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거지에서 시간부자로

시간이 생기면서 얻은 것들

by 김평화
확답을 못하겠어. 날짜는 나 빼고 정해. 당일에 갈 수 있으면 갈께.

사회인이 된 뒤 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부도수표'였다. 약속을 잡고도 당일이 되면 '오늘 일이 안 끝나서', '갑자기 일이 생겨서' 등의 이유로 불참하기 일쑤여서다. 지급제시를 해도 지급이 거절되는 부도수표같다고 해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어떤분께 이 표현이 상처를 상기시키는 표현이셨다면 미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약속을 잡는 과정에서도 "갈께"라고 말한적이 별로 없는것 같다. "확답을 못하겠어. 날짜는 나 빼고 정해. 당일에 상황보고 갈 수 있으면 갈께" 입사 이후 줄곧 격무부서에 있어서 퇴근 시간 자체가 늦은 밤이기도 했고, 잦은 회식과, 업무관련자들과 미팅을 빙자(?)한 술자리도 급하게 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상사가 간다면 함께 가야 하는 조직문화가 있었고, 일을 잘하고 싶었던 욕심도 적지 않아 'must'가 아님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기도 해서다.


처음에는 '우리 언제 볼껀데'라고 오던 연락이언젠가부터 '청첩장 모임' 등 공식(?) 모임이 아니면 오지 않고 있음을 알게됐다.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매번 불러도 오지 않는 친구를 애타게 계속 부르는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이어지는 주말 근무로 일생에 한 번(평균적으로 그렇다는 의미다)인 결혼식, 특히 부친상이나 모친상때 빈소에 찾아갈 여유도 없는 내 자신이(이런 경우는 타의로 일터를 떠날 수 없을때다)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 사나'

언제 밥 먹을까? 이번 주말? 다음주?

시한부 퇴사(휴직)을 하고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실은 회사를 다닐때는 업무와 관계된 사람과 약속이 잡히면 선약이 잡혀있었더라도 지인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약속을 변경했었다.


네트워크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업무를 했던 나는 내 업무가 '영업직'과 유사한 패턴을 가진 업무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이지만) 그래서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귀하게 만들었던 지인들과의 약속이 업무 관계자들과 약속에서 거의(항상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후순위가 됐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휴직을 하고 보니 결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친구들이었다. 이기적이게도 벼랑 끝에 서자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그때 내민 손을 그들은 기꺼이 잡아줬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때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털어놓는 이야기에 그들은 아무말 없이 "잘했다"고만 말해줬다. 10년 동안 잃어버렸던 친구들 다시 얻은 느낌이었다.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휴직을 하고 얻은 것 중 또 다른 것은 여유다. '시간',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온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시간'말이다. 그리고 여유가 생겼다. '시간거지'에서 '시간부자'가 됐다. 일주일에 하루, 귀중한 휴일이나 어쩌다 '칼퇴'를 할때는 1분 1초가 너무 아까웠다.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가, 애인이, 가족이 늦으면 미간이 찌푸려지기 일쑤였다. (이기적이여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약속을 내가 펑크내고 연기했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때, 마트에서 몸이 불편한 분들이나 어르신들이 느릿느릿 이동하시거나, 아주 가끔 새치기라고 할때는 얼굴의 온 근육을 사용해서 '불쾌감'을 드러냈었다. 참을성과 배려심이 1도 없는, 과거 내가 싫어했던 그런 사람이 점점 되어가고 있었다.


핑계같지만, 일을 쉬기 시작하니 스스로 느낄만큼, 특히 과거의 내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이었는지 단박에 느낄만큼 여유가 생겼다. 10-20분의 기다림은 내 감정의 호수에 아무런 돌을 던지지 않았다. '뭐든지 좀 손해보고 산다고 생각하면 삶이 편하다'는 부모님의 말을 귓등으로 들어왔는데, 소소한 손해, 때로는 큰 손해를 '내게 약이다'라고 생각하면 내 삶이 정말로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내 시간'을 얻는 경험을 통해 '여유'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됐다. 물론 이 시간과 여유는 내가 퇴사가 아닌 휴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퇴사를 했었다면 '내 시간'이 여유보다 '불안'의 모습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면 퇴사를 했겠지만, '당장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곳'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더욱 컸기에 퇴사 대신 휴직을 선택한 것은 일단은 잘한 선택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여유'라는 단어를 천천히 곱씹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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