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를 위하여

삼시 세 끼를 위하여

by 차가운 열정

삼시 세 끼.

이 시대 최고의 화두. 실감 난다. 매 끼니 집에서. 이건 참 놀라운 일이다. 시작부터 나오는 말.

"나 때는."

나 때는 급식이 없었다.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고등학교 다닐 땐 저녁밥도 싸갔다. 두 끼의 도시락 때문에 어깨엔 굳은살이 박일 지경이었다. 나 때는 사물함도 쪼꼬매서, 교과서 5-6권, 양치컵 정도 들어가면 끝이었다. 거기에 체육복이라도 쑤셔 박아두면 문이 닫히지 않아 물건이 흘러내렸다. 그래서 책가방도 항상 꽉 차 있었다. 문제집이나 부교재, 숙제할 것들, 매일 쓰는 연습장과 노트 몇 권 넣으면 책가방 무게가 인생의 무게와 비례한다는 걸 몸으로 배우게 된다. 그 와중에 도시락 두 개라니. 여기에 엄마의 살뜰한 과일이라도 얹히면 그날은 행복과 고통 중 무엇을 택할지 고민이 되곤 했다.



매일 도시락 뭐 싸지?

장바구니에 담기던 도시락 반찬용 식재료들, 고민해봤자 늘 거기서 거기인데도 엄마들은 노상 도시락 반찬 걱정을 했다. 엄마들의 고뇌에 아랑곳없이 우리에게 도시락은 학교 생활의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중학교 때는 점심 도시락 하나뿐이었고, 그래도 그때는 규율에 민감했던 때라 꼬박꼬박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펼쳤지만 고등학교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이들은 0교시부터 수업하느라 아침을 굶고 오기 일쑤였고, 0교시가 끝남과 동시에 점심 도시락을 아침 식사로 먹어 치웠다. 그리고 저녁 도시락이 식거나 상할까 봐 걱정하는 엄마들을 위해 우리는 저녁 도시락을 점심때 당겨 먹었다. 우리 도시락은 대체로 오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사이에 다 끝났고, 저녁 식사는 매점이 담당해주었다. 도시락 두 개가 다 끝난 오후 수업과 야자는 이미 그날 예약된 행복이 끝난 것 같이 나른하고 지루했다.



그랬던 도시락의 시대가 끝났다.

아이들은 정해진 점심시간 외엔 식사를 당기지도 미루지도 못하고 규칙적으로 먹게 되었다. 반찬은 공평해졌고, 서로 나누어 먹는 풍경도 사라졌다. 조금 더 먹고 싶어 하는 아이와 뒷줄에 있다가 조금 덜 먹게 되는 아이의 차이는 다음날 조금 더 일찍 먹으면서 아껴먹고 조금 나중에 먹으면서 넉넉히 먹는 차이로 메꾸어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점점 가장 잘 챙겨 먹는 끼니가 점심 급식이 되었다. 아침은 그냥 나오고 저녁은 학원 가기 전 길거리 음식으로 때운다. 점심 급식만이 탄단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고열량 끼니가 되어가고 있다. 엄마들이 집에서 밥 챙겨줄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엄마들의 도시락 전쟁이 끝났고, 집에서 밥순이 전쟁도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랬던 엄마인데.

코로나로 집콕이 되면서 일 년 내내 거의 삼시 세 끼를 다 집에서 챙겨 먹이는 초유의 사태가 생겼다. 나 때는 멸치볶음 콩자반에 김치랑 도시락 김 정도면 훌륭한 도시락이었는데, 먹거리가 더 풍부하고 단짠이 더 넘쳐나는 시대의 아이들은 아침 점심 저녁 다 다른 메뉴를 요청한다. 나 때는 점심 저녁 도시락 반찬이 같아도 당연한 줄 알고 감사히 먹었건만, 같은 재료일지라도 다른 조리법을 쓴다든지, 냉파를 하더라도 더 지혜롭게 해먹여야 한다. 도시락 싸던 엄마들의 고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 같다.



