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사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형 시
귀농, 그 첫걸음은 집구하기다. 그런데 어렵게 빈집을 구해도 보통은 전면 개보수가 필요하다.
빌린 집이라 고치기도 뭐해 임시방편으로 살다가, 한 겨울을 지내보면 그냥 말이 필요 없이 내 집을 짓고 싶다.
2014년 3월, 순창에 귀농해서 임시거처를 구하고, 땅을 이곳저곳 알아보았다. 의욕만 앞섰던 귀농 1년차라 농지를 임대해 서리태와 오디, 하우스에서는 쌈채소도 키웠다. 농사의 지난(至難)함은 둘째 치고 농사로는 참 밥벌이하기 힘들었다. 균핵병으로 오디농사는 접었고, 다른 농작물도 공판장 가격에 휘둘리다 보니 직판을 해도 제값받기가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농민 심정이 가슴 시리게 와 닿는, 일 년간의 농사경험이었다.
그 과정에서 땅이 구해지자, 자연스레 관심이 주변 시골집으로 돌아갔다.
가난하게 때론 소박하게 살아온 촌부들의 나이만큼이나 늙어버린…….
보통 동네에서 몇 채는 도회지에 잘사는 자녀들의 도움으로 양옥으로 번듯하게 수리했다.
하지만 어떤 집들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당시 초가지붕을 석면 슬레트 지붕으로 바꾼 그 때의 모습이거나, 칼라강판으로 지붕무늬만 바꾼 집들이다.
1970년대 가수 최정자가 노래한 ‘정이든 내 고향 초가삼간. 오막살이 떠날 수 없어. 님과 함께 늙어버린’ 고령화된 집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이 분들의 집과 조화로우면서도 마을에 역동적인 활기를 불어넣는 그런 집을 짓고 싶었다.
촌스러우면서도 촌티(?)나지 않는…….
집은 보통 ‘삶을 담는 그릇’ 쯤으로 비유된다. 팔덕면 태자마을에 땅을 구하고 집을 설계할 때, 어떻게 지을까보다 이곳에서 어떤 삶을 담을까를 제일 먼저 물었다. 의미를 담지 못하면 백년, 천년을 살아도 그저 하루 산 것과 다름없듯, 집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기성복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집을 다 짓고 나서, 친형이 직접 붓글씨를 써서 벽에 걸 편액을 하나 만들어주었다.
“僞學日益, 爲道日損, 時中”(도덕경 48장, 중용)
풀이하면 ‘학문은 닦을수록 더해가고, 도는 닦을수록 덜어낸다. 둘 사이의 역동적 균형’ 쯤 된다.
이제 지천명(知天命: 나이 50을 일컫는 말)에 가까운 나이가 되다보니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야 할 것이 많은 삶이지만 ‘시중(時中), 역동적 균형’이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내 삶을 담는 그릇에 들어갈 뽀다구(?)있어 보이는 글귀였다.
집은 처음부터 내 손으로 지을 결심이었다. 뭐니뭐니 해도 머니(money)가 딸렸고,
‘네가 좋아서 간 시골이니까 집도 네가 알아서 지어봐.’ 하는 돈줄 꿰찬 안방마님의 곱지 않은 협조 때문에 ㅠㅠ.
“건축비 6천, 예비비 천만원. 그 안에서 지어!”
오더를 받고 나는 팔을 걷어붙였다. 스케치북을 꺼내어 집 설계부터 꼼꼼하게 내 손으로 그렸다. 입면도를 그리고, 평면도에 방 치수까지 일일이 지정했다. 그 그림을 건축설계사무소에 맡기며 이대로 설계해서 건축허가를 받아달라고 했다.
건축설계사 왈,
“건축학과 나왔어요?”
“아니, 어깨너머로 본 건 많아서리. ㅋㅋ”
2016년 3월초에 터 닦기 시작하여, 기초공사를 마쳐놓고 4월 중순부터 골조공사에 들어갔다. 집의 뼈대를 만들 때 지붕의 엇갈림을 생각했다.
시골에 흔한 삼각지붕은 ‘時中, 역동적 균형’이란 내 그릇에 맞지 않았다.
거실과 방을 두 건물로 분리하고, 두 개의 외쪽지붕으로 엇갈리게….
