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어켓 세대가 사는법

사람답게 산다는 것

by 김평화
경계에 실패한 감시병은 집단에 잡아먹힌다

meerkat-2794957_960_720.jpg


미어캣의 천적은 독수리나 매다. 이들이 하늘에서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보초를 선다. 보초를 서는 미어캣들은 바람 소리, 풀 소리에도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천적의 등장이 아닐지 살핀다. 경계에 실패한 감시병은 집단에게 잡아먹힌다. 집단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대업무이기때문인지 보초를 서는 순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수컷, 암컷, 그리고 우두머리 암수의 순으로 이뤄진다.


일터에서 떠나기 전 나의 모습은 꼭 미어캣을 닮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스치는 바람소리에도, 바스락 거리는 풀잎 소리에도 발을 동동 굴렀다. 언제 실패한 감시병이 돼 잡아먹힐지 몰라 바들거리며 경계서는 미어캣처럼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뭐가 그렇게 급하고, 뭐가 그렇게 불안했을까. 일터를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그때의 동동거림만 기억에 남았을뿐,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발을 굴렀는지가 아득하다.


sunset-3110150_960_720.jpg


김춘수 시인은 틀렸다. 적어도 내게는 틀렸었다. 그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나는 내 이름이 불러졌을때 하나의 몸짓을 해야했다. 실로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두근거림, 동동거림이 이어지기 일쑤였다.


새벽부터 시작된 그 긴장감은 대게는 밤까지 이어졌다. 상사는 쉼없이 나를 불렀다. 물론 그 역시 그의 상사로부터 쉼없이 이름을 불렸으리라. 문뜩, 새삼스럽게, '도대체 언제까지?'라는 의문과 '이렇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회의가 하루에도 몇번씩 밀물과 썰물이 밀려오듯 나를 스쳐갔다.


'원래 다 이렇다'고, '남들도 다 그렇다'고 했다. 진짜 주변을 휙 둘러보니 종일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다.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이렇게 사는게 사는 건가' 싶었지만 친구와 선배, 후배들이 하루하루를 동동거리며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며 물음표를 안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미어캣처럼 살아야 하는 운명인가' 자조했다.


그러나 몸의 신호로 반강제로 감시병 자리에서 내려와 보니 어렴품이나마 알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삶만 있는건 아니지 않을까. 다른 삶은 없을까. 감시병의 바위 위에 서있었던 내 자신이, 아직도 감시병으로 발을 구를 내 친구가, 선배가, 후배가 안쓰럽고 가엽다. 나에게, 우리에게 '네게 일어나는 일 중 상당수, 아니 대부분이 네탓이 아니라고, 안 그래도 힘든데 너를 자책하며 너를 갉아먹지 말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