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헌법행위자열전에 포함, 조봉암 사법살인 3.15의거 용공조작
-조인구는 오제도, 강서룡과 함께 이승만 정권의 공안검사 3인방.
-1958년 진보당 사건과 조봉암 사법살인 수사와 공판에서 주임검사로 ‘평화통일론‘을 북한의 주장과 같다고 몰아붙여 사형 구형.
-조인구는 또 1958년 장건상, 박정호, 김성숙 등 진보인사 20명이 국제변란을 꾀했다며 기소.
-1960년에는 치안국장(현 경찰청장)으로 있던 중 3.15마산의거 당시 숨진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올라 4.11항쟁이 벌어지자 14일 마산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열고, “제2마산사건에 가담한 데모자 중에는 오열, 불순분자가 침투되어 있다. 경찰은 조속한 시일내에 그 주모자를 색출해내겠다”고 말했다.
-조인구 치안국장은 19일 오전 0시 5분 치안국에서 기자들과 회견한 석상에서 18일 오후 서울시내에서 감행된 고려대 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학생들이) 신입생 환영회를 빙자하여 합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계획적인 시위를 했다는 것은 순수한 학생들의 집회를 시위로 이용한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다“고 학생들만 탓했다.
이에 기자들이 “이날 고려대생들의 시위는 신입생 환영회장에 경찰관이 수십 명 끼어 있어 경찰이 학생의 자유를 침범한 것으로 본 학생들이 격분해서 감행하게 된 것”이라는 학생들의 입장을 전하며 경찰의 학원 간섭에 대해 질문하였다. 그러나 조 국장은 답변을 회피하였다.
-고려대 시위대가 18일 밤 종로4가에서 100여 명으로 추산되는 깡패단의 습격을 받고 유혈극이 벌어진 후 약 4시간이 지난 밤 11시 경, 정치깡패이자 반공예술단 단장 임화수가 조인구 치안국장을 방문하였다.
치안국 소식통에 의하면 이날 밤 임화수와 유지광이 치안국에 나타나 임화수 혼자만 치안국장실에 들어갔다.
-1958년 1월 25일, 서울지법 제7호 법정에서 김재옥 부장판사 담당, 조인구 검사 관려 아래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된 진보당 위원장 조봉암 외 7명(윤길중, 박기출, 김달호, 조규희 조규택, 김기철, 신창균)에 대한 구속적부심 심사가 열렸다. 25일에 이어 27일에도 구속적부심 심사가 계속 진행되었다. 29일, 형사제2합의부는 증거인멸과 도피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 조봉암 등 피의자 8명에 대해 적부심사신청 기각을 결정하였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나온 4.19 당일에는 홍진기 곽영주와 함께 조인구가 발포 명령 최고 책임자로 지목되었으나 이후 재판에서 모두 무죄로 석방돼 국민 분노.
몇 년 뒤 다시 기소돼 고작 징역 3년.
*사진은 마산 김주열 열사 시신 발견 후 4.11항쟁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조인구(앉아있는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