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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Aug 22. 2017

갑자기 유명해지면 생활이 불편하다

문득 떠오른 옛 기억

느닷없이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젊은 시절, 갑자기 유명인사로 떴던 일.


첫번째는 1988년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했을 때였다. 당시 학생들은 데모를 엄청 많이 했는데, 한 번은 교수식당을 점거해 농성을 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그해 '4.2사태' 때문이었던 것 같다. '4.2사태'란 백기완 선생이 경상대학교 칠암캠퍼스 야외에서 초청강연을 했는데, 갑자기 경찰이 학내로 진입해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해산시키면서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했던 사건이다.


이후 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연일 계속되었고, 그 와중에 교수식당 점거농성까지 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농성은 지루한지라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짜서 각 단과대별로 장끼자랑 비스무레한 것을 했는데, 내가 인문대 차례에서 나가 수백 명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하필 그땐 레드제플린 로버트 플랜트의 샤우팅 창법에 꽃혀 있을 때였는데, 민중가요 '불나비'를 그 창법으로 좀 쎄게 불렀던 것 같다.


그 후 캠퍼스를 걸을 때마다 많은 학우들이 다가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 불나비 불렀던 분 맞죠?" 하면서 말이다.


갑자기 유명인사가 된 기분, 한 편으로는 기분 좋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불편했다. 사람들을 의식해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아마 군대를 제대한 다음해였으니 이런 모습이었지 않나 싶다. 군복 바지에 군화를 등산화 대용으로 신고 있다.


두번째는 창원 대방동 성원임대아파트에 살 때다. 성원토건이라는 제법 큰 건설업체가 아이엠에프 때 부도가 났다. 임대아파트였던 만큼 전세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전체 입주민 총회가 열렸는데, 이야길 들어보니 기존의 입주민 대표들이 완전 건설회사에 구워삼긴 어용이었다.


그들이 주도하는 회의를 참지못하고 내가  일어서서 일장 연설을 했다. 어용 입주민대표자들을 탄핵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그 결과 입주민들이 압도적으로 내 주장에 찬성해 비대위가 꾸려졌다. 물론 나도 비대위원이 되었다.


그날부터 또 생활이 불편해졌다. 예전엔 아침에 머리도 안 감은 상태에서 슬리퍼 질질 끌며 담배 사러 가기도 했는데, 그때부턴 그럴 수도 없었다. 만나는거의 모든 아파트 주민이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 아파트 단지 안에서 나의 익명성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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