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들은 들켰다고 생각했던 걸까
1987년 여름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 복학을 기다리며 고향에서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짓고 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제대를 기다리며 경운기를 구입해놓고 있었고, 경지정리를 마친 논에서 돌멩이도 걷어내지 않은 상태였다. 우선 그런 논에서 돌멩이를 골라내고 논둑길을 만들고 복토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6월에 제대하여 한여름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처음 배우는 경운기 운전은 서툴렀고, 몇 번이나 사고가 날 뻔 했다. 그래도 경운기가 없었다면 그 일을 해낼 수 없었으리라.
어렵게 마쳤으나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묏논(산을 개간해 조성한 논)과 묏밭을 과수원으로 만들고 있었다. 두 마지기쯤 되는 묏논에는 수박과 토마토를 심었고, 그 위쪽 묏밭에는 복숭아와 사과나무를 심었다. 외삼촌이 제안하여 시작된 과수원이었으나 노동은 모두 아버지와 나, 그리고 막내 동생의 몫이었다.
묏밭 적당한 곳에는 원두막도 지었다. 그 일도 따로 목수에게 맡기지 않고 우리가 직접 했다. 낮에는 과수원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내려가 저녁을 먹은 후 동생과 함께 원두막에 올라가서 잤다. 더운 여름이라 원두막에 자는 건 문제가 없었으나 비가 오는 날이 골치였다. 비닐을 둘러싸 빗물이 들이치는 걸 막았다. 처음엔 산속에서 밤을 새운다는 게 약간 무섭기도 했다. 원두막 인근에는 무덤도 있었다. 그러나 동생과 함께였고, 며칠이 지나니 무서움도 사라졌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날은 좀 느지막이 저녁을 먹고 컴컴해진 상태에서 원두막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절반쯤 올라갔을까? 위에서 중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 서너 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대학에 다니다 군대에 갔고,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비록 그 아이들이 우리 동네 녀석이라 해도 누군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동생은 아는 녀석들인 듯했다.
아이들이 우리를 지나치며 약간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그래 어디 갔다 오노?" 뭐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지나쳤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원두막에 도착해 시원한 밤바람을 쐬며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우릴 지나쳐 내려갔던 아이들이 다시 원두막 쪽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녀석들이 가까이 왔다. 땀이 흐르고 있었다. 한 녀석의 양팔에는 아이들 머리 만한 수박이 한 통 안겨 있었다. 그제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았다. 녀석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인처럼 말했다. "수박서리를 해서 죄송하다"고...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녀석들은 어둠을 틈타 서리한 수박을 뒤로 감춘 채 우리와 지나쳤지만, 아무래도 찜찜하고 불안했었나 보다. 자기네들끼리 우리가 알아챘을지 아닐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을 테지. 결국은 다시 올라가 이실직고하고 용서를 빌자는 결론을 냈던 모양이다.
녀석들의 행동이 귀여워 이왕 서리한 수박은 가져가서 먹으라며 용서해줬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며 다짐도 받았다. 특히 수박을 따려면 칼이나 가위로 꼭지를 깔끔하게 잘라야 하는데, 서리를 하면서 수박넝쿨을 무리하게 잡아당기면 아직 익지 않은 어린 수박들까지 모두 상하게 된다고 나무랐던 기억이 난다.
당시 수박농사가 매년 그리 잘 된 것은 아니었다. 이듬해였던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했던 기억도 난다. 수박씨를 좀 비싼 걸로 사와야 하는데 싼 걸로 사오는 바람에 수박이 저 모양밖에 안 된다는 잔소리였다. 아마도 한 봉지에 2000원 짜리를 사왔어야 하는데 아버지가 1000원 짜리를 사왔던 것 같다. 그때 아버지의 변명이 걸작이었다.
"그래도 흥농종묘 '특선'인데 '특선'이라고."
포장지에 적혀있는 '특선'을 강조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선하다. 이제 두 분은 모두 돌아가시고 없다. 요즘 같은 태풍의 계절이 오면 그 과수원과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89년 7월 말 부산 경남지역을 덮친 태풍 쥬디로 인해 힘들여 심어놨던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가 거의 모두 뽑혀버렸던 것이다. 하필 그날은 아버지가 어디론가 출장을 가고 안 계실 때였는데, 내가 다음날 아침 현장을 목격하고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허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