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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Aug 09. 2015

"서울로 가야 할 사람인데" 욕일까 칭찬일까

내가 지역신문을 떠나지 못한 까닭

"김 기자는 지방신문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중앙지로 가야죠?"

한 공무원이 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내 면전에서. 이걸 칭찬으로 봐야 할까, 모욕으로 봐야 할까.


물론 그는 칭찬의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신문은 중앙지보다 규모와 영향력이 작고 월급도 적게 받으며, 거기서 일하는 기자의 질도 떨어진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이 말을 들었을 때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아닙니다. 저는 우리 지역을 지킬 겁니다. 지역신문 기자로 제가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뭐 이런 대답으로 넘어갔지만 그가 제대로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하긴 나도 다른 신문사나 다른 직종으로 이직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한 번은 부산에 있는 신문사로부터, 한 번은 서울에 있는 신문사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물론 둘 다 사양했다. 앞엣 일은 내가 노동조합에서 간부로 일하고 있을 때였고, 뒤엣 일은 지금 재직 중인 경남도민일보가 창간된 지 1년, 2년 됐을 때였다.


노동조합 간부를 맡는다는 것은 그 조직의 동료들과 운명을  함께한다는 의미다. 그런 간부가 동료들을 버리고 제 혼자 잘 살겠다고 노동환경이 좀 더 나은 회사로 떠난다는 것은 정말 비겁하고 나쁜 짓이다. 노동조합 간부라면 투쟁하여 자기 회사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지역신문 가판대 @태인

또 창간 당시 시민주주 500여 명으로부터 수천만 원의 돈을 주식대금으로 받았다. 내가 직접 만나 받은 것만 그랬고, 전체로는 5800여 명 9억 5000만 원이었다. 단돈 1만 원(2주)만 낸 사람도 있지만,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100만~200만 원 이상을 낸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것도 IMF로 다들 어려웠던 1998년, 1999년이었다.


그렇게 남의 생돈을 받아 신문 창간을 해놓고 1~2년 만에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다른 신문사, 그것도 부산이나 서울로 옮겨버린다면 이건 사기나 다름없는 '먹튀'에 해당한다. 그래서 단연코 갈 수 없었다. 2000년 처음 제안이 왔을 때 그래서 거절했는데, 1년 후엔 2001년에 또 같은 곳에서 제안이 왔다. 그때도 역시 같은 이유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2007년인가? 공무원으로 오라는 곳이 있었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생긴 위원회였는데, 거기에 조사팀장(5급)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연락해온 사람은 '적어도 4급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TO(정원)이 그렇데 밖에 안 된다'며 미안해했다. 이 제안에는 약간 흔들렸다. 그곳에서 하는 일의 성격이 내 사명감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명분도 있었다. 신문사도 창간된지 8년 정도 되었으니 지금쯤 떠난다 해도 욕 먹을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그곳도 거절하고 말았다. 영원한 기자, 그것도 영원한 지역신문 기자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위원회가 영구적으로 존속되는 기관도 아니었고, 일정한(4년이었나?) 활동기간이 지나면 해체될 곳이었기 때문이다. 호남지역 언론계에선 기자가 선거 때 후보 캠프 일을 봐주고 그가 당선되면 따라가서 개방직 공무원으로 일하다 임기 끝나면 다시 신문사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양심과 소신상 그건 아니었다. 한 번 떠난 이가 다시 언론계로 돌아가는 일은 후배들을 욕먹이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벌써 지역신문에서 일한 기간만 26년이 됐다. 만일 그때 다른 곳으로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잘 되었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왜? 그만큼 떳떳하고 지금 하는 일이 충분히 재미있으니까.


앞으로 여기 더 얼마나 있을진 모르겠다. 현재 맡고 있는 일의 임기가 3년이니 그 기간 동안은 있겠지만, 그 이후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길 그만두어도 나는 지역에서 취재하고 글 쓰는 일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 그게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고 내 즐거움이자 보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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