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야드 연가(戀歌)ep.14

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이자, "썸" 타는 이야기

by 김재석


ep.14 히잡의 한국 여인

이스탄불 역사지구 톱카프 궁전

터키 소년이 ‘시미트 사세요.’ 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도넛처럼 생긴 깨가 뿌려진 빵이다. 소년은 시미트가 쌓인 널빤지를 이고는 딱 내 코앞에서 모락모락 냄새를 풍겼다. 내 코가 개코인 줄은 어떻게 알고, 특히 고소한 깨소금 맛에는 사족을 못 쓴다.

한국 대학병원에 있을 때, 간호사 친구 보경이가 갓 들어온 인턴 의사에게 잘 보이려고 다이어트를 했다. 까칠하다는 둥, 잘 난체 한다는 둥 온갖 험담이란 험담은 다 하더니 결국 그 말은 관심있다는 반어적인 표현이었다.

나는 놀려주려고 도넛 한 봉지를 사다 주었다.

“지금 다이어트 중이야. 눈치도 없이.”

“아이고 고소해라. 무슨 냄새가 이렇게 고소하니.”

나는 도넛을 한 입 깨물었다.

“이 개코야, 너나 많이 먹고 불어터져서 평생 혼자 살아라.”

보경이가 악담을 했다.

“너는 좋으면 꼭 험담하더라. 이 오두방정아.”

도넛 모양의 시미트가 3개에 1리라였다. 너무 저렴했다. 나는 2리라를 주면서 3개만 달라고 했다. 그리고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시미트를 머리에 인 소년’

나머지는 사진모델료. 어린 녀석이 가엾어서 1리라를 더 주고 싶은데 적선하듯이 주기는 싫었다. 시미트를 야금야금 먹어가며 닿은 곳은 톱카프 궁전이다.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조금 전 터키 소년이 친구들을 여러 명 데리고 왔다. 시미트를 머리에 인 소년 부대가 왔다. 아예 일렬로 서 포즈를 취했다. 그림이 돼 보여서 한 컷 찍었다.

‘시미트를 머리에 인 소년부대’

“1리라. 1리라.”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생떼를 썼다. 결국 적선하는 꼴이다.

‘내가 오두방정을 떠는 게 아닌데….’

톱카프 궁전에는 하렘지구가 있다. 그 옛날 중동을 지배했던 오스만 제국 술탄의 후궁, 수 백 명이 모여 살면서 한 마을을 이룬 곳이다. 아라비안나이트 마니아인 나로서는 안 둘러볼 재간이 없었다.

하렘은 갖출 건 다 갖춘 곳이다. 방이 삼 백 개가 넘는다. 모스크도 있고, 병원, 학교, 정원, 수영장, 심지어 무시무시한(?) 지하감옥까지 있다.

둥근 대리석 기둥을 징금다리 삼아 아치형 복도가 이어졌다. 복도 벽면은 모자이크 타일에서 내뿜는 푸른빛으로 고풍스런 향기가 가득했다. 아랍어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하렘 거리를 걷는 무슬림 여인들을 나는 뒤따라갔다. 서로 생김새는 다르지만 옷차림은 ‘아바야’ 한 벌로 맞췄으니까.

나는 걷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노예로 팔려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왕을 기다리며 하렘에서 살았다면 여긴 궁전이었을까, 감옥이었을까?’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여자기숙사에 근무하는 김 사감은 사우디인 의사의 두 번째 부인이다. 일부다처제인 사우디에서는 돈 있고 능력 있는 남자는 공식적으로 네 번까지 결혼할 수 있다. 사우디 국왕 알 사우드 가계에는 왕손만 3천명이 넘는다. 그야말로 왕손 천국이다. 얼마나 많은 밭에다 씨를 뿌렸으면 왕손 천국이 되었을까 싶기도 하다.

리야드 병원에 한국인 남자 임상병리사 한 명은 사우디에서 못 태어난 걸 늘 후회한다.

“넌 사우디에서 태어났으면 여자로 태어났을 거야”, 하며 내가 놀려도 말이다

김 사감은 첫인상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호기심이 갔다.

‘왜 둘째 부인이 되었는지….’

김 사감과 친해지고 싶었다. 나는 저녁시간에 필리핀 요리사에게 신라면을 주며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한지 한 달 뒤였다. 여기서는 누군가와 친하고 싶으면 신라면을 대접하라는 말이 있다.

김 사감은 할랄 음식만 먹는다. 이슬람 율법에 허락된 음식이다. 돼지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다행히 신라면은 수프가 소고기 맛 베이스였다.

“한국 음식이 그립지 않나요. 김 사감님.”

“여기 음식도 입에 잘 맞아요. 적응하기 나름이죠.”

그녀는 신라면을 후루룩하며 먹었다. 입 안에서 주물럭주물럭 했다.

“그래도 아직 한국음식이 맛있네요. 흐훗.”

그녀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 생활은 어때요?”

“수진씨는 그게 궁금했구나. 흐흣. 혹시 내가 둘째 부인이라는 것도 궁금해요. 어떻게 한 집에서 첫째 부인과 같이 살까? 궁금한 게 많겠네요.”

“그냥,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잖아요. 여긴 사우디라고 하지만….”

“결혼도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적응하기 나름이겠죠. 좀 더…… 친해지면 말해요. 문화적인 충격도 클 거니까.”

그녀는 신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다 먹고 나서는 눈을 감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려 히잡을 벗었다.

톱카프 궁전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이슬람 성물 전시관에서 들렀다. 여러 성물 중에서 눈에 띄는 보물이 있었다.

‘예언자의 외투’

이 외투에 대해 소개한 글을 예전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7세기경 예언자 무함마드는 신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 종교를 넓혀나갈 때였다. 당시는 사람도 제물로 바치는 다신교 사회라 이슬람을 적대시하는 정적들이 많았다. 정적들과 피 튀기는 종교전쟁을 벌여나갈 때, 당시 상대편에 가담했던 시인 중 한 명이 그를 찾아와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칭송시를 읊었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감탄하며 그 시인에게 그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하사했다. 그 후로 이 외투는 이슬람의 관용과 통합을 상징하는 성물이 되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이스탄불로 이 성물을 가져오려고 애섰다. 단지 옷 한 벌일 수 있지만 이슬람이 지배하는 관용과 새로운 문화를 여는 징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거창한 설명을 했지만, 내 눈앞에 있는 ‘예언자의 외투’는 단지 유리전시장 안에 보관된 전리품처럼 보였다.

하렘에 가둔 수 백 명의 여자 노예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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