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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Oct 15. 2020

자연재해와 와인의 상관관계

2020년 가을, 나는 사과를 사러 갔다가 그 엄청난 가격에 깜짝 놀랐다. 물어보니 태풍이랑 장마로 인해서 수확량이 엄청나게 줄었다고 한다. 물론 사과의 크기도 작았다. 내 학창시절 지리 시간에 배운 사과의 주산지는 대구였다. 대구 능금은 최고의 품질로 알려졌으나, 최근에 대구 사과는 거의 없고, 경북 문경/청송/영주/풍기, 충남 예산과 같은 중부지방으로 사과 산지가 많이 바뀌었다. 문경의 경우는 골짜기가 많고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과육이 단단하고 옹골찬 사과가 나고, 영주의 경우 부석사 언저리의 따스한 햇빛으로 단 맛이 많은 사과가 난다. 그러나 올해는 자연재해가 사과 가격을 올려버렸다. 이처럼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자연재해들은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2020년은 인간에게도 코로나의 상흔이 매우 큰 해이지만, 와인에도 큰 고난이 따르는 것 같다. 가장 대표적인 지역은 미국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부르고뉴와 몇몇 지역에 있어서는 역대급 빈티지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다수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자연재해로 인하여 발생되는 와인의 위기는 그냥 손 놓고 볼 주제는 아닌 것 같다. 수확기 건조한 날씨 덕분에 해마다 위대한 빈티지를 만들어온 캘리포니아 지역은 2020년 건조함이 과도하여 최근 급증하는 산불로 인한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의 여러 AVA들, 특히 북부 Anderson Valley와 같이 산지 가운데 있는 AVA들은 이번 산불의 영향이 매우 클 것 같다. 이번 산불로 인해 포도원들의 피해도 증가하고 있다.(아래 기사 참조) 다만 지금까지의 보고 상황으로 보면 주요 포도원들은 예년과 같은 수준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올해는 올해고 내년은 내년이다. 기후 변화는 앞으로 우리의 와인 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줄 것임에 틀림 없다.



미국의 뉴스에 가려졌으나, 2020년 10월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 큰 비가 내리고 있다고 한다. 안젤로 가야의 경우 수확을 9월 21일 시작했고 포도의 상태도 매우 좋다고 한다. 그러나 인지하다시피, 네비올로는 만생종으로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우리는 2002년 최악의 빈티지를 확인했다. 2020년 10월 바롤로지역은 2주간 비가 온 날의 수가 무려 8일이나 된다. 수확시기에 겹치는 폭우는 포도원에 재앙이 될 수 밖에 없다. 폭우는 또한 경사진 포도밭에서 좋은 미네랄리티를 가진 토양을 쓸려가게 만들어서 포도밭의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내가 방문했던 포도원의 관리 업무중 주요한 것은 우기에 토사의 유실을 막는 것도 있었다. 자연재해가 커질수록 경사면에 있는 포도밭은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여러 해 동안 우리는 멋진 빈티지를 만나 왔다. 부르고뉴의 경우에도 2014, 2015, 2017, 2018과 같은 대단한 빈티지들을 보아오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의 경우에도 나쁜 빈티지를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해마다 멋진 맛을 보여주었다. 물론 2014년과 같은 최고의 빈티지도 있지만, 어느 빈티지를 고른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는 훌륭한 나날을 보내 왔다. 그러나 앞으로 자연 환경이 우리에게 계속 우호적일까? 우리는 이미 기후변화의 한가운데 있고, 와인은 점차 편차가 커지게 될 것이다. 특히 자연재해에 따라서 와인의 변동폭이 커지면 좋은 연도의 와인 가격 변동이 더 커질 확률이 높다. 세계 그 어느 지역도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에, 앞으로 우리는 좋은 와인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좋은 빈티지의 확률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면 좋은 빈티지의 가격은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와인 애호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자연의 변화를 감안하여 만약 마음에 드는 와인이 있다면 지금 조금 비싸게 보이겠지만 미리미리 사두기를 권고한다. 자연의 변화가 앞으로 더 커지면 커지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아는가? 필록세라 같은 희한한 병이 번지고 포도가 거의 멸종되어 매일 마트에서 사먹는 1만원짜리 와인의 가격이 100만원이 될지 미래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바나나의 멸종과 같이 우리가 늘 즐기는 와인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을 내려두고, 지금 마음에 드는 좋은 와인이 있다면 미리미리 한 병씩 사두자. 우리 세대만이라도 일단 좋은 와인을 마셔야 하지 않겠는가? 후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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