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_힐링 푸드

영혼의 밥상_<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아우라 에스키벨 >을 읽고

by 차가운 열정

나는 영혼이 있다는 걸 믿는다.

따라서 내 몸이 움직일 때 내 안의 영혼 또한 멍 때리는 것이 아니라 몸과 합일되어 움직이고 있음을 안다. 반대로 영혼이 무언가에 골몰할 때에 그 방향으로 내 몸을 기울이고 곰곰이 영혼의 에너지가 이끄는 곳으로 집중한다. 그래서 포스트잇 한 장에도 웃음이 담기고 카톡 한 줄에도 살기가 서린다. 얼마든지,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내 몸의 에너지는 내 영혼의 에너지이고, 내 영혼의 에너지는 내 몸의 에너지이다. 사랑이 담긴 누군가의 시선은 내 영혼을 따뜻하게 녹이고, 미움이 담긴 누군가의 입술은 내 영혼을 날카롭게 찌른다. 얼마든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음식을 만들 때 기도한다.

서툰 손놀림과 둔한 혀가 만들어낼 졸작이 마법처럼 일류 셰프의 만찬으로 변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물이 포도주가 되길(성경에서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기도한다. 이 한 그릇에 사랑을, 정성을, 건강을, 피와 살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생명력을, 내 영혼 한 귀퉁이 어딘가에 혹여 붙어있다면 떼어주고 싶은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무언가를, 똑 떼어 뒤적뒤적 볶고 데치고 우려낸다. 먹는 동안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고 기분이 싱싱해지는 그 어떤 힘을 같이 떠먹고 소화시켜가도록, 기껏 라면 하나를 끓여도 마음은 마법의 수프를 끓이는 요정이 된다.



음식을 만들지 못할 때는 사 먹는다.

그건 좀 신중해야 할 일이다. 아무리 맛집이라고 소문이 났다 해도 그 집 분위기가 친절하지 않으면 다시 가지 않는다. 이건 그냥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사람이 만든 음식은 독이 된다. 너무 잘 나가는 맛집이어서 줄을 서야 한다든지 공장처럼 음식을 찍어내어 숟가락을 꺼내기도 전에 음식이 나오는 집도 피하고 싶다. 먹는 내내 줄 서있는 사람의 무언의 압박에 시달리는 것도 힘들고, 영혼 한 톨도 들어가지 않은 음식의 헛헛함도 내키지 않는다. 몸을 평화롭게 하고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소중한 누군가의 생명을 한 방울 떨어뜨린 음식은 한 입 먹어보면 안다. 몸과 마음이 같이 '아, 맛있어.'를 외친다. 그래서 집밥이 최고라고, 엄마가 대충 끓인 우거짓국이 제일 맛있다고들 하나 보다.



근래 내가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소울 푸드는 쌀국수이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던졌던 것 같다. 나는 쌀국수가 제일 좋아요, 베트남에 가서 살게 된대도 신나게 잘 살 것 같아요, 쌀국수랑 반미 샌드위치랑 커피랑, 딱 좋아하는 세 가지 음식이 거기 다 있으니까요. 뭐, 그런 음식은 여자들 대부분 다 좋아하는 것들 아니야? 그런가? 누군가는 곱창, 누군가는 대게, 누군가는 삼합을 주장할 때, 특징 없는 내 평범한 입맛이 누군가의 기억에 흡수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언니가 점심 먹겠냐고 연락이 왔다. 볼일 보다가 좀 늦어져서 우선 다른 사람들이랑 먼저 드시라고. 뒤늦게 도착했는데, 한 그릇 따로 퍼두었던 쌀국수. 이미 좀 퍼졌고 좀 식었고 쌀국수의 백미 고수는 빠져있고. 그래도 '너 좋아한대서 끓였는데, 다 식었다. 데워줄까?' 하시는데, 눈으로 담기만 해도 베트남에 와 있는 기분. 식은 국물 한 숟가락에, 오전 내내 뛰어다니던 영혼이 노골노골해지고, 퍼져서 찰기 잃은 면발 한 젓가락에 근육이 쫄깃쫄깃 찰지게 힘이 들어갔다. 몸도 마음도 지친 나에게 밍밍한 쌀국수 한 그릇은 수혈이나 다름없었다.




음식은 힘이 있다.

그 힘은 마법과 같다.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음식을 통해 일어난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그런 마법의 주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티타'는 출생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티타의 어머니 '마마 엘레나'가 양파를 다질 때 뱃속에서부터 하도 눈물을 많이 흘려서 그 급류에 떠밀려 부엌에서 태어났고, 햇볕에 그 눈물 강물이 말랐을 때엔 그 눈물 자국에서 거둬들인 소금이 무려 5kg 가까이 되었다. 티타는 어려서부터 부엌에서 가정부 '나차'의 손에서 자라며 요리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조절하며 아름답게 성장한다. 하지만 멕시코의 관습에 따라 '막내딸은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라는 어마어마한 운명을 타고 나, 마마 엘레나의 딸이라기보다는 몸종에 가까운 모습으로 침묵과 복종의 세월을 보낸다.



