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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May 21. 2018

부러워도 지는것이 아니다

부러움의 감정을 인정하면 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운다에 500원을 건다


15년 지기와 11년 지기의 결혼이었다. 오랜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자주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던 친구들은 "이번에도 00이가 운다에 500원을 건다", "나는 1000원을 건다"며 내기를 해댔다. "이렇게 좋은 날 왜 우냐"며 코웃음을 쳤지만 역시나였다. 안 울려고 했는데 안 울 수가 없었다.


"이제는 연애를 하고 싶다"는 한 회사 인턴동기 B를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술자리에서 만난 대학동기 A가 연애 상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 둘이라면 괜찮겠다'는 마음에 밤 11시에 자는 B를 깨워 소개팅을 주선한 지가 2년여. 둘이 결혼을  한다니.


내가 아는 A는 '달달함'과는 영 거리가 먼 남자였다. 10년 넘게 그를 보아온 내게 A는 무뚝뚝함과 츤데레의 대사였을 뿐 달달함이나 다정함의 'ㄷ'도 상상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실은 A와는 기간은 오래됐지만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서 그의 이런 모습을 몰랐는지도 모르지만 A가 친구들 사이에 다정캐릭터는 아님은 분명하다)


런 A가 여친에게 보여준다며 다른 예식에서 축가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달라질 않나 다른 예식에서 커플축가를 하더니 본인 예식에선 "B를 평생 동안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겠다"며 직접 쓴 '혼인서약서'를 읽는가 하면 하객들이 꽉 채운 예식장에서 직접 축가를 불렀다. 실로 상상불가 장면의 연속인 것이다.


야생마 같던 A를 순하고 애교 많은 반려동물처럼 만들어놓은 B를 보며 '인연'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A를 180도 바꿔놓은 B와 두 사람이 만들어갈 인생 2막을 생각하니 뿌듯했다. 친구들은 "여기서 울면 구(構)여친처럼 보인다"며 놀렸지만, 그래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줄 알았다)



그날의 감정이 두 사람을 이어준 나 자신과 부부라는 결실을 맺게 된 두 사람에 대한 대견함, 뿌듯함을 넘어선 무엇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경정신과 정기상담을 받기 시작한 뒤 인상 깊은 감정 변화를 겪은 경험을 되짚어보며 내 진짜 마음을 관찰하는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내가 느꼈던 진짜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A가 B를 만난 뒤 자신의 삶의 양태를 완전히 바꾸는 모습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듦이 아니라 행복해하는 A의 모습을 보며 B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러움을 느꼈다. 그들을 보며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그들과 나의 관계를 반추했고, 그 속의 내 모습이 측은했던 것이다.


병원 상담을 받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가족과 친구 등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털어놓을 수 없는 '정말 쪽팔린 나의 바닥'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이나 친구였다면 말할 수 없는 그 쪽팔린, 부러워서 울어버린 찌찔한 감정을 의사 선생님께는 털어놓을 수 있었다. "부러운 감정을 찾아내고 인정한 건 잘하신 거예요. 부러운 감정을 포함해 어떤 감정이라도 억압하는 건 좋지 않아요"


되돌아보면 '부러움'은 억제해야 하는 감정이라고 배워왔던 것 같다. 부러움은 '남의 좋은 일이나 물건을 보고 자기도 그런 일을 이루거나 그런 물건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라는 가치중립적인 감정이지만 이런 감정이 '욕심'이나 '탐욕', '시샘' 등과 관련된 감정이라는 이유만으로 표출하거나 받아들이기보다 억압해야 하는 감정으로 여겨졌다.


친구가 나보다 수능을 잘 봤을 때도, 동기가 나보다 빨리 직장을 얻었을 때도, 함께 스터디하던 멤버가 더 좋은(이른바 '네임밸류'와 연봉이 나은) 회사에 입사했을 때도, 회사동기가 더 큰 회사로 이직했을 때도 느꼈을 비슷한 감정들을, 그때는 왠지 느끼면 안 되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부터 절대 명제처럼 되어버린 "부러움 면 지는 거다"라는 말도 부러운 감정을 억압하는 데 한 몫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과 자신의 처지를 불필요하게 비교하며 부러움을 자존감을 낮추는 도구로 사용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연스럽게 들 수 있는 부러운 감정 자체를 패배와 동일시하는 것은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수용하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자기인식의 첫 단계는 자기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자기인식에도 젬병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감정적 맹점'을 갖고 있다. 이는 보통 한 개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것으로 여기게 된 감정과 관련이 있다. 우리 안의 맹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몇 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과 실패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들은 어떤 감정이 우리를 위축시키는지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론적으로는 원인을 이해하면 즉시 그걸 변화시키는 작업에 돌입할 수 있다.

-마크 맨슨의 '신경끄기의 기술' 중-


진짜 내 감정을 읽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은 내게 주어진 소중한 쉼의 시간 동안 얻고 싶은 변화 중 하나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도덕성의 저울에 자주, 거의 매번 올렸고,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은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쉼 없이 했다.


그래서 앞으론 팍팍한 세상살이에서 나 자신만이라도 스스로를 조금 지켜봐줘도 될 것 같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재단하지 않도록. 가끔 누군가가 부럽다면 그 마음을 온전히 기쁘게 전달하련다. 부러운 건 지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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