내려가는 지붕(내려놓음)과 올라가는 지붕(쌓아감)이 만나 그 중간쯤에서 균형을 잡는 엇갈림의 미학이 들어있다. 뭔 개똥철학인가 싶지만 실용성도 있다. 남향인 거실 쪽은 천정을 높여 여름에 통풍이 잘 되게 하고, 방 쪽은 천정은 낮게 하는 대신 지붕은 높여 다락방을 만들었다. 다락방은 큰 공기층이 되었고, 겨울에 단열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정남향으로 향을 잡아 친환경에너지 설비(태양광, 태양열)도 고려한 뽀대이다.
세계건축사를 바꾼 아이디어를 보면 지붕의 변화를 볼 수 있다. 고대 돔(Doom)같은 기하학적 조형미를 갖춘 지붕도 있지만, 건축거장 르 코르지에 같은 사람은 아파트와 같은 단순한 평지붕 구조로 현대 도시구조를 설계하고 만들어냈다.
나는 시골 자연기후 조건을 잘 활용한 지붕을 설계하고 싶었다.
여기에 벽은 이중 판넬 조립식 구조. 외벽은 100mm, 중간에 공기층을 50m 두고, 내벽에다 50m 판넬을 또 대었다. 그러면 단열효과가 크다나 뭐다나, 그래봤자 판넬 값(?)이라고, 건축주 주머니 개털니는 건 아랑곳없이…….
여하튼 외투에다 내복까지 입혔으니 겨울을 지내보면 알 일이다.
뼈대를 만들 때는 순창에서 시공 잘하기로 소문난 박창현, 광현 두 형제분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원형 흙집을 짓는 귀농 동기 정완이 자기 집처럼 성심껏 도와주었다. 난 뭐했냐면, 음! 물건 사서 나르고, 같이 들어 올리고, 밥도 사주고. 폼만 잡았나? 삼각지붕 짓는 데만 늘 익숙했던 박 사장님이 엇갈린 지붕을 올리며 ‘뭘 이따구로 지어?’ 했다. 귀농동기 정완이 대신 답했다. ‘냅두세요. 지 집인데.’
외부를 마치자, 내부 인테리어 마감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내심 고민이었다. 사실 내부 마감재를 뭘 사용하느냐에 따라 평당 건축비가 천지차이다. 단가를 낮춘다고 해서 새집증후군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이 많은 시멘트나 벽지의 공업용 본드 같은 것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닥 미장은 황토 몰탈로 하고, 내벽도 벽지대신 황토성분이 거의 100%에 가까운 황토페인트를 칠했다. 방과 거실 천정 마감은 B급 편백나무 – 옹이가 많아 값이 싸다는 이유로-로 했다. 결과는 안방마님이 말해줬다. 다 지은 집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더니 향기 좋다! 골치 아픈 새집 냄새도 안 나고…, 하며 개운하단다.
난 속으로 ‘그래, 황토페인트 칠한다고 개고생했다.’
귀농 초기, 한 할머니가 거주하던 12평 정도의 판넬 집에서 8개월 정도 월세로 살았다. 그나마 거실과 부엌, 화장실이 연결된 집이었다. 그 집은 시멘트로 바닥을 미장했는데, 한 겨울에 기름보일러를 가동해도 방이 잘 데워지지 않고, 식기도 금방 식어버렸다. 기름 값이 장난 아니게 들어갔다. 거기다 100mm 짜리 판넬 한 장으로 외벽을 하다 보니 단열이 되지 않아 무척 춥게 지냈던 기억밖에 없다. 그래서 내 집을 지을 때는 꼭 단열과 축열을 고려한 집짓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연유로 바닥 마감재로 생각한 것이 황토다. 황토로 바닥을 두껍게 발라서 한번 보일러를 가동하면 오랫동안 열을 머금게 했다. 황토 미장한 바닥을 말리기 위해 며칠 보일러를 가동했다. 저녁에 2시간 정도 가동했는데 그 머금은 열기가 다음날 아침까지 갔다. 이러니 황토에 매혹 당할 수밖에…….
