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휘웅 Sep 25. 2019

칠레 와인의 한국시장내 위상에 관한 생각

얼마전 일본 수입 와인 시장 자료를 공식적으로 받아볼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산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의외로 최근 몇 년 사이 칠레산의 수입이 많이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시장은 어떨까? 칠레 와인의 한국내 시장점유율은 2019년 8월 기준 30%를 약간 넘는다. 지금까지 한국시장에서 칠레 와인은 꾸준한 점유율을 차지해 왔다. 어쩌면 칠레와인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2004년에 한-칠레 FTA가 된 이후 최대 수혜주는 와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국내에 와인 붐이 일기 시작하고 신의 물방울을 통해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을 때 칠레 와인은 자신의 위치를 아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FTA 덕분에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이 핵심적이었을 것이다.


와인 좀 마셔보았다는 애호가들 사이에서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칠레 와인의 위상을 생각해본다면 나는 중하 위치에 두고싶다. 솔직하게 밝힌다면 내가 마음에 두는 와인들의 위상은 프랑스-이탈리아-미국-스페인-독일-호주-아르헨티나-뉴질랜드-칠레 순으로 되어 있다. 칠레가 여러 뛰어난 와인을 잘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몬테스와 같은 포도원은 정말로 최고 중의 최고인데, 알파만 하더라도 장기 숙성이 충분히 가능한 와인이다. 그러나 내가 칠레와인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를 하는 이유는 시장에 각인된 이미지와 함께 어정쩡한 고급 전략에 있다고 생각한다.


칠레를 대표하는 와인을 꼽자면 알마비바(Almaviva), 세냐(Sena), 카르민 데 페우모(Carmin de Peumo), 라포스톨 클로 아팔타(Clos Apalta), 몬테스 알파 M 혹은 폴리 시라(Folly Syrah) 정도 될 것 같다. 좀 더 가자면 산타 리타(Santa Rita)의 카사 레알(Casa Real)이나 쿠지뇨 마쿨(Cousino Macul)의 로타(Lota) 정도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와인들의 명성이 만들어진 것일까, 사람들이 진심으로 인정해서일까?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전자에 가까울 것 같다. 예를 들면 아주 여러 해 전 코노 수르(Cono Sur)가 전세계적으로 했던 부르고뉴 비교 시음을 생각해본다. 코노 수르는 내가 보아서 정말로 잘 만드는 피노 누아르 하우스임에는 틀림없다. 당시 자크 프리외르 뮈지니가 포함된 블라인드 테이스팅이었는데, 압도적으로 뮈지니가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코노 수르의 오치오(Ocio)도 꽤 높은 위치를 차지했으나, 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조금은 힘겹다는 생각을 했다.


세냐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고급 테이스팅, 우아한 책자, 비디오 등등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최고의 자리였다. 덕분에 세냐의 국내 위상은 상당히 높아졌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세냐의 위상일까 하는 생각에는 의구심이 든다. 예를 들어 유사한 가격의 사시까이아(Sassicaia)와 세냐를 내밀었을 때 당신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


과거 영국의 자동차 리뷰 프로그램 “탑기어(TopGear)”에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된 적이 있었다. 아우디와 페라리를 비교하는 자리였다. 페라리에 대해서는 단점이 수두룩 했다. 예를 들어 마감에 어디어디 문제가 있다거나, 여러 중요한 문제점이나 결함 지적되었다. 아우디는 이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은 품질을 이야기 했다. 세 패널의 의견은 모두 품질적으로 아우디의 압승을 선언했다. 그리고 다음 질문이 “그래서 당신은 어느 차를 사겠습니까?”였는데, 세 사람 모두 페라리를 골랐다.



탑기어의 세 패널이 왜 페라리를 골랐을까? 품질 때문이었을까? 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감성 점수가 성능 점수를 압도적으로 눌렀기 때문일 것이다. 알마비바나 세냐가 맛으로는 사시까이아를 누르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와인들과 사시까이아를 비교한다면 사람들의 선택은 사시까이아로 갈 것이다. 만약 레오빌 라스까스(Leoville Lascases)의 가격이 사시까이아와 비슷하다면(물론 그랬으면 좋겠지만), 사람들이 사시까이아를 고를까? 글쎄다. 나라면 레오빌 라스까스를 고를 것이다. 사람들마다 이 선택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상당부분 내 견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국가에 대한 이미지, 포도원에 대한 이미지, 가치에 대한 이미지가 투영되어서일 것이다. 품질은 기본이고 말이다.


칠레와인들이 고가를 여럿 출시하고 포도원들이 앞다퉈 고가들을 내세워 브랜드 상승을 시도했으나 내 평가는 전반적으로는 이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본다. 핵심 요인은 품질의 문제가 아니고 감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본다. 그래서 오히려 요즘 칠레 와인이 국내 시장에서 중저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는 국가 브랜드가 확고하게 잡히지 않은 다른 국가들에도 같이 적용되리라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의 컬트 포도원들 접근법은 꽤나 영리했다. 곧바로 보르도 1등급의 브랜드를 압도할 수 없다면, 그리고 몬텔레나(Montellena), 릿지(Ridge), 스태그립(Stag's Leap)과 같은 파리의 심판 와인을 시장에서 압도할 수 없다면 매스티지 계열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꽤나 성공적이어서 국내에서 미국 컬트 와인을 잘 아는 사람들은 보르도, 부르고뉴 와인을 잘 아는 사람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 칠레 특급을 줄줄이 꿰고 있다고 해서 이러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과 대비되는 점이다. 여기서도 국가에 대한 이미지가 함께 따라다닌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와인에 국가의 이미지가 따라다닌다는 것이 어쩌면 좀 불편할 수 있지만, 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바라보았을 때 이러한 본심(本心)이 상당 부분 작용한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것 같다. 앞으로도 칠레 와인이 한국시장 내에서 그 위상은 여전히 강하게 유지할 것임에 틀림없지만, 고급 와인에 있어서는 위상이 쉽게 오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쩌면 너무 떠들썩 하지 않고, 조용하게 입지를 다져가는 것이 위상을 더 빨리 올리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5분 와인, coming soo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