마마 엘레나는 엄격한 사람이었다.

티타에게 첫눈에 반한 페드로의 청혼도 마마 엘레나가 거절해버렸다. 그리고 페드로에게 티타 대신 티타의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하기를 권유한다. 페드로는 가까이에서 티타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로사우라와 결혼한다. 로사우라의 결혼식을 위해 티타가 눈물을 흘리며 만든 웨딩케이크는 결혼식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좌절감을 주었고 이내 심각한 구토증으로 모두들 구토 범벅이 되게 만들었다. 자신의 사랑을 빼앗긴 티타의 좌절과 인습에 눌린 삶의 슬픔이 담긴 눈물은 그렇게 최고의 케이크마저도 독으로 만들었다.



어느 날 페드로가 선물한 장미 한 다발.

마마 엘레나는 당장 내다 버리라고 했지만, 티타는 너무나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들뜬 마음으로 부엌에 들어온다. 그리고 장미 가시에 찔린 티타의 피로 붉게 물든 장미를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한다. 살아있는 메추리의 모가지를 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설프게 목이 꺾인 채 고통에 짓눌려 파닥거리는 메추리는 꼭 티타의 모습을 닮았다. 슬픈 메추리에 티타의 뜨거운 사랑과 정열이 물든 장미를 곁들인 요리를 먹은 사람들은 또 마법에 걸리고 말았다. 티타의 언니 '헤르트루디스'는 온몸이 뜨거워져서 샤워를 하다가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로 샤워장에 불이 붙었고,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미 향이 멀리멀리 퍼져 혁명군과 정부군의 접전지까지 도달했다. 헤르트루디스는 옷을 홀딱 벗고 벌판을 달려 나가 말을 타고 마주 달려오는 혁명군 '후안'의 말에 올라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은 페드로의 뜨거운 눈길을 티타는 온몸으로 잠잠히 받아들였다. 티타는 별들은 그런 연인들의 뜨거운 열기를 반사시켰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파괴되지 않고 하늘에서 반짝일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옷을 뚫는 듯한 강렬한 시선을 나눈 후로는 모든 게 전과 같지 않았다. 티타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물질이 왜 불에 닿으면 변하는지, 평범한 반죽이 왜 토르티야가 되는지, 불 같은 사랑을 겪어보지 못한 가슴은 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반죽 덩어리에 불과한 것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p.75)



로사우라의 아이가 태어나자 티타는 조카를 너무나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젖이 마른 로사우라 대신 티타는 처녀의 몸으로 젖을 먹인다. 그야말로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멕시코 특유의 주술적인 분위기에선 불가능한 일은 없다. 하지만 아들처럼 사랑했던 조카가 죽어 티타는 반미치광이가 된다. 의사 존 브라운은 아름다운 티타를 데려가서 보살폈고, 티타는 침묵의 세월을 보내기 시작한다.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삶의 의욕을 잃은 티타는 죽은 브라운의 할머니를 만나 차를 얻어마시기도 하고, 브라운의 여러 가지 실험을 지켜보기도 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브라운은 인디언이었던 할머니 '새벽빛'의 말을 빌어 성냥갑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는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댕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p.125)


물론 성냥을 하나씩 켜도록 주의해야 해요. 아주 강렬한 흥분을 느껴서 우리 몸 안에 있던 성냥들이 모두 한꺼번에 타오르면 강렬한 광채가 일면서 평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 그 이상이 보이게 될 겁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잊어버렸던 길과 연결된 찬란한 터널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거고요. (p.126)



자기 안의 고통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오랜 침묵을 지키던 티타는 드디어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었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삶의 방식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곧 자기 집 주방 보조 첸차가 끓여온 소꼬리 수프를 먹고 기운을 차려 엘레나를 만나러 간다.



집으로 돌아온 티타는 당당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엘레나 앞에 선다.

티타는 한동안 혁명군의 침입으로 하반신 마비가 된 마마 엘레나를 돌보지만, 엘레나는 티타가 음식에 독을 탔다며 의심하고 결국 발작을 일으키다가 죽는다. 그녀도 자기가 사랑했던 남자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굴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습과 이목을 두려워하여 평생 좌절 속에서 억척스럽게 살다 죽었다. 그 고통을 모르지 않는데도 같은 고통, 혹은 더한 고통까지도 막내딸에게 강요해왔던 것이다. 그녀의 영혼은 자기가 머물던 '어둠의 방'을 떠돌다가 식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죽어서도 티타를 짓누르며 시시콜콜 비난하고 억압하다가 티타의 당당한 자기표현에 깜짝 놀라 콩알만 해져서 쪼르르 사라져 버렸다.



그 사이 언니 헤르트루디스가 돌아왔다.

