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열사 시신유기범 박종표의 정체

일제 때 독립운동가 때려잡던 악명 높은 헌병보조원 출신

by 김주완

내친 김에 김주열 열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박종표란 인간에 대해서도 말해야 겠다.


3.15의거 당시 박종표는 마산경찰서 경비주임이었다. 3월 15일 저녁 7시 20분경 박종표는 무학국민학교 앞 3000여 명의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 10여 명을 지휘, 로켓포탄 형태의 최루탄 발사를 명령했다. 이 최루탄에 오른쪽 눈을 관통당한 김주열이 죽었다.


박종표는 이날 밤 10시경 교통주임으로부터 최루탄이 눈에 박힌 괴이한 형상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말을 듣고 손석래 마산경찰서장에게 보고해 "알아서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길로 지프차에 김주열의 시신을 싣고 마산세관 앞 해변가에서 철사줄로 큰 돌을 가슴에 매달아 바다에 던졌다. 이 과정은 이후 재판과정에서 박종표의 자백과 당시 지프차 운전수 김덕모 씨의 2016년 고백(경남도민일보 보도)으로 입증된다.


이를 보고받은 손석래 마산경찰서장은 '만약 바다에서 시체가 떠오르면 어떡하냐? 차라리 암매장할 것을...'하며 후회하는 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그의 우려대로 4월 11일 김주열의 시신이 27일만에 떠올랐다.


"(해변에서 공놀이를 하다) 바다에 공이 빠져 건져내려고 물가 쪽으로 갔었는데 해변에서 10여m 떨어진 바다에 이상한 물체가 보였어요. 자세히 보니 사람 머리였습니다."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모습. 부산일보 허종 기자 촬영


마침 오늘자 경남도민일보에 보도된 최초 목격자 김정기(85, 당시 고교 2년) 씨는 시신의 머리에 무언가 박혀 있었고 몸통이 선 채로 바다에 잠겨 있었는데, 두 손을 모은 모습은 가드를 올린 권투하는 자세였다고 한다. 상체는 물때 묻은 흰 메리야스, 하체는 검은 군복 바지에 검은 운동화 차림이었다.


그날 입은 흰 메리야스에 대해 김주열의 3월 9일자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3월 9일(수요일), 어머니가 샤스 사줌(5백환). 오늘 쌀 한 가마니 팜. 어머니로부터 3천환 받음, 목욕함(80환)"


김주열의 눈에 박힌 최루탄은 직경 40미리, 길이 180미리, 꼬리부분에 프로펠러가 달려 있는 대무장 폭도용으로 '직접 군중을 향해 쏘지마라'는 경구가 영어로 적혀 있었다. 건물벽을 뚫고 들어가 폭발하는 이 최루탄이 김주열의 오른쪽 눈을 관통해 불발 상태로 왼쪽 아래까지 45도 각도로 박힌 것이다.


이런 만행을 저지른 박종표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뿌리를 찾아보니 일제 때부터 악명 높은 헌병 보조원 출신이었다.


부산 출신인 그는 1944년 일제 헌병보조원이 되어 헌병오장(하사관) 신상묵(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친)과 함께 독립운동가를 체포, 고문, 구속하는데 앞장섰다. 대표적인 사건만 보면 다음과 같다.


맨 오른쪽이 박종표


-학인동우회 사건으로 김주석 등 고문.

-정장호 고문 후 병사 사건.

-황학명 사건. 황학명 외 9명 고문.

-부산세무과직원사건. 4명 고문, 2명 사망.

-부산부두 미곡사건. 2명 체포 고문.

-양태의 사건. 2명 체포 고문.

-김상수 사건. 4명 체포 고문.

-김영민 사건. 3명 체포 고문.

-손유호 외 1명 체포 고문 사건.

-부산학생 사건. 8명 체포, 그 가운데 3명 고문.

-무궁당 사건. 20명 체포 고문, 주도자 김한경 고문 후 병사.


반민특위 박종표 관련 진술서


신상묵과 박종표는 일제 말기의 부산경남 일대의 '고문귀'였다. 독립운동가에게 손가락 고문, 곤봉, 목검, 군홧발로 난타한 후, 식도에 호스를 꼽고 물을 강제로 먹인 뒤 배를 눌러 토하게 하는 고문, 욕조를 물에 채워 완전히 얼린 다음 그곳에 사람 하나 앉을 공간을 파서 피해자를 앉혀 놓은 뒤 얼음물을 계속 끼얹고 난 후 피해자가 실신하면 부채질을 해 깨운 다음 다시 얼음물을 퍼붓는 방식을 자주 썼다.


또 불에 달군 화로를 가슴에 얹어 놓거나, 불로 살을 찢는 방법, 손발을 모아 결박한 후 허공에 매달아 놓고 폭행하는 방법(비행기식 고문), 전기고문, 피해자를 결박한 후 깊은 물에 완전히 담궜다가 꺼내는 방법, 관 속에 피해자를 넣어 놓고 관에 물을 주입해 피해자를 죽음 직전까지 가도록 하는 방법, 맹견이 있는 방에 밀어 넣어 맹견이 사람을 물어뜯도록 하는 방법 등을 썼다.


학인동우회 사건에서 김주석(당시 17세, 이후 마산에서 미술교사)를 고문할 때는 구타와 손가락 고문에 이어 관 속에 넣어 물을 주입하는 고문을 썼다. 또 고문으로 죽은 여러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 주며 ‘너도 이렇게 한다’고 협박했다.


이들의 고문으로 죽은 이도 많았다. 정장호 사건도 그 중에 하나다. 신상묵 박종표는 닷새 동안 정장호를 고문한 끝에 죽기 직전에 이르자 헌병대 뒷담으로 밀어 던져버렸다. 그리곤 정장호가 탈옥했다고 보고했다. 정장호는 기다시피 겨우 집에 도착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피를 토하고 죽었다.


신상묵의 일본식 이름은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 박종표는 ‘아라이 겐기치(新井源吉)’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아라이 고조(오장)' 또는 '아라이 겐빼이(헌병)'이라고 불렀다.


이런 작자가 대한민국 경찰이 되어 시민에게 총질을 하고 살해하는 것도 모자라 시신유기까지 했던 것이다.


박종표가 사형 구형을 받을 당시 동아일보 보도
김주열 시신유기 사건 현장검증. 하얀색 한복 입은 놈이 박종표



그는 처벌을 받았을까? 해방 직후 반민특위에서 조사를 받긴 했다. 위의 독립운동가 체포 고문사실도 그 과정에서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흐지부지됐고 그는 무죄로 나왔다.


4.19혁명 직후에도 김주열 살해 및 시체유기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시체유기만 유죄로 인정받아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박정희 정권에서 징역 7년으로 감형을 받아 석방됐다. 이후 부산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천수를 누리고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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