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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uchi Mar 12. 2023

'더글로리'라는 스토리텔링

'interactive storytelling'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

'더글로리', 끝까지 몰입감 높은 드라마였다.

파트2가 금욜에 공개되면서 이번 주말은 온통 '더 글로리'의 시간이었다. 여운도 제법 길다.


새해 시작할 무렵 시청한 파트1, 그땐 '몰아보기'가 너무 많은 시간을 요하다보니 유튜브 리뷰를 섞어가면서 단축 시청을 했었다. [더글로리] 넷플릭스 몰아보기의 변칙


그런데, 이번에 파트2는 말 그대로 정주행을 했다.
몰입감, 여전히 높았다. 주조연 모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다시 한번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극적인 장면'과 현실. 

최근 '정순신 사건'을 굳이 언급 않더라도 현실이 드라마와 경쟁하는 시절이라 참 혼동스럽다. 이를테면 만약 '학폭' 이슈를 정면으로 다룬 다큐가 이 시점에 만들어졌고, 거기에 재연장면이 나왔다면 더 글로리의 과거 장면과 어떻게 다를까.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만큼 현실이 '극적인' 시절이구나.

(태국에선 더글로리가 흥행하면서 학폭 이슈가 공론화됐고 #TheGloryThai 해쉬태그와 함께 학폭 미투가 번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복수극과 멜로

멜로를 보조장치를 거느린 복수극으로 알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복수가 보조적인 멜로물이 맞지 않나 싶다. 중간에 주인공 사이에 '사랑인가?'를 독백처럼 질문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그리고 그 문답이 도돌이표처럼 재활용되며 '어떻게 끝맺을까?'에 대한 응답이 이뤄지는 걸 보고... 그런 심증이 굳어졌다. 물론, 아무러면 어떠랴.


'잘 만들었다'는 피드백에 관하여.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대학원시절 들었던 [interactive storytelling] 수업이 떠올랐다.

(브런치에 메모를 하게 된 이유도, 그 수업 얘길 어딘가 적어놓고픈 생각이 들어서다)


첫 수업날, 실습이 있었다.

교수는, 본인 이름만 알려준 뒤 곧바로 아래처럼 3가지를 하라고 했다.


1. (책, 연극, 영화 무관) 인상적인 대사 한마디 씩 써내라.


2. 4명씩 조를 짠다. 앉은 자리 근처 넷씩 그냥 뭉쳐라.


(칠판에 창 달린 서재를 하나 그리고선 연극무대처럼 인물 넷의 위치를 설정해준다. 책상에 앉은 이와 창 밖을 보며 서 있는 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와 그를 맞는 이.. 그 넷의 대사 순서도 정해준다)


3. 각자 대사 순서대로 자기가 써 낸 대사를 연기하듯 말하면 된다.


연습 시간이 20분 정도 할당됐다. 

그리고, 5개조가 돌아가며 앞에 나와 '4마디 연극'을 했다.


낱개의 대사는 대체로 넘 진지하고 무거우며 재미없거나,

아주 우스꽝스럽거나... 개성 만발이었다.

게다가 순서도 무작위였다.

자연히, '구성된 이야기'가 될 수 없고 무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른 팀들 발표를 듣는데,

'이게 뭐지?'

신기하게도...

어떤 상황인지, 대충 어떤 사연을 전하고 있는지 상상이 되는 게 아닌가.


'와, 이게 말이 되는구나...!'

나름 재밌었다. 


그런데 교수가 준비한 수업의 핵심은 발표가 아니었다.


발표가 끝난 뒤, 

교수는 모두에게 "가장 기억나는 '스토리'를 말해보라"고 던졌다. 


한 명 한 명 각자가 나름대로 해석했던 스토리가 이어졌다.

그렇다. 해석, 그게 핵심이었다.


누군가의 얘기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고,

어떤 해석에는 감탄사와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스토리텔링에서,

- '던지기'보다 '받기'가 더 중요하구나...

- 받는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잘 던지기가 어렵구나

- 원하는대로 잘 받게 하려면 훨씬 많이 고민하고 잘 던져야 하는구나.

그날 정리된, 또 내가 얻었던 교훈은, 대략 그런 포인트들로 기억한다.


(글쓰다 잠시 검색해보니 그 교수는 본인 이름의 홈페이지를 계속 운영하면서 여전히 왕성한 저술과 강연활동을 이어가고 있어보인다.)


잘 던지는 사람, 김은숙!

김은숙작가는 참 '잘 던지는' 사람이다. 정주행 시간에 더해, 게시판 곳곳에서 열심히 각자 자기가 '받아낸' 해석을 쏟아내며 칭찬하는 숱한 이들을 이끌어 냈으니. 나 또한 이렇게 여러가지 꼬리무는 생각에다 글쓰기까지 헌납할 정도로 열심히 '받고' 있다. 


김은숙작가에 대해 검색해보고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미스터 선샤인' 때였다. 

드라마의 한 장면(위), 1907년 영국인 종군기자가 양평군에서 촬영했다는 의병의 모습(아래)

'미스터 선샤인' 작품 자체도 무척 흥미로웠지만, 작품이 사진 한 장에서 비롯됐다는 전언과 함께 그 사진을 목격하고선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받았다.


결론은, '상호작용(interaction)'이다.
그가 던진 '이야기'를 매개로 상당히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었고 정서적 상호작용이 일어났다. 물론 실시간 대화처럼은 아니지만, 오히려 가볍지 않고 진정성 있게 교감하며 내 생각이 넓고 깊게 일어났다. 고마움과 호감이 동반됐다. 


개인 차원만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울림이 생겼고, 현실 고발의 효과를 낳고 있다. 


그래서, 그는 '참 잘 던지는' 작가다.

 

이 다음에 그는 또 어떤 '이야기'를 던져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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