀가 쌍끌이 스마일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고 보니 부산은 우리 둘 뿐인가 보네예. 전 최수진입니다.”
탑승 전, 김포공항 국제선 로비에서 사전 미팅이 있었다. 1차로 선발된 팀은 20여 명 되었다. 임상병리사 3명, 방사선사 2명, 물리치료사 5명, 치기공사 2명, 간호사 8명이었다. 첫 만남이라 서로 통성명 정도했다. 말투나 옷차림으로 봐서는 서울 쪽 선발인원으로 보였다. 그냥 다들 똑똑해 보였다.
아마 나만 빼놓고….
첫 만남부터 주눅이 들었다. 정말 무식이 용맹이라고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비행기 기내에는 대부분 남자승객이었다. 곳곳에서 웅성거렸다. 먹먹했던 귀가 뚫렸는지 소리가 들렸다.
“웬 남자들이 이렇게 많죠?”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저분들 대화를 들어보니 건설 쪽 인 것 같아예. 사우디아라비아엔 한국 건설 노동자들이 많이 간다네예.”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근데 영어 잘해요? 1차 팀은….”
“잘 못해예. 평소 외국에 대한 동경심이 많아서. 조금.”
수경은 나와 동갑이었다. 간호사 선발인원이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사우디아라비아 바라기 같았다. 그쪽 문화나 정치, 종교에 대해 꽤 공부했다고 했다. 번역 책이 없어서 주로 영어 원서로….
‘뭐야, 너 사기캐릭터야.’
나는 자리를 벗어나 화장실을 찾았다. 오줌이 마렵기도 했고 처음 타는 비행기라 속이 메스꺼웠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데 복도에서 남자목소리가 들렸다.
“사우디 건설현장이 엄청 덥고 모래바람이 심하다는데 괜찮겠지?”
“집에 있는 처자식 생각해서 돈 벌러 간다지만 서럽긴 서럽다.”
“그래도 한국보다 월급이 세배나 많다지.”
합격통보를 받고 병원에 사직서를 냈다. 출발 이틀 전에는 엄마에게 통보했다. 엄마는 올림픽 봉화가 끄진 지가 바로 어젠데, 딸이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나 싶었을 것이다.
“집순이가 어딜 간다는 거야!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디 옆 동네 이름이야?”
엄마는 버럭 고함부터 질렀다.
“돈 벌러 간다니깐! 기름때 묻은 돈. ‘오, 일, 머, 니.’ 자식이 기름때 묻은 돈 벌러 간다는데, 힘내라고 응원은 못해 줄망정 왜 큰소리야!”
엄마는 나와 한참 싸우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내가, 더 친숙한 표현은 ‘가시나’ 였다. 험난한 길을 가는 걸 막아야겠다, 며 벗은 발로 동네 무당집을 쫓아갔다.
‘내참 무당이 막아줘.’
엄마는 무당에게 실컷 하소연을 했는지 한참 뒤에나 돌아왔다. 나갈 때보다는 한 풀 기가 꺾여 있었다. 엄마는 동네 무당 할머니 말은 잘 듣는 편이다.
‘물 건너갈 시기가 왔구먼, 집에 있으면 엄마 등쌀에 기도 못 펴고, 연애도 못하고 반 푼수 되니까 보내줘’, 라고 했단다.
이게 욕인지, 칭찬인지 아리송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무당집에 보낼 걸 싶었다.
“앞 쪽에 앉은 여자들은 누구야? 사우디에도 여자들이 필요하나.”
“간호사 아닐까. 전문직 티가 나던데. 예전에 독일로 떠난 광부와 간호사 알잖아. 같이 비행기 탄 것 보니까 딱 우리가 그 짝이네. 노가다와 간호사.”
“그래, 우리 마누라도 저런 전문직이면 얼마나 좋아. 혼자 벌어서 먹여 살리려니 등짝이 뭐냐, 등골이 다 휜다.”
“누가 아니래, 진짜 등짝 떠밀더라. 마누라가 뭐라는 지 알아. 지 젖가슴이나 주물럭거릴 생각 말고, 가서 돈 좀 많이 벌어서 오라더라. 나도 남편 돈 좀 주물럭거려보자고.”
나는 더는 참으며 들을 수 없었다. 이 남자들이 음담패설도 유분수지 돈을 가지고 주물럭거려. 화장실 거울을 보며 헛기침을 했다. 나간다는 신호를 보냈다.
혹시 하얀 블라우스 속에 입은 브래지어 색깔이 비치나 살폈다.
다음날 저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국제공항.
14시간 비행 끝에 목적지에 다다랐다. 비몽사몽간에 ‘제타’라는 중간경유지를 한 군데 들린 것 같다. 비행기가 오다가 졸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국제공항이 먼발치에서 내려다 보였다. 사막의 나라답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높은 산은 없었다. 비행기 고도가 점점 낮아지자 공항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원형으로 조성된 큼직큼직한 경작지가 곳곳에 보였다. 마치 미스터리 서클 같은 느낌이다. 원형에다 아기자기한 모양만 낸다면….
공항 활주로에 비행기가 꿍, 하며 내려앉았다. 야자수 모양의 가로등이 공항 주변을 밝혔다.
나는 외국인 전용 출국심사장에서 줄을 따라가며, 사우디아라비아인 전용 출구를 바라봤다. 처음으로 아바야를 입고 있는 그녀들을 봤다.
