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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Nov 15. 2020

알면 더 재미있는 와인

어느 취미든 그렇지만 알면 더 재미있어진다.

아마도 한국인으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모른다고 하면 거짓말 약간 더해서 간첩일 것이다. 아니, 간첩도 이 책은 아는지 모른다. 그만큼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던져준 문화재에 대한 화두는 묵직하다. 이 책의 화두는 간단하다. “알면 그 존재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 단어에 딱 맞는 것이 와인이다. 지인들과 와인 이야기하다 보면 나에게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무슨 쓸데없는 지리(혹은 이상한 역사)들을 아세요”하는 것이다.


내가 역사 덕후나 지리와 관련된 세부적인 학자 수준의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섬주섬 늘 관심을 두고 조금씩 머릿속에 담아온 덕분에 지금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진 것 같다. 그리고 이 이야깃거리를 생각해보니 와인에 있어서는 몇 가지 범주로 구분되는 것 같아 가볍게 정리해 본다.


지형도

어린 시절부터 우리가 끝없이 들어온 한국의 지형은 동고서저다. 강원도 태백산맥의 큰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동해안과 서해안의 기후는 큰 차이점을 보여준다. 같은 나라인지 신기할 정도로 태백산맥의 영향은 엄청나다. 고속철도로 서울-부산을 3시간 이내에 주파가 가능한 이 작은 나라도 이렇게 기후가 다양한데, 유럽의 경우 어련하겠는가? 단순히 지도만 펴놓고 보기보다는 지형도가 있다면 더 좋다. 그리고 구글 어스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하여 지구의 삼차원 모양을 보는 것도 좋다. 구글 어스는 와인 애호가들에게 가보지 못한 와인 생산지의 멋진 전경을 감상할 수 있게 도와준다.


특히 최근 캘리포니아에 자주 발생하는 산불지역 중심으로 그 쪽의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다. 잘 알겠지만 그 지역은 환태평양대의 산 안드레아스 산맥 주변으로 여러 산맥이 이어져 았다. 전 세계 많은 인구들이 바닷가 대도시에 살고 있고, 그 중 상당수는 지진대에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도시만 하더라도 도쿄, 멕시코시티, 로스앤젤레스 등 그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다. 이러한 곳은 신대륙 스타일의 와인이 많이 나온다. 지형이 험준하고 비교적 최근(지구 역사 관점)에 생긴 지형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 테루아를 가진 유럽의 경우에는 빙하기 이후 침식된 지형들에서 유래된 포도밭들이 많다. 유럽을 가보면 평지나 구릉성 산지가 많고, 중간중간 협곡성 땅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로 강을 중심으로 있는데, 이 주변이 와인 산지인 경우가 많다. 독일의 주요 산지(모젤, 라인가우 등)나 프랑스 론강 주변은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난다.


퇴적층에 의한 산지는 보르도의 메도크(Medoc) 지역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각각은 와인의 특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세밀한 사면으로 햇빛을 얼마나 잘 밭는지 알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른 포도의 품질 역시 천차만별로 나타나게 된다. 지형을 알면 그만큼 와인의 품질을 잘 알게 된다.


역사의 중요 사건들

큰 전쟁은 와인에도 영향을 크게 준다. 첫 번째로는 포도밭이 황폐해지는 것도 있고,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포도밭을 밀밭으로 바꾸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동도 초래하게 된다. 나치의 핍박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나, 1차대전 이후 가난한 이탈리아인들이 아르헨티나 혹은 미국으로 이동한 것 등은 최근의 와인 역사에도 영향을 많이 준 사건들이 될 수밖에 없다. 포도원들의 역사를 만나보면 대개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동기가 되었다거나, 증조부가 1차대전에 참전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보르도의 샤토 탈보(Chateau Talbot)와 같이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백년 전쟁 스토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와인도 있다. 이탈리아의 바롤로(Barolo)나 바르바레스코(Barbaresco) 지역은 2차대전 당시 파시스트들에 의해 밀 생산 증대를 위해 포도나무를 뽑았던 일도 있다. 1차 대전은 북부 론 지역의 포도밭들을 황폐화 시켰고, 아직도 아펠라시옹으로 인정되지 않는 비엔느(Vienne) 포도원 등이 있게 만들었다. 와인도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인간이 밀접하게 연관된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면 와인을 이해할 수 없다. 샤퇴뇌프두파프(Chateauneuf-du-Pape)의 이름도 결국 아비뇽의 유수라는 역사적 사건에 기인하지 않았던가?


아주 상세한 역사를 알라는 것이 아니다. 시기별로 서양 역사를 인터넷을 통하든, 책을 통하든 종종 알아두게 되면 와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지식은 나중에 와인 전문가들에게 더 상세한 지식을 물어볼 때도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와인은 기술적 요인을 아는 것도 중요하나, 그만큼 인문학적 소양도 함께 쌓게 된다면 와인을 고를 때에도 즐거움이 배가될 수 있으며, 와인 자리에서도 더 풍부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 동네의 먹거리 문화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은 좀 예외로 둔다고 하더라도 지역의 먹거리 문화는 와인에 큰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프랑스 마르세이유(Marseille) 근방의 방돌(Bandol)이나 타벨(Tavel) 같은 지역은 로제 와인으로 유명하다. 이 로제 와인들은 특히 이 지역의 부이아베스와 멋진 궁합을 보여준다. 각 지역에 가면 그 지역 와인과 궁합이 맞는 치즈나 음식들이 있다. 우리도 두부김치에는 막걸리, 삼겹살에는 소주, 활어회에도 소주 같은 몇몇 궁극의 궁합이 있지 않은가?


이탈리아의 와인 명산지 피에몬테에도 우리의 육회와 매우 유사(아니 거의 같다고 하는게 맞을지도 모른다)한 바투타(Battuta)가 있고, 이 요리는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 혹은 최근 품질이 더욱 향상되고 있는 바르베라 다스티 슈페리오레(Barbera d’Asti Superiore) 같은 와인들과 맛을 보면 정말 멋진 궁합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에서는 트러플 오일에 버무린다면 우리는 참기름에 버무리고 단 맛을 위해 배, 고소함을 위해 잣가루를 더하는 것 보면 맛의 궁합은 다 현지 식자재의 조합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우리의 육회도 섬세한 네비올로 와인이나, 다소 투박해 보이지만 멋진 산미를 선사하는 바르베라가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네비올로의 경우에도 가티나라(Gattinara) 혹은 발텔리나 슈페리오레(Valtellina Superiore) 같은 다른 지역의 것을 매칭해본다면 더 독특한 궁합을 느낄 수 있다.


당연히 아르헨티나 와인은 아사도(Asado)로 대표되는 소고기 요리다. 말베크(Malbec)이 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딸기향과 깊은 풍미를 선사하는 이 품종은 소고기와 멋진 궁합을 보여준다. 특히 기름기가 적은 수입 스테이크 전용 부위를 매칭하면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무엇이든 알면 더 즐거워진다. (꼭 와인에 한정지워 생각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아는 것을 바깥에 자랑하고 심지어 남에게 훈수를 두는 것은 하수(下手)다. 진정한 고수(高手)는 이 앎을 통하여 내면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일 것이다. 여기에 뜻이 맞는 지인 몇이 더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환상의 와인 궁합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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