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골살이

詩골살이 ep.4 '하루가 킸다'

시골사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형 시

by 김재석

ep.4 봄이 그냥 왔다는 빈 말일랑은



春が来た(하루가 킸다)


일본어로 봄을 ‘하루(はる)’로 읽는다.


젊은 날, 일본 유학 시절.

나는 아사히(朝日) 신문사 장학생으로 알바하며, 도쿄 옆 가와사키 시에 있는 한 지점 기숙사에 기거했다.

일본은 거리에 벚꽃이 필 때 쯤 봄이 온다고들 한다.


나는 새벽 신문 배달을 마치고, 다다미가 깔린 기숙사 2층 방으로 들어와 창문을 열었다.


“아, 하루가 킸다!”


기숙사 담벼락 너머로 가지를 뻗친 벚꽃나무에서 꽃망울을 터뜨렸다. 가지를 덮었던 그 잔설을 다 녹여내고 꽃이 피려고 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60CC 오토바이에 300부 가까운 신문을 실고 달리려면 여간 중심을 잘 잡지 않으면 안 된다.

눈길에 미끄러지면 다치기도 하지만 널브러진 신문을 하염없이 바라봐야 한다.


나는 지금도 봄이 오면, “아, 하루가 킸다!”고 말한다.

묘한 뉘앙스가 있다.

기억이 중첩되기도 하고, ‘하루’라는 일본말을 좋아한다.


꼭 우리말에 ‘하루’ 같아서다.


벚꽃은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꽃이 피는 시기가 무척 짧다. 짧다 못해 굵게 핀다고들 한다.


‘짧고 굵게’


나의 하루(봄?)도 벚꽃처럼 장렬하게 피고 지기를…


냉방처럼 차가웠던 3평 남짓 다다미방에서, 누에고치처럼 마음을 돌돌 말고 그 해 겨울을 났었다.



나는 남향으로 터를 잡아 지은 집, 거실 팔각 정자에 앉아있다.


따뜻한 물에 녹차를 우려내 마시고 있다.


창 밖 텅 빈 텃밭을 바라보며,


‘올 해는 뭘 심지?’ 한다.


그런데 불현 듯 이게 봄일까? 싶다.


하루(봄)는 왔는데 내 마음의 봄은 젊은 날에 가 있다. ‘하루하루’ 하며, 그 하루를 다 방전했던….

지금의 나는 젊은 날, 그 하루를 빚졌다.



봄이 그냥 왔다는 흔한 빈 말일랑…



잔설을 온 몸으로 녹인다는

벚꽃 말에

내 마음

‘타닥타닥’

화덕 하나 피웠다


지난 겨울

냉방에 덩그러니

누에고치같이 돌돌 감은 마음

나처럼 아팠다면


먼 훗날 그대,


잊지 않기를

그대 앞에 꽃길 놓으려

내 온 몸으로

낯 붉디붉게 피워낸 봄 날


봄이 그냥 왔다는 흔한 빈 말일랑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詩골살이 ep.3 내집을 내가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