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게임화

Gamification_column_246

by 석주원

분노의 시대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 불가한 다양한 사건들이 언제나 뉴스를 뒤 덥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서 라는 이유부터 아는 사람은 물론이고 친족부터 일면식도 없는 대상까지 가리지 않고 예상치 못한 형태로 분노라는 단어가 들어간 사건들이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분노가 단편적으로 끝나지 않고 큰 후폭풍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대상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인 혐오는 주변을 둘러보면 분노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음을 보기 쉽다. 정치적인 부분부터 특정 국가 특정 대상까지 특히 원인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 더욱 그렇다.


국가기관 어디에서도 분노를 통해 표출되는 원인을 알려주면 분명이 감소가 확실한 내용임에도 분노에서 혐오로 그리고 분열과 반목으로 이어지는 이 악순환을 줄이려는 실질적인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 이를 막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언론조차 오히려 기름을 붙는 경우가 대다수다.


분노를 나열하고 정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라의 어딘 가에서는 반드시 분노가 응축되면 그 원인을 분석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반복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서서히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 조절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연령에 맞는 감정 조절 방법 자체를 배울 수 있는 체계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산업관련 업무를 하기 위한 안전교육이 의무화되었고 운전 면허를 따는 과정에서도 수시간에 걸친 운전에 관한 교육영상을 시청하는 작금의 시대에 성인이 되는 지점까지 감정을 다루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는다.


과거라면 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국가의 역량을 투입할 곳이 많았고 가족의 숫자가 많아 가족 간의 관계만으로 많은 감정을 배우고 맞벌이도 적어 부모와의 접점도 컸었다. 하지만 요즘은 가족의 유대는 맞벌이로 최소화되고 핵가족과 일인가구는 전연령을 다 삼켜버리고 있는 상태이다.


오히려 온라인에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누군가의 선동이나 유언비어에 더 크게 흔들리고 사실 확인도 없이 극도의 분노와 거기서 출발한 혐오만 온 세상을 더 쉽게 뒤덮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중고생 단계에서 개인 단위의 스마트 기기를 갖지 않은 사람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와 같은 정의 문화 근거리 이웃 간의 유대를 그리워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을 찾기 위한 노력은 국가와 개인 그 어디서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로 퇴로 없이 빠르게 전진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규 교육과정에서 게임화 된 방식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제어하고 분노를 누그러트리며 혐오의 원인을 분석해서 극복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각 지역에서 세대간 이웃간 소통과 화합이 가능한 다양한 정책을 공급하여 이미 확정된 전국토의 장기적 인구 소멸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격노는 본심을 빼앗아 간다.

「 베르길리우스 」


by 한국게임화연구원 석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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