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높은 산을 오르는 낮은 발걸음
최근 엄마는 좀 아팠다.
코로나로 인해 방문한 지 일 년도 훨씬 넘은 친정. 아픈 엄마도 마음이 쓰이고 부산 외갓집이라도 콧바람 쐬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생각해서 짧은 일정으로 잠깐 뵈러 갔다. 아이들과 경주 나들이라도 할까 하니 엄마가 슬쩍 따라나섰다. 걷는 것도 쉽지 않고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바람을 쐬고 싶어 하셨다. 항상 엄마의 옆에서, 혹은 뒤에서, 요즘 갑자기 서툴러진 엄마의 걸음걸이를 보살피는 아빠도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효도여행이 되었다. 심지어 당일치기로. 이 인원이 한 방으로는 숙소를 잡을 수도 없는 4인 완성 시대. 그렇다고 숙소를 따로 잡기엔 뭔지 모르게 어색하고 찝찝했다. 엄마 체력도 어떨지 알 수가 없고. 그냥 뒷동산 산책 나가듯 일단 한번 가보자, 한 것이다.
엄마의 걸음걸이는 참으로 더뎠다.
특히 오르막은 정말 힘들어했다. 다리가 버들버들 떨렸고, 애써 다리를 끌어올려 한발 한발 영혼을 실어 걸었다. 석굴암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올라가는 계단도, 오르락내리락하는 석굴암까지의 600m 남짓 산길도 쉽지 않았다. 이제 엄마의 걸음은 생각만으로 자동으로 걸어지는 것이 아니라 걸음마다 움직임을 깊이 고려하고 다리의 신경을 하나하나 달래어가며 섬세하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흐름을 잡아 움직여야 하는 수동 시스템이었다. 엄마는 남은 걸음을 그렇게 많은 시간으로 환산해야 한다. 그 걸음은 온전히 낮아져 있다. 오르막의 끙끙댐은 내리막의 떨림과 제로섬, 걸음에 공짜란 없다. 얼마나 공을 들여 걷고, 얼마나 숨이 차게 걷는지. 한 발짝마다 생명이 배어 있다. 하지만 아무 불평이 없다. 주여, 감사합니다, 하면서 걷는다. 마지막 한 걸음까지, 마비 없이, 그저 걷다가 죽겠다고, 지팡이를 짚더라도 혹 부축을 받더라도, 내 걸음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올곧게 걷다 죽겠다고, 혼자 기도를 뇌이며 나아간다. 그 모습은 흡사 구도에 가깝다. 불심으로 지어진 석굴암으로 가는 길 위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종교가 전혀 다른 엄마의 걸음이 겸허하게 작은 감사의 발자국으로 이어진다.
아빠가 그 뒤를 이어 걷는다.
오르막에는 팔을 내민다. 아주 작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오르막도 아빠는 조용히 팔을 내민다. 아빠가 팔을 내밀면, 여기가 오르막이었나 하고 다시 보게 된다. 그러고 보면 정말 아주 아주 소극적인 오르막이긴 하다. 넘어질까 봐 약간 뒤에서 걷다가 오르막이 되면 옆으로 왔다가, 계단이라도 만나면 뒤에서 아예 밀어 올리거나 앞에서 끌어당긴다. 넘어질까 봐 세게 하지도 못하면서 시늉인지 뭔지 모르게 마법 같은 크고 작은 힘으로 엄마를 붙잡는다.
아빠는 신을 믿지 않았다.
평생 엄마가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아프다. 그러니 엄마를 이제는 믿지 않는다. 엄마가 믿는 신을 믿는다. 이런 개종은 참 좋은 일이다. 엄마교는 아무래도 어쭙잖다. 아빠는 자기 여신이 더 이상 날개옷을 입을 수 없다는 걸 눈치챘다. 아빠라고 딱히 강인하진 않다. 디스크 수술도 하시고 아직도 통증으로 약을 달고 사신다. 당뇨와 고지혈증으로 혈액 순환도 어려워 발가락은 종종 감각이 무디다. 뭐가 어찌 되었든 이제 내 몸 하나도 쉽지 않은 연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엄마의 지팡이 노릇을 자처한다. 그러고 보면 두 분의 여정은 늘 이래 왔다.
엄마는 집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그래서인지 나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집을 장만했다. 골목 안 둘째 집이었던 우리 집은 첫째 집을 또 사서 텄다. 골목은 마당이 되고 골목 입구는 대문이 되었다. 개조된 길쭉한 집에 엄마는 만족하지 않았다. 옆집이 일층은 화단으로 꾸미고 이층부터 삼층까지 생활공간으로 설계하여 우리 집엔 볕이 들지 않았다. 드디어 엄마 아빠는 햇볕이 잘 드는 경사진 골목 꼭대기에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볕이 잘 들고 화단이 둘러쳐진 예쁜 2층 집이었다. 그곳에서 내 학창 시절이 대부분을 보냈다. 엄마는 집을 예쁘게 꾸미곤 했다. 계절마다 다른 분위기의 커튼이라든지, 소소한 테이블 받침대라든지, 사철마다 다르게 피고 지는 꽃, 부엌 뒤편엔 깨끗하게 닦은 장독대, 베란다엔 작은 연못과 넓은 새장, 곳곳에 우리가 그린 그림 액자들, 구석구석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엄마는 늘 공주 같은 인생을 살았다. 아빠의 온실 속 화초였다.
