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소외된 여성들의 숲

by 차가운 열정

제목 자체가 이미 너무 스릴러이다.

나도 모르게 섬뜩한 피해의식이 몰려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모든 일이 일어난 것만 같은 느낌. 왜냐하면 나도 여자라서. 사라지는 집단에 속해 있어서. 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사연을 전혀 모르지만, 왠지 이미 알 것만 같아서. 그래서 그만 같은 공포와 분노가 느껴져서. 어느새 이미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아서. 제목만으로도 내 마음이 광장에 서 있게 되는, '왜?'라고 외치게 되는, 막연하고도 얼마든지 구체적인 이 '사라짐'에 관한 팩트 체크를 요청하게 되는, 독자를 피해자로 편 먹고 두 팔 걷어붙이고 첫 장을 펼치게 하는, 이 요상한 제목을 좀 보시라.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이 제목은 이 소설집의 가장 마지막에 수록된 <숲속 작은 집 창가에_허희정 作> 중 한 대화에서 따왔다.

P시에는 작은 숲이 하나 있다. 숲은 그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여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여자들은 때론 울면서, 때론 뭔가에 홀린 듯 그 숲을 방문하고 조용히 그 속에서 사라진다. 묘한 여성 실종 사건들이 묘하게 반복되고 있지만, 묘하게도 아무도 그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숲으로 들어간 여자들은 하나같이 특별한 목적이 없었다. 그들은 감정의 덩어리로 존재하는 듯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도 누군가 들을까 봐 조심하는 것 같이 숨죽여 울었고, 혼란스러운 걸음으로 비틀거리거나 마구 달려나갔다. 그리고 숲의 그늘과 무거운 공기에 눌려 쓰러지곤 했다. 그리고 세상도 숲도 그들을 잊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그녀'는 우연히 P시에 들렀다.

이혼 소송 중이었고, 그냥 정처 없이 달리다가 잠시 고속도로에서 내려온 곳이 이곳이었다. 연고도 전혀 없고 정보도 전혀 없는 오직 낯선 곳. 그곳에서의 자신의 '실종'이 남편이나 애인의 관심을 끌기를 은근히 바랐지만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종종 변호사의 업무 전화뿐.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 숙소를 찾는다든지 음식을 먹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문득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유령이 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거의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누구에게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남은 끈을 깔끔하게 해결하기 위한 지루한 절차만이 그녀의 존재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그 숲을 찾아간 건 순전히 지도에 표기된 '국립공원'이라는 명칭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숲의 끈끈하고 축축한 공기 속을 거부하지 않고 몇 번이나 더 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머리가 복잡했든 아니든, 삶의 목표가 사라졌든 아니든, 해야 할 일이 있든 아니든, 그냥 생각 없이 생각에 잠겨 숲속을 거닐었다. 그곳에서 작은 천 조각 하나를 줍는다. 그걸 주머니에 넣는다. 낮에도 어두워 돌아갈 길을 헤매게 되는 그 숲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길어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녀의 고단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숲 밖의 세계로 나오는 길을 잃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녀는 아직 숲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실종 사건에 대해 알지 못했다.



오직 '김현진'이라는 여자만이 무려 9명이나 사라진 이 숲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김현진은 무슨 탐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방송 일을 하는 사람이다. 업무 차 잠시 이곳에 내려와 있지만 곧 자기가 존재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 숲의 여성 실종 사건에 관해, 실은 '사건'이 되지 못하고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 단순한 '실종'에 관해, P시 전체가 마치 공범인 것 같은 세상의 '침묵'에 관해, 김현진은 그녀에게 조사해주길 당부한다. 서로 아무 연고도 없이 오가다 만난 사이일 뿐이요, 실종된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일면식도 없는 존재들이지만, 마치 서로 연대되어 있는 사이인 것 같이, 원래 당연히 같이 일해야만 했던 것 같이, 절박하게 당부했다.



그리고 이름이 선명한 '김현진'은 다시 자기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무수한 '그녀'일지도 모르는 그녀는 남았다. 한 번도 존재감이 있어본 적 없던 그녀가, 그마저 이혼 소송으로 인해 밟아야 할 법적 절차 때문에 남은 존재감마저 감추고 싶어 스스로 실종을 자처한 그녀가, 자신처럼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사라진 이름 없는 실종자들의 뒤를 집요하게 쫓는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아이러니로 인해 그녀는 지금 존재를 요청받는다.




이혼은 감정 없이 진행되었다.

낯선 이 P시에 정착하듯이 오롯이 혼자 존재하는 낯선 삶도 정착해나간다. '믿음이 없는 게 내 잘못은 아니'라고 하는 남편.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이 네 탓을 하며 밀어낼 때, 그것마저도 진심이 아니어서 유치하게 느껴질 때,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내 실존을 끊어내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숲속을 헤매다가 밖으로 빠져나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만큼 점점 짧아진다. 그렇게 숲을 빠져나올 때마다 뭔가를 주워나왔다. 누군가의 한 부분이었을, 한 사람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숨죽인 증거들. 머리끈, 장식용 징, 유리구슬, 단추들, 등등.



그리고 '그녀'는 아직은 무수한 '그녀들'처럼 익명이다.

여전히 숲을 헤매고 다닌다. 그러다 처음 이 숲에 왔던 그 무렵 잃어버린 트렌치코트의 벨트를 주웠다. 자신의 삶의 흔적, 자신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얼룩들, 그 축축함은 시간이 지나야 마르는 법이다. 존재는 종종 실종되었다가 어둠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숲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 삶은 각기 다른 버섯류나 곰팡이류까지도 서로 존중하는 예민한 숲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존재한다.



그런 숲이 여자들을 삼켰다.

이 소설에서 나타난 갈등이나 사건은 여성만을 저격한다든지, 여자의 피해의식에 대한 명백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딱히 스토리랄 것도 없이 몇몇 장면들, '숲'이라는 환상적인 장치들 사이에, '이혼'의 명징한 사건 하나만 흐른다. 그래서 '어떻게 그럴 수가?', '이건 차별이 아닌가?', '여성은 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등등의 질문을 들고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싸울 수도 없다. 이런 이야기들이, 뭔가 애매하고 억울한데 딱히 뭐라고 할 '꺼리'가 없는 이야기들이, 사실 삶 면면에 이미 스며들어 정체를 찾아내기도 어려운 것들이, 너무나 익숙하게 내 곁에 엄마 곁에 언니 곁에 있어왔던 것들이, 이 소설집 작품들마다 너무나 일상적인 상황 속에 묻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숲은 어디서나 낯설고 수상하다.

익숙한 길은 없다. 우리를 불러들이고 품어주는 것 같지만 날카로운 가지들이 얼기설기 뻗어있고 어둡고 축축하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된다. 자기만의 숲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고 침묵한다. 이상하게 여자들만. 숲 밖의 서류 더미에서 밀려난, 수화기 너머의 침묵에 온갖 말들을 헤아리다 지친, 의사를 표명한다는 것이 형식적일 뿐인, 그래서 혼자만의 속삭임과 울음으로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인.



지금도 누군가 숲으로 들어간다.


다 읽고 나면 속상하고 슬픈데, '어떻게 해?'는 각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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