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기술이 흔든 미디어 생태계 - 변화와 쟁점들

[언론중재] 특집 기

by 김경달

언론중재위가 운영하는 계간지 '언론중재'의 2025년 겨울호에 기고한 글이다.


3개의 기획물 가운데 첫번째 꼭지로 개괄적으로 현황과 쟁점을 정리했다.

[FOCUS ON MEDIA(1)] AI 기술이 흔든 미디어 생태계, 변화와 쟁점들 - 김경달(고려대학교 미디어대학원 겸임교수)

[FOCUS ON MEDIA(2)] 뉴스룸에 들어온 인공지능 기술, 독일까 득일까 - 오세욱(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FOCUS ON MEDIA(3)] 우리는 어떻게 인공지능 기술에 대응해 나갈 것인가. 언론보도와 AI를 둘러싼 법·제도적 문제들 - 라기원(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이번 글을 쓰면서, 그 덕분에 스스로 조감도를 그리듯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도 됐다.


기고글 가운데 분량이 가장 많은 경우인 듯 하다.

(200자 원고지 80매가 제안받은 기준선이었다)


위 링크에서 'e-Book 보기'로 열람하거나 해당 링크 통해 다운로드 받아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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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이 흔든 미디어 생태계, 변화와 쟁점들


1. 우리 곁에 다가온 ‘낯선 지성’, 모든 것의 규칙이 바뀌다


2022년 11월 30일, 세상은 조용한 빅뱅을 맞이했다. 오픈AI(OpenAI)가 ‘챗GPT(ChatGPT)’를 대중에게 공개한 날이다. 그 이전의 인공지능(AI)은 바둑으로 인간 최고수를 이긴 알파고(Alphago)처럼, 우리 삶과 분리된 경이로운 기술에 가까웠다. 전문가의 영역이었고, 대중에게는 관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챗GPT는 달랐다. 이메일을 대신 써주고, 어려운 보고서를 요약해주며, 심지어 조언과 농담까지 건네는 ‘대화 상대’로 우리 곁에 스며들고 있다. 기술은 그렇게 일상이 되었다.


이 낯선 지성의 등장은 사회 전반의 작동 방식을 뒤흔드는 커다란 화두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매우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충격을 받은 곳이 바로 미디어 생태계이다. 정보를 만들고, 퍼뜨리고, 소비하는 모든 과정이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포토샵’ 같은 새로운 편집 도구가 등장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미디어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세 개의 거대한 기둥이 동시에 재정의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첫 번째 기둥은 콘텐츠 생산(Production)이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여겨졌던 창작의 과정에 AI가 직접 개입하며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두 번째 기둥은 유통(Distribution) 플랫폼 이슈다. 검색엔진과 소셜미디어라는 거대 플랫폼의 규칙이 AI에 의해 새로 쓰이고 있다. 즉, ‘누가 정보를 통제하고 이익을 얻는가’의 관점에서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마지막 기둥은 정보 소비(Consumption)의 문제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지며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신뢰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 글은 AI가 미디어 생태계의 생산, 유통, 소비 전반에 걸쳐 일으키고 있는 구체적인 변화의 양상을 심층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표면적인 현상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변화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핵심 쟁점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이다.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미디어라는 배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그 항해를 위한 첫 번째 지도를 그려보자.


2.1. 콘텐츠 창작의 패러다임 전환 – ‘생산’에서 ‘생성’으로


전통적으로 미디어 콘텐츠는 인간의 기획과 취재 및 집필, 그리고 촬영과 편집이라는 ‘생산’의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하지만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 과정을 ‘생성(Generation)’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제 AI는 인간의 지시 아래, 혹은 스스로 데이터를 조합해 글과 이미지, 영상 등을 실시간으로 무한히 만들어낸다. 이는 미디어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 창작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가. ‘AI 기자’와 ‘AI 크리에이터’의 등장, 그리고 노동의 미래

AI가 작성한 기사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적인 통신사 AP는 이미 2014년부터 AI 스타트업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Automated Insights)’의 기술을 활용해 분기별 기업 실적 기사를 자동으로 작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연간 수천 개의 기사를 인간 기자의 개입 없이 생산해 낸다. 스포츠 경기 결과와 증시 현황, 날씨, 부고 기사처럼 정형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기사 영역은 AI의 효율성을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독일 미디어그룹 악셀 슈프링어(Axel Springer)에 속한 유력 대중지 ‘빌트(Bild)’는 2023년, AI 기술 도입 및 지역판 축소에 따른 구조조정 계획을 공지했다. 이후 편집자와 교열 담당자, 지역판 관리 인력 등 약 200명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단순 업무를 넘어 인간의 판단이 개입되던 영역까지 AI가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미지와 영상 영역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미드저니(Midjourney)’와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등의 이미지 생성 AI는 몇 개의 키워드 조합만으로 순식간에 전문 일러스트레이터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이제 한 명의 블로거도 모든 포스팅에 서로 다른 고품질 삽화를 넣는 것이 가능해졌다.

