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휘웅 Apr 26. 2021

와인 업계의 갑과 을

영원히 풀리지 않을 기묘한 관계

얼마전 칼럼 하나에 댓글이 달려서 확인을 해보니, 내 칼럼이 수입사 중심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었다. 그 댓글을 보면서 글의 편향성이 없게 쓴다고 생각하는데, 간혹 간과하는 부분들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만히 생각 해 보니 이 부분은 결국 누가 더 거래관계에서 우위에 있는가 하는 점이 근원적인 이슈라고 생각되어 제목을 위와 같이 정했다.     


우리는 수 많은 갑과 을의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사회 여러 문제 역시 소위 “갑질”이라는 우위에 있는 사람이 지위를 이용하여 무리한 요구를 하는데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갑질의 본질은 잘 생각해보면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 나 스스로가 갑이라고 느끼는 경우, 둘째, 거래 관계에 의해 어쩌다가 갑이 되는 경우, 셋째, 계약에 의해 갑이 되는 경우 세 가지가 될 수 있다. 셋째와 둘째를 나눈 이유는 일종에 소송에서 원고와 피고 관계에서 승소 여부에 따라 갑을 관계가 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와인 업계는 주로 두 번째 거래 관계에서 발생하는데, 여기는 철저히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따른다.     


만약 로마네 콩티가 연간 생산량 1천만 병의 부르고뉴 최대 물량 와인이라고 가정해보자. 과연 그 가격을 받을 수 있을까? 깐깐한 품질관리, 국가별 물량 배정에 따라서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로마네 콩티를 아주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물론 아주 싸다는 말이 10만원 20만원이 아니고 적어도 1천만 원 아래로 먹을 수 있다는 말인데,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고급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면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판매자의 입장이 “갑”이기 때문이며, 로마네 콩티는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래한 레스토랑에는 일부 물량을 싸게 하여 공급한다고 한다.     


혹자는 여기서 공정성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격 정책은 공급자의 고유 권한으로써, 해당 레스토랑은 내가 잘 알고 오래 거래한 집이라 싸게 주는 것이고, 너희들에게는 세트로 구매해야 하며 그 물량 마저도 통제하겠다, 그리고 어느 가격 이하로 팔아서는 안된다는 기준을 계약서에 명시하여 가격을 정한다. 이는 로마네 콩티의 입장이 적은 공급량, 압도적인 브랜드의 힘과 품질에 의해 오랜 기간 만들어진 매우 강한 “갑”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있었는데, 안젤로 가야의 와인이 국내에 초기 수입되었다. 안젤로 가야씨가 국내 숍을 둘러보고는 본인 와인의 유통 가격을 확인한 뒤 격노하여 수입사를 변경시킨 것은 잘 알려진 뉴스중 하나다. 이 역시 공급자가 우위를 점하는 경우다. 국내의 경우에는 수입사들이 을이 되기도, 갑이 되기도 한다. 해외의 생산자중 극히 일부의 위대한 와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케팅이나 영업 활동을 하지 않으면 수출은 언감생심이다. 해외 유수의 와인전시회가 존재하는 이유 역시 나서서 나를 설명하지 않으면 구매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즉 이 때는 생산자가 을이 되고 구매자인 수입사가 갑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시간이 흐르다가 수입사에서 특정 와인을 많이 수입하고 한국 시장에서 자리를 잘 잡게 되면 갑자기 갑을 관계가 바뀐다. 기존에 을이었던 생산자가 갑자기 물량을 강요하거나 가격을 올리기 위해 수입사 변경을 추진한다. 이 때에는 갑을 관계가 다시 뒤바뀐다. 수입사는 기존에 잘 쌓아둔 브랜드 이미지를 저들이 체리피킹 하는 것처럼 보이겠으나, 생산자 입장에서는 덕분에 브랜드 파워가 생겼으니 이제는 더 큰 수입사를 찾아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갑을의 관계는 늘 뒤바뀌기 마련이다. 벙어리 냉가슴이겠지만, 이 복잡한 관계를 어떻게 하겠는가?     


숍의 입장에서도 그러하다. 숍은 구매력에 있어서 고객 리스트가 많고 물량을 잘 빼주는 경우 수입사들에게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매출이 나지 않는 경우, 결제를 못해주는 경우에는 수입사가 갑, 숍이 을의 위치에 있게 된다. 와인은 기본 물량을 재고로 갖고 있는 기준에서 그 다음으로 다른 와인들을 프로모션 하거나 고객 리스트에게 물량을 빼는 방법으로 수익을 남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격의 변동성이나, 경쟁 숍의 가격이 더 싸게 시장에 풀리는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힘이 있는 숍이라면 수입사에 갑의 위치로 물량이나 거래에 대한 압력을 넣을 수 있겠으나, 반대의 경우라면 수입사가 오히려 물량 통제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얼마전 모 수입사가 가격 통제 공문을 돌려서 공분을 산 적이 있다. 와인의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며, 로마네 콩티와 같이 압도적인 브랜드 파워를 가진 경우에는 자체 조정력이 있지, 그 이외는 대부분 유통 과정에서 그 가격이 결정되기 마련이다. 이를 인위적으로 통제하고자 한 그 수입사의 행동은 어리석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를 모든 수입사들의 행동으로 일반화 해서 보는 것은 적절하지 한다.     


현재 시장에서 재미있는 현상은 공급보다 수요가 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와인 시장에서 이런 일은 이제껏 없었다. 덕분에 과거에는 철저하게 갑의 위치에 있던 숍의 지위가 일부 와인들에 있어서는 을의 위치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특정 수입사의 공문 사태의 경우에도 일련의 현상에서 기인한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배정 물량이 통제된다든지, 가격을 얼마 이하로 주지 않는다든지 하는 수입사의 고압적으로 보이는 자세는 시장이 나빠지면 언제 다시 을의 위치로 바뀔지 모른다.     


현명한 수입사는 호황기에도 겸손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현명한 숍은 어려운 시기에도 좋은 거래 관계를 가지는 수입사에 좀 더 따뜻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어느 산업계든 마찬가지겠지만, 서로 돕고 성장하는 선순환적 관계를 만드는 것이 착취적 관계와 의심을 전제로 하는 관계로 만들어 발생되는 비용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와인 업계의 갑과 을이기는 하지만 그 간극을 줄이고 서로간의 사정을 적절히 이해한다면 와인이 추구하는 “중용과 밸런스”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1년 1분기 수입와인시장 점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