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ification_column_252
시간과 의지만 있다면 수많은 창작 카테고리에서 무한창작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마치 과거에 특정 시절에 사치품이던 후추가 전지구적으로 기능했던 것에서 지금 일반의 언제나 편하게 구할 수 있는 일상속으로 들어온 수준의 혁신이라고 생각된다. 모두에게 더 접근하기 쉬운 창작의 자유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창작의 황금기라 볼 수도 있는 시점에 더 많은 뉴스와 관심들이 소멸되는 일자리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큰 것도 사실이다. 빈부격차와 마찬가지로 사용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 간의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의견도 다수다.
하지만 정작 수많은 다수인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만드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은 시대이다. 마치 영화계가 OTT에 가진 것으로 보이던 공포들이 공존과 상생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게임산업이 광고경쟁 중심에서 이제는 숏폼과 대결 분위기로 가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시대의 흐름이 호흡이 긴 창작물들이 호흡이 짧은 창작물을 중심으로 큰 시류가 변해가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에 따른 변화가 큰 영향을 준 것이지 각 스타일에 더 좋은 콘텐츠가 등장한다면 방법과 형태는 절대적이지 않다.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벗어난 것으로 보였던 독서가 전세계적으로 힙함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물론 독서 자체보다 겉멋에 더 치우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를 통해 작더라도 북 꾸미기를 비롯한 아날로그적 감성들이 멸종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경험 패키지로 발전하고 있다고 본다.
극장도 이제 즐기는 방식이 다른 형태로 해석된다. 스스로를 가두고 일정 시간 동안 하나의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는 요소로 받아들여 진다. 모든 바쁨에서 해방 되 온전히 하나에 집중하기 힘든 작금의 시대에 집중을 할 수 있는 새롭지 않은 것이 새로운 수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향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다양한 예측이 있지만 결국 사람들 각자가 가치를 느끼는 콘텐츠는 시대와 성별을 뛰어 넘어 살아남게 될 것이다. 다수가 망했다는 극장에서 왕과사는남자 같은 결말도 모두 알려져 있는 콘텐츠가 시대의 중심에 서있는 것만 보아도 누구나 확인이 가능하다.
역설적으로 방법이 아니라 본질이 더 중요해지는 무한창작의 시대가 올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한다. 각자는 각자의 창작 수단을 골라서 가장 잘 맞는 카테고리에서 창작을 이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 오히려 그런 시대를 위한 모두가 자신을 찾는 교육체계가 없는 것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
결국 창작이 게임이 되는 세상에 도달하리라 생각한다. 하나의 직업이 평생을 지켜주는 경우는 끝없이 줄어들 것이며 이를 극복할 방법은 최소 한 개 이상의 수익 파이프 라인이 개개인에게 구비되어야만 미래에 대한 안전장치가 가능하다. 이로 인해 우리는 창작을 게임처럼 실행하게 할 것이다.
개인마다 비중은 차이가 있겠지만 메인으로 하는 본업과 혹시나 본업 자체가 붕괴되어 전환이 필요 할 때 생존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어 줄 수 있는 창작 말이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안주하며 살게 되면 올라가는 삶의 난이도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창작을 통한 도전만이 남게 될 것이다.
도전은 우리의 잠재력을 깨우는 기회다.
「 조셉 캠밸 」
by 한국게임화연구원 석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