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이자, "썸" 타는 이야기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외래검사센터
다음날 아침, 외래검사센터 유리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다.
‘누가 나보다 일찍 왔지?’
나는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봤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청소부 라만이 밀대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Good morning” 내가 인사를 건네자, 그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욱’ 그의 입 냄새를 맡은 것도 아닌데 속이 메슥거렸다. 나는 애써 웃어가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 냄새는 또 뭐야? 코를 책상에 가까이 대자 썩은 냄새가 피어올랐다.
“욱!”
나는 코를 막으며, 진짜 욱, 소리를 냈다. 라만 아저씨를 바라봤다. 그는 양동이 물을 갈지도 않고 그 물에 밀대도 손걸레도 헹구어 가며 바닥도 닦고, 책상도 문질렀다. 결국 책상에서 나는 냄새의 정체는 시궁창 물로 닦은 걸레 냄새였다.
난 벌떡 일어나서 그에게로 다가갔다.
“노(No)!, 노(No)!”
나는 연신 노(No)를 외치며 청소를 막았다. 그의 손을 끄집고 와 내 책상에서 냄새를 맡게 했다.
“더티 스멜(Dirty small), 더티 스멜(Dirty small).”
나는 한 손으로는 코를 막고, 한 손으로는 책상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는 동그란 눈을 뜨고는 손사래를 쳤다. 청소통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는 유리문 밖에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말로 하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책상에 놓여 있던 마른 수건을 들고, 알코올을 찾아서 묻힌 다음 책상을 닦았다.
“Do you understand how to clean? 여기는 병원이에요. 청소는 매우 중요해요.”
그는 마치 그만하라는 듯, 미안하다는 듯 OK 사인을 주더니, 이동청소도구함을 밀고 딴 곳으로 가버렸다.
여러분 오해마시라. 나는 히스테리녀도 아니고, 진정 그를 화나게 할 마음도 없었다. 이제 들어온 신입이 할 소리가 아니라는 건 더 잘 알고 있다. 단지 오늘의 톱뉴스에 신경이 곤두서 있고, 마음의 준비가 덜 됐을 뿐이다. 어수선한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이왕 수건에 알코올을 묻힌 김에 나머지 책상도 닦기로 했다. 청소는 기분전환에 특효약이다.
‘당장 무슨 큰일 날 것처럼 우거지상하고 있지 말고, 니 방 청소나 해!’
엄마가 한 잔소리 중에 그나마 귀담아 들었던 말이다.
‘라만 아저씨, 미안해요. 냄새가 신경 쓰였을 뿐이에요. 그냥 내 기분이 엿같았어요.’
나는 책상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먼지까지 깨끗이 닦고 있을 때, 로라 아줌마가 들어왔다.
“미스 수진, 뭐하는 거야. 청소를 왜 하니? 청소부가 있는데.”
그녀는 손사래를 치면서 청소를 말렸다. 나는 “더티 스멜” 하면서 책상에 코를 대는 시늉을 냈다. 그녀도 책상에 코를 대 보더니 웃었다.
“말리시(별거 아니야), Don’t Worry.”
뭐야, 나는 그녀가 코를 막으며, ‘아, 지독해’, 할 줄 알았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이건 그녀의 주먹코와 내 개코의 차이일까, 아니면 그냥 생활습관의 차이?
나는 압둘라 닥터 칩과 마주 앉았다. 그의 방 책장엔 책도 많았지만 유독 작은 액자가 많았다. 아랍어 글씨가 담겨있는데 캘리그라피처럼 예쁜 붓글씨다. 그의 진지한 표정을 마냥 마주보기가 부담스러워 나는 방 주위를 둘러봤다.
“미스 수진, 이 간호부장하고 상담할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미스 수진은 어제부터 여기 외래검사센터 직원이 되었어요. 내가 책임자에요. 나는 내 직원을 남에게 결정 맡기지 않아요. Do you understand?”
그는 천천히, 될 수 있는 한 쉬운 단어로 말을 했다. 그의 말을 백 프로 알아들었다 기 보다 그의 진심이 와 닿았다.
“I understand what you are saying.”(말뜻은 알아들었어요.)
그는 책상 위에 카세트테이프 박스를 올려놓았다.
“내가 영국에서 의학공부를 할 때 들었던 영어회화 테이프에요.”
나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도 처음엔 의학공부보다 영어가 더 어려웠어요. 오늘부터 기숙사로 돌아가면 공부하세요. 전화 받는 일은 당분간 크리스티나가 할 거예요. 그리고 로라와 대화를 많이 해요. 모르는 것도 물어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영어실력이 늘 테니까. Do you understand?”
방금 내 눈망울에 눈물 한 방울 맺혔다.
“땡 큐, 땡 큐, 닥터 칩 압둘라.”
알둘라 닥터 칩은 직접 내 책상의 전화기를 크리스티나 자리로 옮겼다. 내 책상에서 그 퉁명스럽던 전화기가 치워지자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