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나서 전화했다"

목적과 용건 없는 '그냥 전화'가 그저 반갑고 고맙다

by 김평화

주민센터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오기가 무섭게 휴대전화가 울렸다. 입사 후 2번째 부서에서 함께 일했던 팀장이었다. '무슨 일이지? 전화할 일이 없는데' "잘 지내시죠? 왠일이세요?"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다. 잘 지내지?" "네~ 너무 잘 지내서 탈이죠(웃음)" 목적과 용건이 없는, '이런 전화'가 얼마만이지? 잘 헤아려지지 않았다.



한창 업무가 많을때는 하루에 서너시간은 전화통을 붙잡고 살았던 것 같다. 외부 관계자와의 통화가 대부분이었지만, 업무 진행상황을 조율하기 위한 내부 관계자와의 통화도 적지 않았다. 하루 중 통화의 대부분이 업무상 통화였다. (근데 통화료 지원은..음..) 대개 목적과 용건이 있는 사람들과의 통화이다보니 받지 않은 전화에는 애가 탔고, 울리는 전화에는 가슴이 뛰었다.


전화는 업무수단이었고 전화통화는 곧 업무였기 때문이었을까. 퇴근후, 휴일에 울리는 전화는 "여보세요"를 내뱉기 전부터 짜증이 치밀었다. 시간장소불문 울려대는 카카오톡 응대에는 이골이 났다. 아니 넌더리가 났다는 말이 더 정확할까. 그래서 휴식시간에 누군가와 전화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낯선일이었을지 모른다.


일터를 떠나자 전화는 잦아들었고 그 자리를 고요가 채웠다. 울리지 않은 전화가 처음에는 반가웠지만, 갑자기 찾아온 평화가 생경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긴 업무 통화로 채워졌던 일상이 일터에서 떠났는 이유만으로 삽시간에 친구들과의 재잘거림으로 채워지기도 어려웠겠지.


고요함에 익숙해질때쯤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더 이상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았다. 반갑다고 해야하나. "너 휴직 했다면서?!??"라며 걸려오는, 그 김에 나누는 '근황 토크' 는 즐거웠다. '전화통 붙잡고 떠는 수다'가 이런거구나. 취직 전까지는 뻔질나게 하던 일인데...이게 뭐라고 그게 참 좋더라.


'퇴직 또는 휴직에 대한 근황토크바람'이 잦아들때쯤, 그 고요함이 조금 지루해질때쯤 걸려온 '목적, 용건 없는 전화'는 반갑다 못해 감동스러웠다. 그저 '당신의 안위가 궁금하다'는 이 전화는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는 전화니까. 오롯히 나를 향한 전화이기에.


되돌아보면 나 역시 '무엇이 된(어떤 역할을 가진) 누군가'가 아닌, 온전히 그 사람에게 집중해 전화를 건 때가 언제인지 아득하다. 어떤 것에 대해 묻거나, 무엇인가를 부탁하거나, 아주 가끔이지만 뭔가를 지시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뿐, '니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그것이 그저 궁금해'서 전화한 적이 언제인지. 내게 걸려오는 전화가 그랬듯 나 역시 숙제를 잔뜩 안은 채 수화기를 들었었다.


"요새 뭐하고 살아?" 불연듯 보고싶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저 네가 요새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고민은 없는지 궁금했다. '집값은 손도 못대도록 왜 이렇게 비싸냐', '물가는 눈 깜짝하면 오른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한참 늘어놓은 뒤 만날 날짜를 잡고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문뜩, '이런게 사는거구나' 싶었다. 사람을 용건이나 목적이 아닌 사람 자체로 대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에너지와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정답은 없다지만, 화장실을 뛰어서 다녀오게 만들었던, 새벽부터 밤까지 전화통을 붙잡고 살던, 언젠가 그런 일터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다시금 내 전화에서 사람은 목적이 용건이 될 것이란것 쯤은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지금 마음껏 '그냥 전화'를 걸어봐야지. 시시콜콜한 네 일상이야기를 듣기 위한 전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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