출국 전에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서 사전교육을 받았다.
‘특히 여성들은 옷에 조심해야 한다고….’
사우디 직원이 한국말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 책을 펼치며, 한 페이지를 읽어주었다.
'외간 남자 앞에선 전신을 가리는 옷차림을 권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란다.
짧은 치마는 절대 입어서는 안 되며, 가능하면 바지 차림의 정장을 입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그녀들의 옷차림을 정겹게 바라봤다. 딱 내 스타일이 아닐까 싶었다. 매일 출근할 때 옷 고르는 것도 귀찮은데, 저렇게 뒤집어쓰면 세상에 얼마나 편할까 싶었다. 도착 첫날부터 이런 호감은 어디서 오는 거야, 하며 픽 웃었다.
로비로 나오다 공항 벽면에 펼쳐진 글씨체에 눈길이 갔다.
مرحبا بك في المملكة العربية السعودية.
아랍어 글씨 밑에 영어로 ‘Welcome to Saudi Arabia.’ 란 다소 밋밋한 말을 덧붙여 놓았다. 영어 필기체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한문 초서체(흘림체)를 가로 쓰기로 해 놓았나 싶다가…. 나중엔 글씨체가 아니라 악보로 보였다. 오선지에 그린 악보. 한 줄에 맞춰진 글씨들이 위위 아래, 위위위 아래, 하며 리듬감을 타고 있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보면 알라딘의 피리소리에 따라 코브라가 머리를 요리조리 쓱쓱 흔들지 않는가. 글자가 리듬을 타며 ‘살라 살라 인-살라’ 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 위로 둥근 돔형의 대리석 천정을 올려봤다. 야자수 껍질 모양으로 본떠서 지붕을 쌓았다. 대리석 타일로 모자이크한 아름다운 아랍식 현대 건축물이었다. 이제 내가 어디에 와 있는 지 실감이 났다. 정말 열사의 나라가 풍기는 아우라를 함껏 들이마셨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은 하늘에서 붉은빛이 찰랑찰랑했다. 공항 거리는 인파로 붐빌 줄 알았는데, 웬걸. 인파 대신 뿌연 모래가루로 덮인 텅 빈 거리였다. 입안이 텁텁하고, 미세한 모래먼지가 씹혀 기분이 언짢았다. 공항 안에서 마신 아우라를 다 토해냈다.
‘이건 뭐야. 퉤퉤, 사막 나라 아니라고 할까 봐. 아예, 모래를 입에다 떠먹여 주네. 정말 앞으로 뭘 더 떠먹여 줄지 기대된다. 제대로 환영해 줘서 고마워.’
나는 뿌연 공기에 질색했다. 대기하고 있던 전용버스에 오르면서, 그 뿌연 공기를 걷어내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신비한 오아시스를 상상했다. 여전히 입 안에서 모래는 씹혔다.
야자수가 심어진 고속도로를 따라 버스가 달렸다. 비행기에서 본 원형 경작지를 지나쳤다. 밤에 농사를 짓는지 불을 밝혀놓았다. 원통에 감긴 튜브를 풀어가며 원형을 따라 물을 주고 있었다.
버스에 탄 1차 선발대원 시선이 모두 그 쪽으로 쏠렸다. 마중 나온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한국인 간호사가 차창을 내다보며 말했다.
“여기는 무척 더운 나라예요. 한 낮엔 50도까지 기온이 올라가죠. 그래서 이렇게 밤에 나와서 일들을 많이 해요. 여러분도 곧 경험하실 거예요. 아무튼 고생하러 왔지만 환영합니다. 앗쌀람 알라이쿰(السلام عليكم). 흐흣.”
인솔자가 너무 귀엽게 웃어서 특히 남자 물리치료사들이 함박웃음을 피웠다.
“같이 따라 해 봐요. 여기서는 인사말로 자주 사용해요. 앗쌀람 알라이쿰.”
“앗쌀람 알라이쿰!”
“신의 평화가 당신에게, 예요. 여기 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신의 평화가 함께 하길 빌어요.”
“말리시.”
“말리시!”
“익스큐즈 미(Excuse Me)란 뜻이에요. 살짝 부딪쳐도 말리시, 하면 돼요. 두 단어만 알아도 사우디에서는 웬만한 회화가 다 가능하답니다. 흐흣. 물론 나머지는 여러분이 잘하는 영어로 말하세요. 1차 선발대는 영어를 잘하는 분들만 뽑았다고 들었어요.”
나는 그만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갑자기 영어란 말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비행기에서 느낀 두통이 도졌다.
전용버스를 타고 오면서 처음엔 눈앞에 오아시스를 펼쳐놓고, 퐁당퐁당 뛰노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영어 못한다고 쫓겨나, 푹푹 지는 사막에서 낙타 등골이나 빼먹으면 어쩌지 싶다.
리야드 시내로 들어서자, 반듯한 현대식 건물들이 8차선 도로변으로 줄 서 있었다. 야자수 너머로 고풍스러운 아라비안나이트의 풍경을 상상했다가 또 한 번 예상이 빗나갔다. 흰색 건물 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도로변에 줄 선 가로등 불빛이 어우러져 보였다. 리야드 시내는 사막 위에 피어난 에메랄드 보석 꽃모양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