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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Nov 03. 2020

RP, WS, Vivino 그리고 YouTube

와인 평가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최근에 와인의 평점 권력은 급격히 이동했다. 로버트 파커의 RP/WA 지수나 와인 스펙테이터의  점수는 큰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비비노의 점수가 훨씬 더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내 주변의 지인들만 하더라도 단톡방에서 가격 저렴한 와인인데 비비노 평점이 높으면 훨씬 더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이전에도 여러 번 밝혔지만 나는 인공지능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전공에 기반하여 이야기를 약간 하자면, 인공지능은 사람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일 뿐 감정은 없다. 검색도 마찬가지인데, 구글이 처음 만들어낸 방법은 “연결이 많은 페이지가 더 연관성이 높을 것”이라는 가설로 설계가 되었다. 이 예상은 적중했는데, 이 연결이 페이지에서 사람들의 추천 수로 된 것을 협업 필터링이라고 한다. 아마존에서 처음 적용된 것으로서, 요즘 쇼핑몰에 많이 뜨는 “이 물건을 산 사람이 함께 산 것”하며 목록이 뜨는 것을 처음 만들어낸 사이트이기도 하다. 이 모델을 고스란히 가져온 곳이 유투브다. 이 단순한 방법은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빨리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서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사람들을 한쪽으로 자석처럼 끌어오거나 몰아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단점, 그리고 사람들의 다양한 선택을 가로막는다는 단점이 있다.


비비노는 더 간단한 시스템을 채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별표를 많이 달아주는 것의 평균을 정량적으로 제공한다. 누가 이 것을 더 좋아했다 하는 것도 없다. 이 숫자의 시스템은 저가 와인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마실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점수 시스템이 5점 척도라는 것이다. 대중은 와인 맛의 절대적 가치 5점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나같이 와인을 매일 마시는 애호가는 그 5점 기준이 매우 높다. 그러나 와인을 처음 마시는 이는 이 와인에 대한 점수 기준이 낮을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평가가 한 번도 없는 와인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나쁘지 않아서 5점울 주었다고 다시 가정하겠다. 일반 데일리 와인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면 무난하다 생각하여 마치 우리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한 뒤 평점 올리듯 4~5점을 준다고 가정하면 그다음부터 전문가들이 평점을 준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평점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전문가가 별 3점을 주었다 하더라도 모든 사용자는 1개의 별만 줄 수 있기에 이 점수를 뒤집기는 어렵다. 반대로 고가 와인들은 평점 체계에 있어서 손해를 볼 확률이 높다. 까다로운 애호가들이 평점을 매기고 평점을 내리는 사람의 수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치열한 논쟁이 일어날 수 있다. 즉, 데일리 와인의 비비노 평점 4.1과 고가 와인의 비비노 평점 4.1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기존 로버트 파커나 와인 스펙테이터의 경우 100대 와인을 뽑을 때 와인의 여러 요인을 판단하여 평가했기 때문에 일련의 논쟁이 있기는 했으나 전문가들의 신뢰를 얻었고 소비자들도 이 점수 체계가 일부 정치적 요인이 있기는 했으나 터무니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비비노 평점은 거의 절대성이 부여되면서도, 그사이에 파묻히는 여러 위험 요인은 전혀 검증되지 않고 있다. 최근의 온라인 세태는 바로 이러한 “검증”에 있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인 부분이 최근 많은 논쟁의 중심에 있는 와인 유투버다. 나도 주변에서 유투버를 해보라고 권유하는데, 나는 카메라와 친하지 않고, 또 촬영 중에는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좋다. 글은 생각을 정리하고, 쓴 뒤에 두 번가량 리뷰 해서 내기 때문에 오히려 정제된 의견을 낼 수 있다.(이 글도 초안 1주일, 재검토 2일 거쳐 글로 올리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구글의 방법은 유투브에 그대로 적용되었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이점은 있으나, 이로 인해 사람들의 생각에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문제점 역시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처럼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예를 들어보자. 피라미드가 외계인이 만든 것이라는 음모론의 유투브를 보면 그다음부터 계속 음모론 관련 유투브만 나열된다. 최근의 정치적 편향성 역시 이 유투브의 알고리즘에 휘둘린 결과라는 것이 검색 알고리즘 등을 설계하고 원리를 알고 있는 내가 내리는 결론이다.


유투버의 경우 논쟁이 일어날 경우 히트수가 올라가고 그 것은 개인의 수익으로 연결된다.(물론 어느 정도 사람의 수가 되어야 하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의견이 계속 나오고, 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자꾸 그 부분의 방문객이 늘어난다. 이 때 정보의 사실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의 추종자들에게 계속해서 하나의 정보가 보여짐으로써 의사 결정에 고정점 편이(Anchoring Bias)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유명 유투버가 “이 와인 쓰레기”라고 발언하면 그 와인은 시작점이 중간(50점)이 아닌 바닥(0점)에서 시작하게 된다. 이 와인은 아무리 마케팅이나 노력을 해도 결국 중간이 한계점이 될 뿐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생산자, 수입자, 소비자 모두가 될 수 밖에 없다.


좋은 이야기를 냄에 있어서는 아낌이 없어야 한다. 좋은 이야기가 많이 퍼질수록 세상은 따스해진다. 그러나 좋은 이야기는 파급력이 약하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콘텐츠는 훨씬 퍼지기 쉽다. 가십성 콘텐츠는 쉽게 퍼지고 많은 이들에게 편향된 생각을 지속적으로 주입하게 된다. 결국 피해는 모두에게 가게 된다. 한 두 사람이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정보성과 선동성이 혼재된 콘텐츠는 일반인이 구분하기 매우 어렵다. 덕분에 최근의 여러 논쟁에 있어서도 이 것의 사실성 여부부터 소비자 권리, 공명심 등 여러 가지 주제가 혼재되어서 여러 사람들을 논쟁의 소용돌이에 밀어 넣는다. 이 소용돌이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다시 그 유투버를 찾게 되고 댓글이나 여러 과정을 거쳐 다시 더 큰 이슈화가 된다. 악순환인 셈이다. 만약 내 생각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내 자아마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때 방법은 유투브를 끊거나(매우 어렵겠지만), 나만의 명확한 판단 준거를 가지고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둘 다 쉽지 않지만 지금 세상은 이 것을 소비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를 잘못 다스리는 사람은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게된다. 처음에는 두렵지만 내 선택을 믿고, 행여 실패하더라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지금 와인 애호가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문구다. 이 문구는 내 인생의 지침이기도 하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묻지 마라. 나는 나의 두려운 리듬을 좆아 터벅터벅 따라갈 뿐.” 진정한 승자는 외부의 정보를 보고 나만의 시각으로 해석한 뒤, 외치지 않고 외로이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실패가 두려워 외부 정보에 의존적이고 자극적 정보에 휩쓸리는 애호가가 될 것인가, 주체적인 애호가가 될 것인가, 선택은 당신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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