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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un 04. 2017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쥐포 장수를 하던 기억

그 밑바닥 인생들과 버스 차장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내고 있을까

"쥐~포나 오징어 요구르트 땅~콩이 왔습니다. 땅콩이나 오징어 요구르트 쥐~포~."


1983~4년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이른바 '쥐포 장사'를 했다. 터미널 옆골목 무진장여관 옥상 가건물 방에서 '경원이 형님'이라는 퇴역 건달이 물건을 공급해주는 '오야'였고, 나는 그 밑에서 일하는 '꼬붕'이었다. 요구르트와 쥐포 등을 팔아 동전을 잔뜩 갖고 가면 원가를 떼고 내몫(100원 쥐포 30원)을 분배해주었다. 하루 1~2만 원 정도를 벌었던 것 같다.


플라스틱 바구니에 쥐포 등을 담아 왼팔에 끼고 시외버스에 올라 승객을 상대로 파는 일이었다. 평소엔 그냥 "쥐포나 요구르트~"를 외치며 버스 안 맨 뒤까지 갔다가 나오는 동안 승객이 부르면 팔고 부르는 이가 없으면 그냥 내렸다.


그런데 유난히 안팔리는 날에는 작심하고 버스에 앉아있는 승객들 한 명 한 명에게 "쥐포 하나 드시죠?"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면 아무래도 매상이 좀 올랐다. 그 말을 듣고도 못본 척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승객에겐 어깨를 툭툭 치면서 "쥐포 사라고요!"라며 눈을 부라리기도 했다.

무진장여관이 있던 곳. 지금은 모텔로 이름이 바뀌었다.

가끔 인근 도시에서 시덥잖은 건달이 와서 "교도소 다녀와 개과천선" 운운하며 승객들에게 공포심을 조성, 볼펜 한 자루에 쌩돈을 갈취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우리가 합심하여 그놈을 남강둑 아래로 끌고가 두들겨 패서 쫓아보내기도 했다. 일종의 영역침범에 대한 응징이었다.


밥과 술은 무진장여관 맞은편에 있던 백반집에서 주로 먹었는데, 시외버스 기사와 안내양(차장)들도 단골로 대놓고 먹는 식당이었다.


안면이 익은 예쁜 차장들이 "오징어 부랄(또는 다리) 하나 떼주소"하여 떼어주고 나면, 그걸 어떻게 알고 다리 숫자가 모자란다고 따지는 손님 때문에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하루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 한 분이 일행과 함께 탔다가 날 보고 "니, 여기서 이거 하냐?"라며 정말 동정어린 눈빛으로 오징어 두 마리를 사주셨던 기억도 난다. 당황한 탓에 내가 대학 재학 중이라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황망히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선생님은 '고등학교 때 어지간히 공부 안 하고 애먹이더니 결국 저렇게 먹고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무진장여관이 있던 자리는 다른 이름의 모텔로 바뀌었고(그 옆 국도여관은 그대로인듯), 맞은편 식당은 그대로인데 그때도 '부자식당' 간판이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밥을 사먹던 식당.

내가 파는 것 중 오징어가 가장 비쌌다. 다음은 땅콩, 쥐포, 요구르트 순이었다. 요구르트 이름은 '영남요구르트'였다.


터미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당시 함께 일하던 밑바닥 인생들과 버스 차장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내고 있을까?


#당시_영화여객의_한_차장아가씨가_참_예뻤다 #혹시_그때_저_보신_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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