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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ning Nov 18. 2019

그 선에서 넘어오지 마, 내가 알아서 해

회피형의 여자로 살고 있는 나는

임신 중 친구와 급 만나기로 했다. 나는 친구가 나의 회사 근처로 조금 나의 사정을 (?) 봐주길 바라며 어디서 만날지 물어봤고, 그 친구는 당연하게 정확히 중간을 말했다. 조금 속상한 마음에 친구에게는 쿨하게 알겠다고 하며, 남편에게 카카오톡으로 불만을 얘기했다. 남편은 "걔는 항상 자기 가까운 곳으로 오라고 하더라. 임신한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없다"라고 단정 지어 말했다. 분명 내가 남편한테 말한 이유는 남편이 내편을 들어주길 바랬던 마음도 있었고 그 친구에 대해 실망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이 상대를 비난하는 말, 흉보는 것을 내가 듣기 힘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감정을 제로화하는 억지 긍정

축소 회피형의 구조로 볼 때, 그 친구에게 불쾌함을 느끼며 상대를 비난하는 생각을 해버리면 다음에 그 친구의 연락을 상냥하게 받을 수 없게 되고, 다시는 그 친구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시 안 볼 게 아니라면 상대방을 무조건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 한다. 회피형의 무의식은 저항형 (남편)의 부정적 감정에 공감해주려면 자기 안에 놀러 둔 부정적 감정이 들춰질 것을 안다. 부정적 감정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회피형은 저항형의 부정적인 말이 자신의 불만을 드러내도록 자극하는 도발 행위로 인식된다. 그것을 방어할 목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면서 스스로 '괜찮은 나'이고 싶은 나의 환상이 위협을 받는 것이다.


여기서 회피형과 저항형의 차이가 나타나는데, 남편은 어떤 행동이 불쾌하게 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일 뿐 그렇다고 관계를 끊을 생각은 아니기 때문에 가볍게 불평할 수 있지만, 회피형은 그럴 수 없다. 회피형은 친하게 지내 사람에게 불평이나 지적, 의심하는 것을 꺼린다. 그간 만들어 놓은 신뢰 관계를 깨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불만을 제로화하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짜증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다.  


회사에서도 나만의 수법은 계속된다. "엘린 (회사에서의 영어 닉네임) 은 긍정적이어서 내가 정말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아요. 같은 상황인데도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고 잘 넘긴다고나 할까? 난 엘린의 그런 점이 참 부럽더라" 어떤 억울한 상황에도 이 정도로 상처 받지 않지 내가. 회사에서 받는 감정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무. 시한다. 그래서 회사일로 괴로워하는 남편이 스트레스 조절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긍정적 정서 상태라 착각하는 것이지, 실제로 긍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억지 긍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저항형인 남편의 입장을 말해 보면, 어떻게든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공감받고 해소하고 싶은데, 그것을 바로 무시하니 짜증 난다.)


내가 거리를 두는 이유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했던 그들의 유년 시절 욕구는 좌절되었다. 불안하고 불편할 때 엄마를 통해 고통을 해소하기를 바란다면 계속해서 좌절하리라 직감한 그들은 더 이상 엄마에게 의지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저 사람이 나를 보호하고 살필 것이다.'라는 기대를 접기로 한다. 친밀한 관계를 원하고 기대하면 상처 받을 것을 알기에 가장 가까운 배우자와도 일정한 거리를 둔다. (중략) 즉, 거리 두기는 배우자와 최소한의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한 적응적 행위다.  
책 [오해하지 않는 연습, 오해받지 않을 권리]

어릴 적 기억은 사실 많이 없다. 단지,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모두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남동생이랑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것. 그렇지만 엄마와의 애착을 형성하는 시기인 세 살까지는 엄마가 옆에 있었을 테인데, 엄마에게 의지하지 않기로 하다니. 맙소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한테 많이 의지하는 편은 아니었다. 스무 살 때부터 대학교로 혼자 서울에 올라오면서 자연히 엄마와 부딪힐 일이 줄었고 무엇이든 혼자 해 나가는 게 좋았다. 자취방을 구하는 일도, 이사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스스로 돈도 벌면서 어른인 느낌이 좋았다.


좀 그만 내버려 뒀으면, 나 혼자 할 수 있다니까?

회피형은 다른 누가 자기 일을 대신해주거나 도와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자기 문제에 관한 결정은 자신이 하려고 하고 남의 판단이나 명령에 따르는 입장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회피형은 자기 관리와 자기 계발에 관심이 많고 여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근사한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하는 만큼 긴장하고 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자기감정을 잘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출산 후 엄마가 잠시 오셔서 도와줄 것을 남편도, 시댁에서도 심지어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고 있다. 나만 다르다. 나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괜히 불편하다. 누군가 있으면 더욱 성가실 것 같고 또 다른 트러블이 생길 것 같고, 남편과 엄마 사이도 (둘은 신경도 안 쓰겠지만)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나의 이런 태도가 바로 누구와 (엄마를 포함한) 거리를 두는 것을 말하는 걸까? 또 육아 휴직을 쓰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나를 발전시킬 수 없을까 봐 였다. 그리고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아줌마가 돼버릴까 봐.


마무리

회피형은 자기가 만든 관념의 세계에서 산다. 회피형이 쓸고 닦고 가꾸고 자랑하는 세계는 '진짜 나'가 아니다. 부모가 바라는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줄 만한 이야기로 만든 이상적인 자아성. '거짓 자아' 자신이 '독립적으로 분리된 존재'라는 관념의 성벽을 깨야 한다. 회피형이 재고하고 회복해야 할 점은 자신이 엄마와의 애착을 원치 않은 것이 아니라 좌절로 인해 절망하고 포기한 것이니,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가 여전히 무의식 속에 살아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름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면서, 가끔 부모님과 맞서기도 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면서 살아왔다. 지나와서 생각하니 아주 이상적인 삶을 살아왔다. 내 인생의 어느 한 부분도 방황하거나 실패한 페이지는 없었다. 실패를 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이상적인 자아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쿨한 척은 참기로 한다.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어느 정도 '요구' 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다. '주고받음'에 비위 상하지 말기로 한다. 남편과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에서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인정하기로 한다. 자기 울타리를 지키면서 살아왔음을 알고 그 짐을 벗어던지기로 한다. '진실하고 생동감 있는 삶' 더욱 멋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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