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야드 연가(戀歌)ep.12

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이자, "썸"타는 이야기

by 김재석

ep.12 인샬라




이스탄불 블루모스크 근처 숙소


이슬람 세계에는 동이 틀 무렵, 새벽잠을 깨우는 소리가 있다. 바로 모스크에서 외치는 ‘아잔’ 소리이다. 나는 여행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무거운 몸으로 부산스레 나설 채비를 했다. 검은색 아바야 의상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푸른색 스카프(히잡)로 머리를 둘렀다. 배낭을 짊어진 이방인 여행객이 아니라 오늘은 이슬람 여인이 되고 싶었다. 스카프를 두른 건 아무래도 머리카락이 약간 떡진 이유도 있다.

세헤라자데 호텔을 나와 골목길을 걸었다. 옅은 안개 수면 위로 떠있는 이스탄불의 새벽을 만났다. 아랍어 간판에 불을 밝힌 고풍스러운 카페, 붉은 색 기와지붕과 아이보리 색 벽면, 덧문이 달린 흰색 창문, 그런 3층집이 내리막길을 따라 줄줄이 섰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이슬람 교인들이 아잔 소리를 따라 가고 있었다.

보러포러스 해협 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걸음걸이와 함께 내 옷깃을 살짝 살짝 바람이 들추었다. 손등에 닿는 바람은 싸늘하고 메말랐다. 이스탄불의 바람이 등 떠밀어 닿은 곳은 히포드롬 광장이었다. 양 옆으로 블루모스크, 하기야 성당이 있다.

나 또한 오고가는 바람 한 점으로 이 광장에 닿았다.

이슬람 교인들과 함께 블루모스크에 들어갔다. 입구에서 손발을 씻고, 신발은 들고 입장했다. 다행인 것은 나는 지금 아바야와 히잡을 쓰고 있다. 배낭을 메고 모스크 내부를 돌아다니는 구경꾼이 아니라 그들의 예배에 다가갈 수 있다.

‘살랴 타임’, 이슬람 교인은 누구나 하루에 다섯 번, 예배 시간을 갖는다.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지 메카를 향해 예배를 드린다. 그 첫 예배는 동틀 녘이다. 나는 여성 전용 예배소에 들어갔다. 무슬림 여성들 맨 뒤 줄에 섰다. 그들이 외우는 코란 제1장 개경장을 가만히 귀로만 들었다.


“자비롭고 은혜로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나이다.

그 분은 자비롭고 은혜로운 분이시니 심판의 날을 주관하시도다.

우리는 당신만을 경배하며 당신께만 구원을 청하나이다.

저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은 당신께서 축복을 내리신 길이며

노여움을 받은 자나 방황하는 자가 걷지 않은 길입니다.”


그들은 엎드려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절했다.

“위대한 하나님께 영광을”

나도 따라 절했다.

예배를 마무리하며 고개를 좌우로 돌려 양 어깨를 바라봤다. 악행과 선행을 기록하는 양 어깨의 천사에게 문안인사를 했다.

나에게도 머릿속 ‘나쁜천사’와 ‘착한악마’가 있다. 아마도 이슬람 교인들은 양 어깨에 이 두 녀석을 올려놓고, 율법의 저울로 달아보며 사는 지도 모른다. 예배 내내 코란을 낭송하는 이맘(이슬람 성직자)의 소리가 낯선 선율로 들려왔다. 나는 이 이국적인 몽롱함에 취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눈을 감고 긴 숨을 쉬었다.

나의 긴 한 숨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바람의 숨결로 다가왔다. 그 바람엔 결이 있었다. 겹겹이 쌓인 나이테의 결. 흔들리고 물결치며 퍼져나가는 결이. 그 결 엔 오랜 세월 쌓이고 쌓여 퇴적된 바람의 비문, 카르마가 있다. 그 길을 흘러가는 바람 한 점이 보였다.

‘왜? 그대인가요. 그대가 이번 생에 나의 운명인가요?’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내에는 하루 다섯 번 있는 ‘샬라 타임’을 위해 예배소가 마련돼 있다. 올 해 라마단이 끝나고 3일 동안 이어지는 이슬람 최대 축제인 이드 알 피트르’(Eid al Fitr) 축제 마지막 날.

‘아웃사이드 프린스 씨, 마호멧’이 찾아왔다. 집에서 마련한 축제음식을 들고….

“비스밀라”

마침 점심 살랴 타임 전이었다. 시장끼가 도는 시간이었다. 그는 웃으며 친인척이 아닌 외간여성과 같이 먹는 건 사양한다며, 특히 경건한 예배 시간 전인 지라….

“세헤라자데 씨, 명절 선물입니다.”

그는 나를 세헤라자데, 라고 부른다. 그가 지어준 아랍식 이름이다. 물론 아라비안나이트의 이야기꾼, 그 세헤라자데이다.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내가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을 수도 있다. 진실은 늘 베일 속에서 아른거릴 뿐….

“영어로 번역된 코란입니다.”

그는 두툼한 영문판 코란을 내밀었다.

“영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이런 뜻으로 주는 거죠?”

나는 장난끼 있는 농담을 건네며 책을 받았다.

“코란은 이슬람 교인에게는 시작이자 끝이죠. 하루의 문을 열고 또 하루의 문을 닫죠.”

그가 자연스럽게 농담을 받을 줄 알았는데 다소 의외였다.

“아웃사이드 프린스씨는 왕궁하고도 거리가 있는데, 코란하고도 거리가 멀지 않나요. 흐흣.”

“코란은 늘 가까이에 두고 있어요.”

그는 미소를 지었지만 점잖게 말했다.

“이 땅에 태어난 숙명이겠죠. 아니면 극복해야 할 사명일 수도 있겠네요. 아마 둘을 양 어깨에 올려놓고 어디쯤인가 저울질하고 있겠죠. 살랴 타임을 마무리할 때, 고개를 좌우로 돌려서 양 어깨를 봐요. 악행과 선행을 기록하는 천사들이 오늘도 나를 어떻게 저울질 하나 궁금해 하면서.”

그가 나의 농담을 너무 진지하게 받고 있다. 농담을 건네기가 민망해 졌다.

“인샬라. 신의 가호가 있다면….”

그가 나의 눈을 드려다 봤다.

“코란에 그대와 나의 손을 나란히 얻고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그의 파란 눈망울 안에 내가 담겨 있었다.

이건 사랑의 고백일까? 신앙으로의 초대일까?

분명 그의 눈빛은 전자를 말하는 듯 했다.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금방 답할 문제는 아니었다.

살짝 양 입술 끝을 올리며, 나는 이슬람식 인사를 건넸다.


“인샬라!”


마음속으론 ‘누구도 신의 뜻은 알 수 없지요.’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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