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ello di Montalcino
지금 우리가 마시는 레드 와인은 피노 누아르를 제외하고는 아주 진한 루비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피노 누아르마저 색상이 아주 진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 등 여러 기후 변화 뿐만 아니라 와인의 양조 과정이 과학화 되고, 포도 재배에 대한 최적 수확 시기들이 더욱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우리는 더욱 숙성이 잘 되고, 침용이 잘 된 와인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 것은 “색상이 밝다고 다 가벼운 와인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브로넬로에 대한 내 경험중 가장 강렬했던 것은 1988년산 비욘디 산띠(Biondi Santi)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리제르바를 맛보았던 것이다. 무려 7시간을 브리딩 했고, 그 이후에 한 잔을 마셨는데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색상이 피노 누아르보다 더 맑은 색상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포도 자체가 잘 다듬어져 있다면 어떤 모습이 나오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그 다음으로 놀랐던 것은 2016년 프로바인에서 맛보았던 리시니(Lisini)의 우골라이아(Ugolaia)였다. 이 역시 맑은 색상이었는데 놀랍도록 깊이 있는 응집력을 보여주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진한 색상의 와인에 많이 길들여져왔다. 그리고 그 것이 현대적이며 진보적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은연중에 생긴 것 같다. 키안티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비노 노빌레 디 몬탈치노와 같이 산지오베제 기반의 와인들은 다른 지역의 와인들과 경쟁하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기울여 오고 있으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만이 유일하게 브루넬로(산지오베제 그로소)라는 포도만을 사용해야 한다.
브루넬로의 특징은 부드러움과 우아함이다. 그러나 그 것 이면에 깊이 있는 아로마, 보디감, 숙성 잠재력 등은 여타 와인들에 비해서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몬탈치노 마을 자체의 고도가 500미터 이상으로써 상당히 높은 곳에 있는 것에 기인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토스카나 지역은 평지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파라디소 디 카쿠치(Paradiso di Cacuci)는 전통적인 생산 방식을 좀 더 강조하는 곳이다. 전통적인 기법이라 하면 좀 더 커다란 오크통에서 오랜 기간 숙성한 것이라고 내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고싶다. 물론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 지역도 슬로베니안 오크통인 보티(Botti)를 쓰는 곳이 많다.
큰 오크통은 숙성에 있어서 시간이 오래 될수록 좀 더 부드럽고 섬세한 맛을 보여준다. 타닌의 캐릭터가 좀 더 드러날 수 있으나 미디엄 보디의 와인인 경우에 개인적으로 이런 큰 오크통 숙성 와인이 더 멋진 잠재력과 우아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포도원의 와인이 바로 이 기준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고 본다.
다음은 시음노트다.
Paradiso di Cacuci Brunello di Montalcino DOCG 2015
좋은 빈티지의 브루넬로는 아주 기분 좋은 산미감과 보디감을 선사한다. 클래식한 느낌의 밝고 투명한 루비색을 띠고 있는데, 전통적인 브루넬로의 색상 그대로다. 코 안의 아로마 역시 살구, 자두, 석류, 체리 계열의 아로마가 코에 잘 전해지며 약간의 오크 터치, 이탈리안 허브의 캐릭터도 전해진다. 전반적으로 둥그스름하면서도 매혹적인 아로마다. 입 안에서는 타닌감이 바짝 오르면서 혀를 조으는데 질감은 부드럽고 산미는 과하지 않다. 브리딩이 필요한 와인이며, 이 브리딩 사이사이에 와인의 멋진 모습을 즐기는 것이 좋다. 섬세하게 조리한 스테이크와 함께 하는 것이 좋은데 티본 스테이크 혹은 차돌박이 같은 고기 구이도 좋은 궁합을 보여줄듯 싶다. 아주 감칠맛 나고 섬세한 피니시가 일품인 와인이다.
Paradiso di Cacuci Toscana IGT Pavla 2019
산지오베제에 카베르네 프랑과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가 블렌딩 된 독특한 와인이다. 색상은 기분 좋은 루비색을 띠고 있으며 산지오베제의 강건함이 많은 와인이기에 이탈리아 와인의 특징을 좀 더 많이 갖고 있다. 좋은 산미감과 밸런스, 블랙베리, 크랜베리 계열의 터치가 명징하게 전해지며, 아주 좋은 크랜베리의 산미감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석류의 터치도 살짝 있으며 드라이하다. 모던함 보다는 클래식함을 좀 더 강조하는 와인으로써, 2~3년 더 숙성한다면 더 좋은 맛을 보여줄 것이라 본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가 많이 보편화 되고, 인지하는 고객들이 많아진 것 같다. 이 와인은 내가 근래 마셔본 브루넬로중 손에 꼽을 정도로 잘 만든 와인이니, 기회가 된다면 구매하여 마셔볼 것을 권장한다.(문의, 가자쥬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