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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ul 27. 2016

그래! 술에는 장사가 없구나

매일 술 마시던 50대 남자에게 찾아온 경고

방심했다. 아니, 내 몸을 과신했다. 자만한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술로 혹사시킨 대가였다.


사실 나는 매일 술을 마셨다. 거의 하루도 빠진 일이 없었다. 어떤 날은 점심 때 마시고, 저녁에 또 마시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괜찮다고 자위했다.


그렇게 자만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술 마시는 원칙이 있었고, 그걸 대체로 지켜왔기 때문이다. 즉 술은 1차만 한다. 아무리 늦어도 자정 이전에는 귀가하여 잔다는 원칙이었다.


그런데 이 원칙에 함정이 있었다. 사람들과 술자리는 1차에서 파하고 왔지만, 집에 들어오면서 늘상 편의점에 들러 캔 맥주를 두어 병씩 사왔던 것이다. 그렇게 컴퓨터 앞에서 페이스북을 보며 나홀로 2차를 했으니, 사실상 '1차만 한다'는 원칙은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주부터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속이 쓰리기 시작한 것이다. 술자리에서 술맛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마셨다. 일요일까지 그렇게 마셨다.


월요일 아침 일어났더니 잇몸이 부었다. 나는 피곤하면 종종 잇몸이 붓는다. 약을 찾아보니 다행이 '효과빠른 잇몸 치료제'라 적힌 게 보였다. 이왕 먹는 약 빠른 효과를 보겠다는 심산에 두 알을 동시에 삼켰다.


이때부터 속이 심하게 쓰리기 시작했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더니 왼쪽 옆구리까지 통증이 왔다. 사무실서 간신히 버틴 후 퇴근했다.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식욕도 없고 복부는 더부룩했다. 잠자리에서도 내내 불편했다.


화요일 아침 일어났지만 위통은 더 심해졌다. '약을 잘 못 먹었나?'하는 생각이 들어 어제 먹은 약이 들어 있던 종이곽을 살폈다. 그런데 종이곽에 적혀있는 약의 이름과 그 안의 내용물이 달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내가 먹은 약은 속효성 소염(항염) 진통제였다. '사용상의 주의사항'을 살펴보니 '경고'라는 단어와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매일 세 잔 이상의 음주자가 이 약 또는 다른 해열진통제를 복용할 때는 의사 약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위장출혈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노란색 칸의 경고.

일단 출근은 했으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조퇴를 하고 약국에서 '짜먹는 위장약'을 사서 집으로 왔다. 그걸 먹으니 아주 약간 통증이 덜한 것 같았다.


집에서 내리 잤다. 오전 11시 잠들어서 오후 1시에 깼다. 그리고 1시 30분에 다시 잠들어 오후 3시 30분에 깼다. 집에 있던 누룽지를 조금 끓여 먹은 후 다시 잠들었다가 오후 7시 30분쯤 아내가 사온 전복죽을 1/3쯤 먹었다. 그리고 9시쯤 잠들어 다음날(수요일) 아침 6시 40분까지 잤다.

이틀 동안 죽만 먹었다.

내가 이렇게나 많이 잘 수 있다는 데에 놀랐다. 화요일 오전부터 수요일 아침까지 무려 16시간 정도를 잤던 것이다. 자고 나면 또 잠이 오고, 깨었는데 또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잠이 왔다. 심지어 6시 40분에 깨었던 수요일 아침에도 8시쯤 다시 잠들어 10시에 깼다. 이것까지 합치면 18시간을 잔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계속하여 잠이 온 것은 그동안 누적된 피로와 무리했던 몸이 스스로 치유를 위하여 그랬던 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자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위통도 많이 가셨다.


하지만 수요일에도 회사엔 휴가를 썼다. 그게 오늘이다. 오늘은 어제처럼 그렇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일부러 잠을 청해보기도 했지만 잘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밤 11시,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끄적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도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동안 금주했다. 매일 빠지지 않고 마시던 나로선 획기적인 일이다.


이젠 다시 자야 한다. 내일 아침이면 거뜬하게 일어나 출근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다시 술을 마실 수 있을까?


다음날도 거뜬하진 못했다. 출근은 했으나 결국 후배 손에 이끌려 병원엘 가야했다. 링겔(성분은 뭔지 모르겠다) 한 병을 맞고 나왔다. 몸이 힘든 건 한결 나아졌으나 술은 역시 무리였다.


그 다음날인 금요일은 블로거 팸투어에 참가하기로 약속되어 있던 날이다. 약속을 깰 순 없어서 나갔다. 토요일까지 1박 2일 일정을 어렵게 소화했다. 중간중간 술을 마실 기회가 있어 몇 잔 마셔봤지만, 몸에서 거부하는 게 역력히 느껴졌다.


토요일 오후 집에 돌아와 또 다시 정신없이 잤다. 그렇게 일요일까지 쉬었다.


월요일 출근했다. 결국 또다시 병원에 갔다. 다시 치료를 받았다. 이제 날이면 날마다 술을 즐기던 좋은 날은 다 지나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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