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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Feb 20. 2022

비싼 와인이 비싼 와인인 이유

사람들이 간혹 내게 묻는 것 중 하나가 “그 와인이 그렇게 비싼데 그만한 가치를 하는가요?”이다. 이 부분은 참으로 어려운 부분인데,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의 손톱을 생각 해 봅시다. 어떤 이는 손톱이 손가락 끝 안으로 뭉쳐 있어서 어지간해서는 부담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손톱이 앞으로 나온 형태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앞으로 나와도 키보드를 칠 때 손에 금방 느낌이 드러납니다. 키보드를 치면서 자꾸 신경이 쓰이지요. 그 때에 손톱을 보면 차이가 명확합니다. 이 것을 위해서 손톱을 깎습니다.

깎인 손톱은 불과 1mm 남짓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사이에서 엄청난 불편함을 느낍니다. 우리가 불편을 느끼는 것은 매우 작은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주사바늘이 커서 무서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 작은 것 때문에 우리가 두려움에 떨거나 불편함을 느끼게 되지요. 와인의 품질도 그렇습니다. 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고 개선하는 생산자가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와인의 맛은 참으로 기묘하다. 이것은 사람의 취향과도 직결된다. 그러나 천천히 살펴보게 되면 이 작은 차이는 매우 크다. 와인에서 1mm는 길이의 문제이니 와인에서는 품질 1%라고 말을 좀 바꾸어서 해볼까 싶다. 그리고 와인에서 이 1%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고 볼 수 있다.


품종별로 이야기를 해보자. 우선 메를로(Merlot) 품종이다. 체리, 자두 계열의 아로마가 나고 특히 뭉근한 과실 느낌이 특징적이다. 약간의 초콜릿 느낌도 날 수 있지만 카카오닙스에 가까울 정도로 드라이한 느낌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체리 느낌을 잘 내기가 어렵다. 잘 못 하면 비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마시는 이에게 거부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메를로만큼 어려운 품종이 없는 것 같다. 잘 다듬으면 기가막힐 정도로 우아하고 멋진 맛이 나는데, 그 응집력과 부드러움의 섬세함 사이의 줄타기를 잘 못 하는 경우 역한 느낌을 준다. 어린 메를로 역시 비슷하다. 그러나 잘 숙성된 메를로는 천상의 맛을 선사한다. 가만히 맛을 보면 그 맛의 차이는 불과 1%다. 설명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이 체리의 느낌에서 아주 작은 차이점이 엄청나게 큰 변화를 가져온다.


시라(Syrah)의 경우도 그러하다. 블루베리 계열의 아로마가 아주 우아하게 피어난다. 북부 론의 주력 품종으로써, 지역에 따라 편차가 매우 크다. 대표적으로 편차를 볼 수 있는 곳은 크로제 에르미타주(Crozes Hermitage)와 에르미타주(Hermitage)다. 거의 코 앞에 붙어 있는 지역이지만 하나는 언덕에 있고 하나는 평지에 있다. 언덕에서 나는 시라는 색상이 짙어지고 농밀한 맛을 만들어내는 반면, 평지인 크로제 에르미타주에서 나오는 와인은 상대적으로 색이 옅다. 더 구석으로 가서 생 조셉(Saint-Joseph)의 경우에는 더 옅어진다. 맛의 특징도 각 지역별로 대단히 다르다. 생 조셉은 산미감이 더 강해지는 반면 에르미타주는 중후하고 우아하며 묵직한 후추 계열의 터치가 많이 전해진다. 잘 익지 않으면 피망 같은 풋풋한 스파이스함이, 잘 익으면 흑후추 계열의 터치가 전해진다. 그런데 이 차이가 불과 1% 사이다.


그르나슈(Grenache) 역시 차이가 크다. 사실 그르나슈의 원조는 스페인의 가르나차(Garnacha)로 보는게 맞다. 그래서 그 본질을 보려면 스페인의 그르나슈를 보는게 좋다. 특히 프리오랏(Priorat) 지역의 멋진 그르나슈는 오히려 피노 누아르(Pinor Noir)의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은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좋은 밭은 오히려 북쪽을 보고 있다. 위도가 높은 지역은 태양을 더 많이 보게 하려고 가급적 사면을 남쪽으로 두나, 스페인은 거꾸로인 셈이다. 여기서 나는 섬세한 그르나슈는 진한 딸기, 그리고 진한 붉은 오렌지, 풍성한 과실 터치를 전해주는 와인이다. 이 그르나슈 역시 태양을 얼마나 보느냐에 따라서 너무 강인하고 진득한 단 느낌을 주느냐, 우아한 캐릭터를 주느냐로 변모한다. 그르나슈는 1.5%라고 이야기 하는게 더 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그 차이는 크다.


우리가 1% 차이라 하면 별 것 아니겠구나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1%의 차이는 의외로 크다. 빙상경기에서도 승패가 1/100초 단위로 결판나지 않던가? 그리고 그 거리는 불과 몇 cm 심지어는 몇 mm가 될 수도 있다. 선수들은 이 짧은 거리에서 승부를 내고, 이 기록을 0.1초 단위로 개선시키기 위해 4년의 시간동안 매일 운동하고 근력을 강화 시킨다. 지금 당신에게 100m 달리기 시간을 1% 개선(0.5초)하라면 쉽게 되겠는가? 더 늦어지면 늦어지지,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는 1mm, 1%의 개선이 뭐가 대수인가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엄청난 힘과 노력이 들어간다. 반대로 그 1mm의 느슨함, 1%의 결여가 품질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고가 와인은 스포츠 선수와 같다. 이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이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하겠지만 스포츠에서 보듯, 그리고 와인 시음 경험에서 보듯, 아주 작은 차이지만 사람에게 주는 감흥은 남다르다. 이 정도 답이면 고가 와인이 왜 고가 와인인지 적절한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돌고 돌아서 왔지만, 고가 와인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리고 지향점이 분명히 다르다. 오디오 장인들이 고음의 섬세한 떨림을 바로 잡기 위해서 끊임없는 연구를 하는 것처럼, 와인의 장인들은 이 1mm, 1%의 차이를 바꾸기 위해 매일 포도밭과 양조장을 넘나든다.


와인이 영감과 재능을 더욱더 필요로 하는 부분은 1년에 한 번 밖에 양조를 못 한다는 점이다. 오디오는 계속 반복 실험할 수 있지만 와인은 한 해에 한 번 승부를 본다. 얼마나 신경이 쓰이겠는가? 겉으로는 여유로워 보이지만, 이는 1년을 강박에 가까운 집중력으로 일구어낸 노력의 결실인 셈이다. 당연히 그 노력에 대가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산량도 적은데 말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차이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철학은 분명하다는 것, 이 것이 고가 와인이 주는 의미이다. 물론 지갑을 여느냐의 최종 결정은 소비자에게 달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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