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찬미]_죽어야 살았던 여인의 노래

윤심덕과 정점효,조선의 두 여인.

by 차가운 열정

'사의 찬미'로 유명한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

'왈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남자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며 쾌활하고 적극적인 성품으로 굵고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신여성. 일찍이 독실한 기독교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나 신식 교육을 받고, 일본의 관비유학생으로 도쿄대에 입학하여 성악을 전공, 온갖 염문을 뿌리며 뭇 남성들의 사랑을 받은 희대의 모던 걸.



그가 자살했다.

'김우진'과 함께,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중 현해탄에서 함께 투신. 하지만 아무도 목격한 사람은 없다. 시신도 없다. 신문에서는 그들의 죽음을 대서특필했다. '정사(情死)'라고.



지난 3일 밤 11시에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항해하던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가 4일 오전 4시경 쓰시마섬 옆을 지날 즈음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 신사 한 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에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했는데, 즉시 배를 멈추고 부근을 수색했으나 종적을 찾지 못했다. 승객명부에 남자는 전남 목포부 북교동 김수산(30세), 여자는 경성부 서대문정 2정목 273번지 윤수선(30세)이라고 씌어 있지만 본명이 아니고, 남자는 김우진, 여자는 윤심덕으로 밝혀졌다. 관부연락선에서 조선 사람이 정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해탄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 ‘동아일보’ 1926년 8월5일자)



하지만 이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요소들이 많다.

시신을 발견하지도 못했고, 동양인 남녀가 이태리 어디선가 악기점을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사의 찬미'를 녹음한 뒤 세기적인 죽음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던 심덕은 십만 장이라는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발매 기록을 세우며 음반 시장에 큰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그래서 레코드 사의 계획된 살인이라는 둥, 혹은 자작극이라는 둥, 별의별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당시 이런 식의 정사는 구습과 자유연애사상의 격돌이 빚어낸 심심치 않은 참사이기도 했다. 스타와 재벌의 만남과 죽음이었기에 어쩌면 더 큰 화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으로써 모든 의무와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안타까운 모던 보이와 모던 걸 (좌) 김우진 (우) 윤심덕






그들에겐 사실 이미 각자가 짊어지고 온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그들이 죽음을 불사할 만큼 애틋하고 절망적인 사랑에 빠진 상태도 아니었다. 윤심덕이 사랑한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으며, 김우진은 이미 아내와 두 아이를 둔 유부남이자, 전에 일본인 간호사를 뜨겁게 사랑하고 실연의 아픔을 호되게 겪은 남자였다. 그 시대에 조혼남 유학생과 신여성 사이의 연애는 흔한 일이었고, 오죽 하면 '제2부인'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즉, 서로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우리 제발 사랑하게 해 주세요, 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려던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자살이라는 건 어떤 여한과 메시지를 남기기 마련인데, 그들이 부르짖고 싶었던 그 무엇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우진'은 전라남도 대부호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업을 이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일본 구마모토 농업학교를 졸업하고도 다시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할 정도로 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그는 한국 문학과 연극에 관심을 가지고 특히 계몽주의적인 민족주의로 문학이 윤색되는 것을 비판하여 표현주의 희곡을 과감하게 시도하며 시대적 아픔과 예술의 순수성을 모두 담아내는 열정적인 문예인이었다.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 사장 자리에 취임하긴 했으나 당시 문단과 연극계를 이끌고자 하는 뜨거운 의지와 그의 지식은 엄격한 유교집안 출신인 아버지의 날 선 강압에 못 이겨 끝끝내 부자의 연을 끊기에 이른다.



한편, '윤심덕'은 가난과 염문에 시달리며 간신히 일본 레코드 회사와 계약하여 음반을 녹음한다.

하지만 많이 지쳐있었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가난한 가운데 동생 둘을 모두 신식 교육과 음악교육을 감당해야 했다. 이미 그들은 각자의 절벽에 서있었다. 그런 둘이 유부남과 처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절망하여 동반 투신했다는 것은 정황상 억측이다. 그들의 죽음에 대한 증거도 없지만, 혹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끝끝내 현실에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애틋한 사랑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당당했고,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사랑이 고파서가 아니라 어쩌면 자유가 고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선 안 되었다.