IMF의 고통이 몰아닥쳤다.
엄마가 가꾼 집안에 딱지들이 붙었다. 그 딱지들을 도로 떼기 위해 집문서를 넘겼다. 집문서와 함께 엄마의 평생의 삶도 날아간 것 같았다. 신축 빌라로 집을 옮기더니 6개월 만에 그 집을 더 비싸게 팔아넘기고 또 이사를 했다. 다시 이사 간 집에서 엄마는 이삿짐을 다 풀지 않았다. 당장 먹을 냄비와 당장 입을 옷가지 몇 벌뿐, 그렇게 두 계절을 보내고 또 엄마는 그 집을 팔았다. 그 집에서는 대부분 집을 수리하고 인테리어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먼지만 실컷 마시고 떠나왔다. 그렇게 엄마는 서너 번의 경매로 이 집 저 집을 사고팔았고, 여유 자금이 없었으니 당연히 이사를 감당해야만 했다. 집을 사고팔면서 낸 세금보다 남은 이윤이 더 많았고, 그 돈으로 아빠의 빚을 갚았다. 아빠는 운영하던 작은 마트를 그렇게 처분했다. 그리고 엄마는 마침내 더 이상 팔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작은 아파트로 옮겼다. 더 이상 딱지가 붙지 않는 엄마의 공간을, 또다시 엄마는 베란다에 꽃을 피우고 거실 곳곳에 액자를 걸어가며 손때를 묻혔다. 온실이 무너진 화초는 전사가 되어 황야에 적응했고, 도리어 아빠를 위한 온실을 만들었다.
그러던 집에서 이제 나와야 한다.
엄마는 나와야 살 수 있다. 자꾸 걸어야 한다. 아파도 힘들어도 걷지 않으면 삶이 푸석해지는 병에 걸렸다. 노화의 진행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진 것인지, 근육이나 신경에 관한 어떤 병이 생긴 건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둘 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정착한 집, 애써 되찾은 집, 구구절절 아빠의 빚을 감당해낸 엄마는 이제 그 집을 두고 아빠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야 한다. 이젠 아빠 차례이다. 엄마의 위로와 열정으로 삶의 위기를 견디고 넘겨왔다. 죽고 싶은 순간도 있었고 죽을 뻔한 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의 기도가 있었고 삶에 대한 의지와 동기를 부여받았다. 이제는 아빠가 다시 엄마의 작은 온실이 되어가고 있다. 신앙이 없던 아빠에게 간절한 믿음이 시작되었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소리 내어 엄마를 위해 기도했다. 포기하고 싶다고 울기도 하는 엄마를 붙잡고 당신 스스로도 걷기 싫고 힘든 언덕길을 올라가며, 한걸음 한걸음을 소중하게 나눈다.
석굴암 도착.
석굴암은 초6 수학여행 때 와보고는 처음이다. 석굴암을 마주 보고 뒤로 펼쳐진 토함산 전경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땐 뭔가 알 수 없는 경외감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 이렇게 큰 석상이 이렇게 반듯하게 떠오르는 해를 마주 보고 이렇게 우뚝 솟아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웠다. 현대의 기술로 만들려고 해도 보통 일이 아닐 텐데, 무려 1300년 전에 자갈돌을 절묘하게 쌓아 굴을 만들고 그 안에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돌을 날라 섬세한 석상을 만들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 대단한 왕권이 기반이 된 튼튼한 나라였음에 감탄해야 할지, 이 정도 불심이 깊었던 종교적 집념에 대해 감탄해야 할지, 당시 이런 과학에 기반한 지식과 기술력 및 석수의 예술적 감각에 감탄해야 할지, 호국을 위한 애틋한 충심에 감탄해야 할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감동은 다른 데에 있다.
주차장에서 석굴암까지 7-800m 정도의 길.
엄마 아빠가 손 붙잡고 서로의 미세한 떨림에 서로를 채워가며 걸어온 7-80 세월 그대로, 기도로 피땀으로 한 발짝씩 엉겨온 길 끝에 서 있는 두 사람. 삼 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토함산의 일출을 반듯하게 마주 본 암자에서 어제의 아픔과 상실을 삼키고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 다시 세상으로 쏘아내는 인자한 미소를, 오늘 이 노년의 부부에게서 발견한다. 괜히 모시고 와서 고행길인가 싶어 슬쩍 죄송할 뻔했다. 엄마 아빠는 서로를 붙잡고 어쩌면 천국의 길을 오르고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석굴암은 이래저래 정말 위대한 민족의 유산이고 인류의 보물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은 응, 그냥, 응, 신라 대단해, 건성건성, 경주 보물 지도 스탬프 찍느라 정신없다.
그래, 나에게도 저런 나이가 허락된다면, 그때 너희 아빠랑 같이 와서 석굴암의 위대함을 몸소 보여주마, 얼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