헤르트루디스는 알몸으로 집을 나간 후 한동안 매춘부로 떠돌다가 다시 만난 후안과 함께 혁명 전술에 동참했다. 그리고 지도자가 되어 병사들을 거느리고 돌아왔다. 그녀는 언니 로사우라의 그늘에서 벗어나 당당히 자기 사랑을 차지하라고 독려해주었다. 티타는 요리법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요리할 때와 비슷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마침내 안전하고 평화로운 브라운과의 결혼을 거절하고 페드로와의 사랑을 지켜내기로 결심한다. 또한 로사우라가 자신의 외동딸이자 막내딸인 '에스페란사'를 티타에게 하듯 인습대로 억압하려는 것도 막고자 한다. 브라운의 아들 '알렉스'와 사랑에 빠진 에스페란다의 결혼식 전에 위장병과 심술병으로 고통받던 로사우라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결혼식을 위해 티타가 만든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 고추를 먹은 하객들은 모두 몸이 후끈 달아올라 어딘가로 짝지어 흩어졌다. 모두들 사라진 후, 페드로와 티타는 어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밤에 티타는 온몸의 성냥이 모두 한꺼번에 불타버렸다. 그 불꽃이 폭발하며 농장을 전부 태워버렸다. 그렇게 그 둘은 가장 밝은 빛의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티타의 부엌은 요리의 질서와 고단함과 위험이 가득 찬 공간이다.

누군가는 회사에서, 또는 학교에서, 혹은 길거리 어딘가에서 겪을 질서와 고단함과 위험을 그녀는 부엌에서 겪는다. 그곳은 인생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혁명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유와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 오래 묵은 유령 같은 관습과 맞서야 했다. 따뜻한 배려와 지지를 보내준 '나차'나 '새벽빛'과 같은 영혼과의 교감 속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받았고, 요리할 때 그녀의 마음과 에너지가 그대로 음식에 흡수되어 사람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죽을 때까지 결혼도 안 하고 오직 어머니를 모시며 집안일의 노예가 되어야만 했던 멕시코의 전통 속 막내딸들도 사랑을 느꼈고 몸이 뜨거워지기도 했으며 누구보다도 혁명가이고 싶었다. 비록 솥을 마주하고 종일 부엌을 지키고 있지만, 그 안에 회한과 추억과 소망과 떨림과 결단과 사랑을 담았다. 요리는 마술처럼 멈추기도 했고 불붙기도 했으며 그녀의 눈물이나 핏물이 폭발적인 화학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요리는 티타 자신과 페드로의 영혼이 구원에 다다를 만큼 강렬하고 영원한 사랑의 에너지가 되어 불길 속으로 흩어졌다.



이 이야기를 '지금, 여기'의 관습으로 본다면, 거의 막장이나 다름없다.

사랑하는 여자의 언니와 결혼한 것이나, 그런 언니의 죽음 이후 형부랑 사랑을 나누는 것이나, 자기 딸을 죽을 때까지 학대하는 것이나, 다 이슈가 될 이야기들이다. 아무리 사랑이니 뭐니 해도, 도덕적으로 이 과정이 옳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억압에 대한 투쟁이 신비로운 요리사의 감정의 불꽃과 주술적이고 낭만적인 멕시코 특유이 분위기로 인해 독자의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매춘부 여자가 혁명군의 장군이 되어 정치적인 영향을 준다든지, 나차, 티타, 헤르트루디스, 에스페란다의 계보와 엘레나, 루디아스의 계보 사이의 여성 중심적인 갈등은 이 소설의 핵심 주제인 '사랑'이 결국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임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여성의 성적 해방을 보여주는 '에로티시즘'의 재발견이라고도 하고, 요리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요리 문학'의 효시라고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읽은 이 소설에는 신이 사람을 창조할 때 불어넣은 최고의 가치들, 가장 아름다운 신의 형상들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 면면히 흐르고 있어서 표현된 문장들보다 훨씬 형이상학적이다. 육체와 영혼이 하나로 합일되어 조화롭게 움직이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자유의지',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자기를 주장할 때에 그 누구의 간섭이나 한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 더 나아가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하는 '사랑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는 진정한 페미니즘 문학이자 실존주의 문학이 아닌가.



책을 덮으면서 문득, 내 안의 성냥갑을 어루만져 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불을 댕겨주는 사람인가, 혹은 누가 나의 성냥에 불을 피워주고 있나. 돌아보면 지금 내게 차가운 입김을 뿜는 사람들보다는 산소 같은 화학반응으로 이끌어주는 따뜻한 포옹이 더 많다. 아무도 혼자 불을 피울 수 없다. 티타와 같은 연정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 안에 있는 성냥개비들이 꺼지지 않는 불길을 만들어 서로를 향해 타오르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 멕시코 요리는 문외한이라 아무리 묘사가 되어 있어도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지만, 나도 우주를 폭발시킬 것 같은 에너지를 담아 당신의 성냥에 불을 댕기는 복날 삼계탕 같은 보양식을 한 그릇 만들어 드리고 싶다.



오늘, 그래서 우린, 뭘 먹을까?





달콤 쌉싸름한 사랑과 인생, 쌉싸름이 없이 어떻게 달콤함을 알겠어, 99% 카카오가 그래서 찐 맛!!















<제목 이미지 : pixabay, 아래 이미지 by 차가운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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