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_19세기 여성을 말하다

백마 탄 여전사, 만세

by 차가운 열정

나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로맨스는 일단 여자 주인공(일명, '여주') 이 중요하다. 왜냐 하면, 여주는 나의 분신이요 대리인이요 아바타요 사실상 나 자신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 여인은 대체로 나를 닮아야 한다. 나처럼 평범하고 예쁘지 않으며, 딱히 내세울만한 집안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며(여기까지는 나와 똑 닮았다), 은근히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하면서도, 세상 물정을 잘 몰라 순수하지만 결코 세상을 우습게 보지는 않는, 독립적이고 꿋꿋하며 공상을 하면서도 자기 주제는 잘 아는, 그러면서도 매사에 긍정적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신기할 정도로 대담하며 상당히 정의로운 편이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점점 뒤로 갈수록 나와 다르긴 하다. 하지만 대단한 집안에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어쨌든 동질감을 준다.



제인 에어는 딱 그런 인물이다.

평범하다 못해 매우 고난스러운 어린 시절과 좁은 인간관계, 보잘것없는 사회 경험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런 여인이 흔한 공주 이야기처럼 고난 가운데 왕자를 만나 왕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명작 동화의 현대판 버전인 드라마에서처럼 아름다운 외모와 당찬 성품으로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다가 재벌 3세를 만나 신분 상승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스스로 끊임없이 독립하고 성장하기를 추구한다. 고아가 되어 온갖 구박을 견디고 혹독한 자선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가정교사가 되었고, 그 집에서 사랑하게 된 남자 주인공 '로체스터'에게도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며 동등한 관계를 요청한다.



저는 지금 관습이나 인습을 매개로 해서 말씀드리는 것도 아니고 육신을 통해 말씀드리는 것도 아녜요. 제 영혼이 당신의 영혼에게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마치 두 영혼이 다 무덤 속을 지나 하느님 발밑에 서 있는 것처럼 동등한 자격으로 말이에요. 사실상 우리는 현재도 동등하지만 말이에요.



이런 고백에 기쁘게 동의하는 로체스터를 나는 좋아한다.

제인 에어가 사랑할만한 매력을 모두 갖추었다. 하지만 그가 갖춘 것들이 제인 에어에겐 넘사벽이었다. 로체스터에게는 미친 아내가 살아있었고, 그의 신분은 매우 높았으며, 나이도 스무 살도 넘게 많았다. 어떤 조건을 들이대도 그의 '정부' 이상이 될 순 없는 상황. 둘의 사랑과 대화는 항상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존중하며 동등했으나, 그의 청혼은 제인을 동등하게 인도하지 못했다.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휩쓸려 그의 진심에만 귀 기울이고, 이미 인격을 상실한 짐승 같은 그의 아내(혹은 아내였던)로부터 내 사랑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인의 살아있는 양심과 여성으로서의 당당한 자존심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게 했고, 더 온전하고 성실하게 자기 자리를 찾도록 이끌었다.



로체스터에게서 무일푼으로 도망 나온 제인 에어.

거지처럼 헤매다가 박애적인 손길의 도움을 받아 작은 학교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하고, 심지어 돌아가신 숙부의 전재산을 상속받아 부유해지기까지 한다. 그 박애의 손길을 내밀었던 사람이 바로 목사 '세인트 존'이다. 그는 오랜 시간 제인의 성품을 관찰하며, 서로 남녀 간의 사랑이 없더라도 자기 소명을 함께 받들어주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제인에게 청혼을 한다. 물론 그 소명은 거룩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겠으나 자기 소명 안에 아내는 단지 기능인으로서 존재해야만 한다. 같은 소명으로 같은 길을 간다 하더라도 영혼과 영혼의 동등한 만남이 아니었다. 한 남편과 한 아내의 사랑은 찾아볼 수 없는, 영적 지도자와 그의 어린 동역자로서의 관계, 존의 사랑과 결혼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제인 에어의 마음은 다른 걸 외쳤다.