원래 나는 '라떼는' 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서로 다른 세대를 향해 자기가 살았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불편하다. 어른들의 라떼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조금은 더 젊은 마인드인 것 같고 조금은 더 열린 태도인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 자꾸만 '나 때는' 하고 말이 시작되려고 하고, '나 때는' 어쩌고 하며 말이 끝나려고 한다. 나 때는 반찬 투정 없이 뭐든지 잘 먹었는데, 나 때는 아토피 같은 것 없어서 음식 안 가려 먹었는데, 나 때는 김밥이 최고의 특별식이었는데, 요즘 애들은 왜 이럴까? 너무 음식이 풍부해서? 내가 너무 까탈스럽게 키웠나? 이런 생각.



그러면서 슬쩍 들리는 양심의 소리.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된 오후 수업, 고3, 재수 생활까지, 총 11년을 울 엄마는 도시락을 싸셨다. 막내 동생까지 그 기간으로 따지면 16년. 총 16년 간 애들 도시락을 싸신 엄마의 수고와 헌신, 그 어마어마한 라떼 앞에서 나는 고작 이 1년간 오래간만에 집에 붙어서 밥순이 해준 것으로 쉽네 어렵네 해가며 투정 부린 건 아닌지. 사실 어린이집 다니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두 아이 점심은 급식으로 먹이고 아침은 주먹밥이나 미역국밥에 저녁은 퇴근하고 바빠 거의 사다 먹였는데, 딱 지난 한 해 육아 휴직하는 동안 코로나가 겹쳐, 엄마로서는 운 좋게 아이들을 집에서 따뜻하게 먹여놓고, 이제 와서 '나 때는' 아무 거나 잘 먹었노라고, 기라성 같은 '라떼님들' 정성 앞에서 내 라떼를 들먹이다니.



이를 테면, 이런 라떼의 정서.

라떼는 연탄불 꺼뜨리지 않는 게 미덕이었지. 위에 있던 연탄을 아래로 내리고 그 위에 새 연탄을 올렸어. 연탄을 제 때 갈지 않으면 불이 꺼져 버리거든. 그때는 아랫목 윗목이 확실했지. 연탄 때다가 일산화탄소 때문에 죽는 사람들도 있었잖아. 겨울만 되면 연탄 몇 백 장 들여놓는 게 김장과 더불어 가장 큰 행사였어. 연탄불 위에 물동이 얹어서 데운 물로 씻고 말이야. 이런 이야기. 그땐 그랬다. 지금보다 어려웠다. 그렇게 고생했던 우리가 있었다. 힘들어도 우린 잘 해왔다. 지금 어려운 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더 잘 해낼 수 있다. 이건 인내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더한 위기도 이겨왔다. 너희는 그런 우리의 다음 세대이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 힘내라. 견뎌라. 할만하다.



이렇게 들린다. 자꾸만 라떼가.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라떼의 사연이 궁금하고 라떼가 그리운 마음도 이해가 되려고 한다. 어른들의 억척스러운 라떼 시절이 숙연할 정도로 존경스럽고 라떼를 들먹이는 어른들의 잔소리에서 그분들의 자긍심이 느껴진다. 무식했던 시절, 혹은 무지했던 시절, 주어진 환경이 지금보다 덜 갖추어졌거나 조금 더 아날로그였던 시절. 그렇게 내던져지듯 그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의 단단하고 야무진 경험들이 참 소중하고 위대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분들처럼 해낼 수 없었을 것 같은데, 치열하게 한 생을 살아내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툭 내뱉는 말.



라떼는 그랬어.



지금은 어쩌면 좀 더 쉬운 시절.

냉동식품, 냉장식품, 반조리식품, 간편식, 완제품, 배달식 등등 쉬운 방법도 얼마든지 널린 이 시대에, 매일 도시락 싸는 것 같은 정성과 끈기라면 아이들의 남은 겨울 방학도 몸 튼튼 마음 튼튼 삼시 세 끼, 할만하다.



엄마 라떼 한 잔 먼저 마시고.


라떼는 '보온밥통'=겨울 도시락의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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