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휘웅 May 11. 2021

와인에서도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2021년 4월, 애플은 약 10여년 만에 새로운 아이맥을 출시했다. 특이한 점은 기존의 21.5인치를 없애고 새롭게 24인치를 출시했으며, 27인치는 그대로 두었다는 점이었다. 모 언론사의 기사를 읽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맨 아래 댓글에는 ‘아이맥이 27인치인데 사실 확인도 하지 않았느냐’ 하는 취지의 댓글이 달렸다. 당연히 댓글을 쓴 사람의 머릿속 생각에 존재하는 아이맥의 기준은 21.5인치와 27인치였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 해 보면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많다. 와인 분야에도 고정관념은 여러 가지 있다. 피노 누아르는 블렌딩을 하지 않는다. 보졸레에서는 가메이와 샤르도네만 재배된다와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것처럼 이런 고정관념은 얼마든지 바뀔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보졸레 지역에서도 요즘은 피노 누아르가 많이 재배된다. 물론 최고의 테루아에 비해서는 품질이 밀리기는 하나, 절대로 만만하게 볼 품질이 아니다. 게다가 부르고뉴의 높은 땅값과 생산 비용등을 피해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유명 생산자들이 심심치 않게 엄청난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보졸레 지역에서 샤르도네를 생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비오니에를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비오니에는 당도가 높고 산미가 낮은 특성을 보이기에 주로 서늘한 지역에서 재배하여 둘의 밸런스를 맞추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더 북쪽에 있는 보졸레에서도 비오니에에 대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고, 최근에 맛본 보졸레의 비오니에는 합리적인 가격에 대단한 맛을 보여주었다.  


만약 15년 전으로 갔다면 미국에서 피노 누아르가 생산되는 곳은 오리건주라는 사실을 거부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캘리포니아산 피노 누아르가 오히려 더 오리건 지역에 비해서 소비자들에게 더 인정을 받는 것 같다. 특정 포도원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경우에도 라인업이 계속 변경된다. 특정 포도 품종의 매출이 잘 나지 않을 경우 단종시키고, 새로운 품종을 넣기도 한다. 포도원도 운영되려면 돈이 필요하며, 마냥 실험적인 와인만 만들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돈을 벌 수 있는 주력 와인을 상정하고 생산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변화를 주되 소비자들의 눈치는 언제나 보아야 한다.     


토스타나의 명주를 생산하는 퀘르치아벨라의 경우 이전에는 바타르, 카마르티나, 팔라프레노, 키안티 클라시코 네 가지만 있었으나, 몽그라나가 더해진 이후 카베르네 프랑, 시라, 메를로 블렌딩의 투르피노가 추가되었다. 이 포도원도 매출의 주력은 키안티 클라시코이지만 이처럼 라인업을 서서히 늘려가면서 포도원의 세력을 키우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에 내가 이 포도원을 처음 알았을 때와 지금은 많이 다른 셈이다.    

 

오린 스위프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98년 처음 생긴 이후에 빠삐용, 머큐리 헤드, 프리즈너 등 단순한 라인업을 같고 있었으나, 현재는 17개 라인업으로 늘어났으며, 거꾸로 프리즈너는 단종되었다. 만약 내가 과거의 지식으로 와인 애호가들이나 업계에 15년 전 지식으로 와인 설명을 한다면 망신 당하기 십상인 셈이다. 과거에도 말했듯이, IT 업계만큼 빨리 변화하는 곳이 와인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칠레에서 새롭게 발견되었다고 떠들썩 했던 카르미네르가 어느덧 25년이 되었고 이제는 칠레에서 메를로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초기에 일부 거칠었고 밸런스가 맞지 않는 느낌은 라포스톨과 같은 열정적 생산자들에 의해 상당히 안정화 되고 높은 품질의 와인으로 탄생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빈티지의 특성을 이야기 하고 빈티지 차트, 시음적기에 대한 이야기를 논하지만, 요즘은 서서히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마셔본 어린 바롤로는 그야말로 정말 마시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리고 오래 숙성된 바롤로는 엄청난 섬세함과 깊이감을 주는 와인이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바롤로는 그런 엄청난 타닌의 느낌과 강인한 산도를 많이 다듬어서 최근 소비자들의 취향도 많이 맞추는 경향을 띠고 있다.     


한 때 지나치게 미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따지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다시 연하고 섬세한 브루넬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뚜렷하다. 예를 들어 리시니의 우골라이아 같은 와인의 경우 진하고 뻑뻑한 보디감의 와인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기 쉽다. 그러나 내가 2016년 프로바인 전시장에서 맛보았던 이 와인의 한 잔이 주는 깊이감 있는 질감, 아로마, 산도의 균형감은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과거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비에르초 지역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팔라시오스와 같은 개척자, 그리고 미국의 컬트와인 생산자 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와인은 IT업계 이상으로 역동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베르(Aubert)가 초기에 돈이 없어 남의 포도를 사고 양조 시설을 빌려 와인을 만들었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어느덧 그의 포도원도 만들어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와인은 자연의 역사이자 사람의 역사이다.     

역사는 언제든 변한다. 과거의 역사는 기억해야 하며, 지금의 역사는 체득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역사의 체득을 게을리 하고 과거의 역사에 머물러 있다면 그야말로 “라떼”인간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 지금 부지런이 역사를 체득해야 한다. 체득하는 방법은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여러 와인을 열심히 마시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기승전음주로 연결되는 내 칼럼 역시 고정관념 같지만, 와인애호가들을 위해서는 이런 결론이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 이정도 고정관념은 남겨놓으며 글을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와인 업계의 갑과 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