거실 쪽을 만들 때, 개성있는 연출을 하고 싶었다. 큰 창에 소파가 있는 풍경이 아닌, 팔각 정자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일본식 피트 – 방바닥보다 낮게 파내어 걸터앉거나 그 안쪽에 앉을 수 있도록 한 구조- 이다. 나는 젊었을 때, 일본 동경에서 5년간 유학생활을 했었다. 일본 주택은 나무 마루 위에 다다미를 깐 구조인데, 평수가 큰 집에 가보면 거실 쪽에 원형 피트를 설치한 곳이 많다. 온돌문화가 없다보니 거실 피트에 둘러앉아, 가운데 화로를 피우고 추운 겨울을 보낸 그들 선조의 주거흔적이 그대로 이어진 까닭이다. 요즘은 냉난방 설비가 좋아, 그런 피트에 장식용 연못을 만들거나 소파 대용으로 이용한다.
나는 팔각형으로 피트를 만들어 고유한 전통미도 살리고, 바깥 풍경도 감상할 수 있는 유유자적한 공간연출을 했다. 맞은편엔 11자 아일랜드형 부엌을 만들어서 카페같은 분위기도 연출했다. 전통식과 현대식의 역동적 균형(?). 식탁에 앉아서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고, 높은 천정 밑 팔각 정자에 앉으면 녹차를 한 잔하고 싶은…….
처음부터 친환경에너지 설비를 구상했다. 원전으로 갈등도 많고,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작은 나라에서 에너지 소비는 세계 10위국이다. 방 쪽의 외지붕이 남향으로 경사지게 한 이유도 태양광 전지판과 태양열온수기를 설치할 요량이었다. 결론적으로 지붕에 태양열온수기만 설치했다. 태양광은 실용성 면에서 좀 더 검토가 필요했다.(사실은 보조금 나올 때 없나 구멍 쑤셔보고 있다^^;) 지금 기름보일러 가동 없이도 매일 따뜻한 물을 쓰고 있다. 설마 태양은 청구서를 안 보내겠지.^^;
여기에다 이웃 분들은 기름값 아끼려고 화목보일러를 많이 놓는데, 나는 거실과 작은방을 연결해 로켓스토브 벽난로와 황토 구들침대를 놓았다. 벽난로에서 장작을 지피면 그 복사열이 거실과 작은방 구들침대를 데우는 구조다. 마침 집을 지을 때, 순창귀농학교에서 벽난로 교육실습이 있어서 내 집에 실습을 부탁했다. 재료비만 대주고, 백동선 선생(완주 ‘나는 난로다’ 운영위원장) 과 제7기 귀농학교 학생 10명이 실습 겸 자원봉사를 했다. 끝나고 교육생들 뒷담 까는 걸 들어보니 집주인이 해야 할 생고생을 자기들이 다했단다. 난 뭐 놀았냐?ㅋㅋ
독일의 한 건축가는 ‘건축은 공간으로 변화된 시대의 의지이다. 건축은 살아있고 늘 새롭다.’란 말을 했다. 일명 칸트의 철학에서 따온 시대정신인데, 각 시대마다 각자의 자연스런 표현을 발견하고, 세계의 계획을 펼친다는 이야기다. 이런 행위를 통해 그 시대정신을 만들고, 그들의 위치를 규정하는 능동적인 힘이 작용한다. 귀농이 대세가 된 시대! 귀농인의 집에는 어떤 시대정신을 담거나 또는 덜어내야 할까? 나쁜 놈 전성시대란 영화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살아있네!’
시골에 내려와 죽은 듯이 살다가 친구들에게 이 소리 듣지 말고, 점점 활기를 잃어가는 고령화된 농촌마을에 살아있는 집을 지어 활기를 불어넣어 주면 어떨까!
집은 다 짓고 나면 집주인의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종합창조행위를 같이한 모든 이의 작품이 된다.
농촌의 풍경이 된다.
僞學日益, 爲道日損, 時中 (도덕경 48장)
(학문은 닦을수록 더해가고, 도는 닦을수록 덜어낸다
둘 사이의 역동적 균형)
집,
삶을 담는 저 그릇엔 뭘 담을까
해 뜰 무렵 나와 저물녘까지
똑딱 똑딱
집을 짓다 되물었다.
한 쪽에선 쌓고 쌓다
한 편에선 내려놓았다
엇갈림(X)
한 집에 든 두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