오픈AI가 공개한 영상 생성 AI ‘소라(Sora)’는 더욱 놀랍다. 2024년 2월 첫 데모영상 발표는 지시문을 작성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 만으로도 고품질 영상 창작이 가능해질 것임을 예고하며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2025년 9월 말 앱으로 출시된 ‘Sora2’는 AI를 활용한 영상 생성의 대중화 선언처럼 다가왔다. 누구나 텍스트 설명문구만으로도,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의 동영상을 뚝딱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이제 영상 콘텐츠 제작의 문법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1인 제작자가 블록버스터 영화의 예고편을 만드는 상상도 현실이 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한다. AI의 창작물을 과연 온전한 ‘창작’이라 부를 수 있는가?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패턴을 모방하고 조합할 뿐, 독창적인 영감이나 철학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인간 기자와 크리에이터의 고유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제 그 가치는 ‘무엇을 만드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드는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현장의 숨소리를 담기 위해 발로 뛰는 취재,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끈기, 권력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 정신,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통찰력 등은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논의는 곧 노동의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AI는 고된 자료 조사나 단순 초고 작성을 대신하며 인간 기자가 더 깊이 있는 취재에 집중하도록 돕는 유능한 ‘조수(Co-pilot)’가 될 것인가? 아니면 결국 수많은 언론인과 창작자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냉정한 ‘대체자(Replacement)’가 될 것인가? 아마도 그 답은 둘 다일 것이다. 단순 반복 업무는 빠르게 대체될 것이고, AI를 능숙하게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AI 콘텐츠 전략가’, ‘AI 데이터 분석가’와 같은 새로운 역할과 직업이 부상할 것이다. 미디어 산업은 이제 이러한 변화에 대비한 재교육과 직무 전환 시스템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 초개인화와 ‘단 한 명을 위한 미디어’의 위험한 매력

AI는 수십억 명의 행동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개개인의 취향과 관심사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파악한다. 당신이 어떤 주제의 기사를 끝까지 읽었는지, 어떤 영상에 ‘좋아요’를 눌렀는지, 어떤 광고를 클릭했는지 모두 기억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오직 ‘당신만을 위한 미디어’를 실시간으로 구성해낸다.

상상해 보자. 매일 아침 당신의 스마트폰으로 뉴스가 배달된다. AI는 당신이 IT 분야의 심층 분석 기사를 선호하고, 정치 뉴스는 제외하고 경제뉴스는 3줄 요약으로 간단하게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다. 또한 유머러스하지만 냉소적인 문체를 선호한다는 것도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어젯밤 나온 수많은 뉴스 중 당신의 취향에 맞춰 IT 기사는 심층적으로, 경제 기사는 간결하게, 그리고 정치기사는 배제해서 보여준다.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로 재구성함은 물론이다. 이런 수준의 초개인화 서비스는 이미 여러 기술 스타트업에 의해 개발되고 있으며, 머지않아 대중화될 것이다.


이러한 ‘맞춤형 미디어’는 사용자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기술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위협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바로 필터버블(Filter Bubble)과 에코챔버(Echo Chamber)의 극단적 심화이다. 내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정보만 계속해서 소비하게 되면, 나의 생각과 신념은 점점 더 강화되고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지게 된다. 나와 다른 의견은 접할 기회조차 없으니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공통의 의제’는 사라지고, 각자의 버블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섬처럼 고립된다. ‘모두가 함께 보는 뉴스’의 종말은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돌이킬 수 없이 증폭시킬 수 있다.


이는 곧 언론사 편집권의 실종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언론사는 공익적 가치 판단에 따라 그날 가장 중요한 뉴스를 신문의 1면이나 방송 리포트의 첫 꼭지에 배치하는 ‘의제 설정(Agenda-setting)’ 기능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초개인화 시대에는 언론사의 이러한 판단이 무력화된다. 알고리즘이 보기에 ‘당신이 클릭할 만한’ 흥미로운 기사만이 선택적으로 노출될 뿐이다. 중요한 탐사보도와 공익 캠페인 기사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해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고 사라질 수 있다. 저널리즘의 핵심 기능이 알고리즘의 효율성 논리에 종속되는 셈이다.



2.2. 유통 지형의 대격변 - 플랫폼의 규칙이 다시 쓰이다


AI는 콘텐츠가 독자에게 전달되는 ‘경로’마저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특히 지난 20년간 미디어 생태계를 지배해 온 검색 포털과 소셜미디어라는 거대 플랫폼의 규칙이 AI에 의해 다시 쓰이면서, 언론사의 생존 모델과 플랫폼의 책임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가. 검색 엔진에서 ‘답변 엔진’으로: 트래픽 제로 시대의 공포

지금까지 미디어와 플랫폼의 공생 관계는 ‘트래픽’을 기반으로 이어져 왔다. 사용자가 구글이나 네이버에 궁금한 점을 검색하면, 플랫폼은 언론사의 관련 기사 링크 목록을 제공한다. 사용자는 그중 하나를 ‘클릭’해 언론사 웹사이트로 이동하고, 언론사는 이렇게 발생한 트래픽을 기반으로 광고 수익을 얻었다. 이것이 지난 20년간 이어져 온 디지털 저널리즘의 핵심적인 사업 모델이었다.

하지만 이제 구글의 ‘AI Overviews’ , 네이버의 ‘AI 브리핑’, AI검색 스타트업 ‘퍼플렉시티(Perplexity)’ 등의 ‘답변 엔진(Answer Engine)’이 이 공식을 파괴하고 있다. 이들은 사용자가 질문을 입력하면, AI가 여러 언론사 기사를 실시간으로 분석·요약하여 검색 결과 최상단에 완결된 형태의 ‘답변’을 직접 제시한다.


예를 들어 ‘2026년 한국 부동산 시장 전망’을 검색하면, 여러 언론사의 전망 기사를 종합해 정리한 분석 문단이 나타나는 식이다. 사용자는 더 이상 여러 개의 링크를 일일이 클릭하며 정보를 조합할 필요가 없다. 이른바

‘제로 클릭(Zero-Click)’ 시대의 도래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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