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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Sep 25. 2019

와인에 대해 바뀌어 가는 소비자 시각과 수입사들의 대응

소비자의 취향이 바뀌면 수입사들의 전략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얼마전 4,900원 와인에 대한 칼럼을 썼다. 칼럼을 쓴 뒤, 마트에 갔는데 노부부가 와인 코너 근처에서 그 와인을 잡는 것을 보았다. 추측건대 이러한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았다. 평소 할아버지는 소주 됫병을 살 때 할머니의 구박을 받았다. “영감, 또 무슨놈의 소주야, 막걸리야! 술 좀 작작해!” 이런 잔소리를 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격이 소주나 막걸리와 엇비슷한데 술은 술이다. 그래서 포도주를 고르려 하니 의외로 할머니의 잔소리가 없다. 내가 목격했을 때에도 할아버지는 총총걸음으로 달려가서 와인을 집어넣었다. 비록 1병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할머니 입장에서도 소주 됫병으로 매일 몸에 소주 냄새, 담배 냄새, 늙은 홀애비 냄새가 섞여서 이상한 영감을 옆에서 보는 것보다는 포도주 냄새가 조금은 나아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심리가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지 간에 나는 이 광경을 보면서 와인은 심리적 요인에 꽤나 많이 의존하는 술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국내에서 수입맥주의 시장 접근은 4캔 1만원이 결정적이었다. 4캔 1만원의 영향은 국세청의 주류 고시나 법개정 변경까지 끌어낼 정도로 시장 파급력은 막강했다. 다만 맥주 시장이 커지기 보다는 맥주시장 내에서 카니발라이제이션이 되었다고 볼 수 있고 덕분에 국산 맥주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더 좋은 품질의 맥주를 만들어내는 자극제가 되었다고도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몇 가지 이질적 요인에 의한 와인 보급 확산의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일본 상품 불매, 두 번째는 저가 와인에 의한 인식 변화다. 금번 일본 상품 불매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부문이 아마도 일본 맥주가 아닐까 싶다. 마트의 모든 칸을 가득 채우던 일본 맥주는 지금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나도 재활용 쓰레기의 고철류 안을 보면 일본 맥주 찾기란 거의 힘들다. 문제는 맥주의 선택지가 무척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나도 와인만 먹고 살 수는 없기에 종종 맥주를 마시는데, 편의점을 가보면 하이네켄이나 기네스 혹은 스텔라, 산 미구엘, 1664 등 점차 그 종류가 줄어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전에 아사히, 삿포로, 산토리, 에비수 등 여러 일본 맥주가 있어서 수입 맥주 고르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요즘은 선택의 종류가 줄어들어 맥주 즐기는 재미도 반감되었다.


아마 많은 소비자들이 이러한 고민거리에 빠져있을 것인데, 이 때 등장한 것이 4,900원 와인이다. 4캔 1만원이나 이 와인 두 병 9,800원, 왠지 모르지만 남는 장사 같다. 양으로 따지자면 약간 적지만 따서 바로 다 마실 이유도 없으니 주당들이 생각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 때문에 나는 이번에 이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맥주 애호가들의 주종 선택에 와인이 조용히 끼어들게 되는 전기가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와인 시장의 맥주 시장 침투가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외연의 확대는 곧 물량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시장(박리다매)으로 와인 시장이 변화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리터 이하 와인의 소비량은 한국이 일본의 14~15% 수준이다. 인구는 한국이 일본의 반이고, 국민소득은 한국이 일본의 70% 수준이다. 그런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한국의 술 소비량 대비 와인의 소비량은 매우 적은데, 여기에는 지금까지 맥주와 소주가 견고한 철옹성을 쌓고 있었고 여기에 막걸리와 같은 전통주가 싼 가격대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가는 이러한 조짐을 살펴볼 때 한국인의 와인 소비가 연간 1인당 1병 수준이 1.1병이나 1.2병만 되어도 시장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수입사들의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쩌면 지금까지 수입사들의 와인 마케팅은 특정 와인 애호가들을 위한 고급 문화로서 와인을 지속적으로 홍보해 왔다. 물론 세상에 고급도 있지만 대중적인 것도 둘 다 존재한다. 수입사 입장에서 큰 물량이 수익을 낸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 시장의 크기가 작은 입장에서 여기에 승부를 걸었다가는 빨리 망하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부분 고가의 와인에 마진을 높게 잡아서 몇 병을 팔더라도 수입사의 운영이 가능한 비용 구조, 가격구조를 만들었다. 그래서 늘 목말라 했던 것은 고급 와인을 즐기는 어느 수준 이상 되는 소비자들을 계속 찾아 헤매었다.


과거에는 이 방법이 적당히 통했다. 수입사 시음회를 하고, 홍보자료나 보도자료, 블로거 포스팅 등을 하면 와인의 매출에서도 어느 정도 연관 관계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방법론이 명확하게 효과를 나타낸다는 보장이 없다. 수입사들도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서 최근에는 고가의 와인메이커 디너는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수입사들의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상 마트 와인에서의 승부는 이미 결판 난 것 같다. 빅리거들의 싸움으로 수렴되었고, 보르도 그랑크뤼 및 엉프리뫼 와인들의 가격도 대량 매입 능력이 있는 일부 큰 수입사들만의 리그로 변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중소 수입사들은 어떠한 방향으로 전략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 내가 수입업자는 아니지만 내 관점에서 조심스럽게 견해를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자체 브랜드의 개발: 일본의 수입사들은 해외에서 자체적으로 브랜드를 기획해서 와인을 많이 만들어 온다. 단순히 현지 생산자가 레이블 샘플과 가격표를 보내주면 적당히 섞어서 제조/발송하는 와인이 아니라 블렌딩, 레이블에 이르기 까지 일관되게 제품을 개발한다. 이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는데 첫째, 독점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수입사에 브랜드를 빼앗길 염려가 없으며, 둘째,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고, 셋째, 물량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정 수익과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 국내 일부 수입사에서 진행되고 있고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내 브랜드는 목숨을 걸고: 수입사마다 수익을 내는 브랜드는 반드시 있다. 수입사의 SKU가 많아서 여러 브랜드를 신경써야 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적은 인원의 역량이 분산되어 오히려 시장 접근에는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메인 브랜드에 소홀히 하게 되면 어느 순간 다른 곳에서 눈독을 들이게 된다. 이 경우에는 어떤 경우든 핵심 역량이 되는 와인은 가격을 안정시키고 공급안정성, 브랜드 인지도를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수입사의 이미지를 정의: 식당에서 “여기 뭐가 제일 맛있어요”하면 “다”하는 곳은 안가는게 좋다. 김밥천국이 김밥 전문점이 아니라는 것은 다 잘 알 것이다. 유명한 곳은 일반적으로 한 가지만 다루는 경우다. 수입사들마다 자신만의 색깔이 선명한 곳이 있다. 부르고뉴만 집중적으로 다룬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여러 국가의 와인을 수입해서 SKU가 많다 하더라도 외부에서 수입사의 이름을 들었을 때 이 수입사는 뭐가 최고라는 형식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아, 거기는 캘리포니아 와인 전문이지?”. 이러한 전략은 앞으로 수입사의 생존에 상당부분 도움이 되리라 본다.


이 모든 것들이 정답일 수는 없으나, 시장의 외연 확대만큼 와인의 다양성이 함께 확대되는 시기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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