윤심덕은 배운 여자이다. 심덕은 좀 안 됐긴 하다. 서양 음악의 새로운 물결을 일으켜보고자 했으나 아직 조선의 음악적 풍토가 따라주지 못했다.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사랑하는 예술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웠고, 일본인이 주최하는 파티에서 노래를 부르라는 터무니없는 요청에 시달렸다. 포부와 현실이 늘 맞지 않았다. 이용문이라는 소문난 부자 호색가를 찾아가서 동생의 유학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는 하얼빈으로 잠시 도망가 있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스캔들에 시달렸다. 가정 상황에 내몰려 기생 취급을 받기도 하고 돈 버느라 저당 잡힌 몸이었지만, 시대적인 책임감을 가졌어야 했다. 배운 지식과 새로운 가치관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지 못했고, 더 나아가 이미 자유연애 사상이라든가 남녀 간의 평등 같은 개방적인 생각을 계몽하여 같은 여성으로서 억압된 조선의 여성들을 구제할 시대적 책임도 외면했다. 오히려 여전히 가부장적인 생각으로 '집사람'과 '내 사랑'을 구별하여 따로 거느리던 부조리한 조선 남성들의 공공연한 축첩을 여전히 관습적으로 따르던 모던 보이들의 애정 행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김우진의 '집사람'이었던 관습의 희생양, '정점효'.

여자 대 여자로서 정말 한 번쯤 윤심덕의 멱살을 잡고 싶었을 여인, 유교적 관습과 대부호의 집안 살림에 묶여 남편 얼굴도 모른 채 시집 온 구시대의 피해자. 그저 하늘 같은 시아버지와 그 위의 더 하늘 같은 무거운 가부장적 질서에 눌려 있던 중세적인 맏며느리. 밖으로 자유와 예술을 꿈꾸며 엉뚱한 여인과 예술적 동병상련을 나누는 근대적인 남편에게 한 마디 항의조차 하지 못했을, 그저 주어진 의무대로 시아버지를 받들고 집안을 건사하며 아이들을 양육했을, 자유연애가 무엇인지, 신여성이 누구인지, 떠도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고 또 들려도 귀를 닫아야만 했을, 그 죽음조차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수사가 종료되고 나서도 여전히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며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동화적 환상마저 심어주었던 정사의 주인공에게 남편을 내어주고 억울함조차 내비치지 못한, 그저 남편의 잘못된 선택마저도 자기 죄로 뒤집어쓰고 숨죽였을, 영원한 그늘의 여인.



똑같은 식민지 시대를 살면서, 똑같고도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낸 두 여인.

똑같은 억압과 군국주의에 짓눌리며, 한 명은 신여성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또 한 명은 양반 부녀의 담장 안에 갇혀 서릿발 같은 품격을 지켜내야 했다. 희대의 스타였고 스캔들 메이커였으며 만인의 연인이었던 천상의 가수 윤심덕, 당시 자유분방한 지식인들의 사고방식과 뜨겁게 흐르던 예술적 감수성을 주체하지 못했으나, 그 역시 가족이라는 무거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겉보기엔 정점효는 완벽히 대칭점에 있었으나 대대손손 이어지던 가족적 인습에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조차도 억눌렀던 억압은 딱히 심덕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가 내겐 좀 다르게 들린다.

이 노래는 어쩌면 분방한 삶을 살면서도 시대적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채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를 향해 떠났던 윤심덕과 새로운 시대를 보지 못하고 우물 안에서 깊이 침전되어 가며 숨죽였던 정점효의 영혼의 죽음을 기리려던 게 아닐까. 신여성과 전통 여성,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 평가하는 것마저도 속상한, 제 아무리 꿈틀대고 있었다 할지라도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여성에게는 너무나 좁고 깊은 땅. 그래 심덕, 너는 실컷 사랑이라도 했지, 죽겠다고 전보 치면 달려와 같이 죽어줄 남자라도 있었지. 있던 남편에게마저 버림받고 그저 묵묵히 짊어졌던 점효의 의무는 뭐니? 그래 점효, 너는 부잣집 며느리로 먹고 살 걱정은 안 했지, 가난한 가족 뒷바라지로 스캔들까지 감안했던 심덕의 고달픔은 뭐니?



그리하여 그 시대의 모든 심덕과 점효에게 바치는 진혼곡, '사의 찬미'.



윤심덕의 유고 앨범, '사의 찬미'

1절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2절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3절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엔 모두 다 없도다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결코 찬미할 수 없는 죽음, 하지만 애도할 수밖에 없는 죽음.
오늘을 살아가는 포스트 모던 걸, 자유와 평등이 아직 온전치 않은 지상에서, 나도 그들이 죽음으로 뿌려놓은 삶의 의지를 찬미하며 매일 진정한 생명과 자유를 위해 죽는다. 인생이라는 바다에 몸을 던져.




드라마 <사의 찬미> OST 앨범 이미지(헤럴드 경제)



https://youtu.be/lG4LolklcbQ

(윤심덕 사의 찬미 음원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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