그의 끈질긴 청혼에, 외경에 가까운 마음으로 압도되어 거의 그 청혼을 승낙하려던 순간, 제인 에어는 마법에 걸린다. 이 모든 사회적 굴레와 도덕적 억압에서 풀어줄 수 있는 것은 당시 샬론 브론테의 시대엔 환상적인 장치밖에 없다. 간절히 제인 에어를 부르는 로체스터의 뜨거운 목소리가 실제로 환청처럼 그 순간 제인 에어의 귀에도 들리고, 제인 에어의 간절한 응답이 그 순간 로체스터에게도 와 닿았다. 나는 이런 환상을 믿는다. 어떤 물리적 장벽도 뛰어넘는 뜨거운 진심은 그 깊은 밤안개와 숲을 헤치고 서로에게 통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그런 외침이 그 사회의 어떤 제도적 관습적 장벽도 뛰어넘어 암흑을 헤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며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는다. 이건 정말 마법 같은 일이다.



그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환상의 소리를 따라 둘은 재회한다.

로체스터는 제인 에어가 떠난 사이, 눈도 잃고 한쪽 팔도 잃은 쇠락하고 연약해진 모습이었고 정서적으로도 불안정한 상태였다. 반면 제인 에어는 이미 상속받은 유산으로 경제적으로도 독립한 상태였고, 정신적으로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삶을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그렇게 쇠락한 로체스터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강인해진 제인 에어는 서로 이제야말로 동등하게, 완전한 사랑의 합일에 이르게 된다.




어렸을 때 읽은 <제인 에어>는 오직 사랑 이야기였다.

어른이 되어 다시 <제인 에어>를 읽으면서도 여전히 이 '사랑'은 유효하다. 그 섬세하고 찌르는 듯한 아름다운 문장들로 묘사된 떨림, 낭만으로 가득 찬 자연 속에 속삭이는 사랑의 숨결, 사랑에 빠진 여성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여성의 말들. 하지만 다시 보는 <제인 에어>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 가슴 저미는 사랑 곳곳에 그들의 설렘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 탄식이 왜 운명적일 수밖에 없는지, 그 재회가 왜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이건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사회와 또 한 사람의 사회, 더 나아가 19세기라는 시대 속에서 읽어야 할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세기 여성의 목소리란 무엇인가.

샬론 브론테가 굳이 '커러 벨'이라는 남성(혹은 중성) 필명으로 이 작품을 사회에 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아직은 여성이 그저 한 가문의 며느리로 들어가 가문의 대를 잇고 남편과 가정에 헌신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으로 강요되던 빅토리아 시대에, 제인 에어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했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하는 나약한 존재로 살기를 거부했고, 사랑 없는 거룩한 삶에 그저 아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는 것도 거절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향해 서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쓰다듬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서로를 책임지고 존중하는 진실한 사랑을 통해 수동적이고 헌신적이며 아름답고 기품 있는 꽃으로서 남성의 보조적인 역할만을 요청받았던 그 시대에, 한 인간으로서 여성의 자의식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외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로맨스를 가장한 여성 성장 소설,

혹은 낭만적 사랑의 필체로 여성의 해방을 그린 소설이 아닌지. 신분, 재산, 나이, 건강, 모든 구속에서 해방되어 한 인간과 또 다른 한 인간의 태초의 벌거벗은 그 모습 그대로의 성숙한 사랑을 선택하고 만들어간 제인 에어는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성들이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 그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했던 19세기 여성들의 삶과 무척 대조적이다. 사실상 삶의 모든 의미를 잃은 로체스터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제인은 누구보다도 주체적이고 당당한 그 시대의 백마 탄 여전사였다. 이 작고 여리여리한 19세기 영국 여인 제인 에어의 목소리가 21세기 우리에게도 여전히 굵직한 메아리로 남는다.




하지만 또 여성 성장 소설로 보기엔 사실 너무 섬세하고 떨리는 사랑의 문장들, 아름다운 묘사, 긴장감 넘치는 밀당, 쉬지 않는 반전과 끊임없는 갈등, 이거 완전 로맨스의 끝판왕!



















<제목 이미지 : 영화 '제인 에어' 스틸컷 중/ 아래 이미지 by 차가운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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