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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진 날 봐요

날 보고 웃어요

by 꽃님

쿵쿵닥닥 쿵쿵닥닥 쿵쿵닥닥 쿵쿵닥닥 짠! 짠! 짠! 짠!

LP판이 돌고 있다. 가슴을 떨리게 하는 박자가 흘러나오고 곧이어 맑은 남자의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Billi jean

is not my lover

She's just a girl

who claims that

I am the one


마이클잭슨의 빌리진은 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어나게 했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맑게 떨리는 목소리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의 엉덩이 튕기는 춤을 열심히 따라 했다. 부드럽게 뒤로 미끄러지듯 걸어가는 문워크도 틈만 나면 연습을 했다. 급기야는 서점에 가서 마이클잭슨 춤을 배울 수 있는 책을 사서 열심히 읽으며 그의 기술을 하나씩 마스터하기 시작했다.


5학년 6반 학예회가 열렸다. 아이들은 각자 준비한 것들을 뽐냈다. 콩트부터 악기 연주, 노래까지 다양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난 카세트테이프를 사회자에게 건네며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큰오빠(나와는 15살 차이 남)의 옷장을 뒤져서 검은 양복과 모자를 찾아냈다. 소매랑 바지 길이가 좀 길었지만 바지단과 소매를 두어 번 접고 입었더니 제법 마이클잭슨 같았다.


쿵쿵닥닥 쿵쿵닥닥 쿵쿵닥닥 쿵쿵닥닥 짠! 짠! 짠! 짠!

음악이 시작되었다.

오른손은 머리 위 모자에, 왼손은 박자를 맞추며 손가락을 튕기고 골반을 박자에 맞춰 앞뒤로 튕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멋지게 문워크도 하고 한 바퀴 몸을 돌리며 열심히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어느새 반아이들 모두 일어나 조금이라도 춤추는 내 모습을 가까이서 보겠다고 앞으로 모여들었다.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연예인이 된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나의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아이들은 반장인 내가 마이클잭슨 춤을 출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지 모두 소리를 지르고 열광하며 박수를 쳤다. 그 순간 마이클잭슨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꽃님이 아버지, 꽃님이 아버지. 여보. 왜 나만 혼자 남겨 두고 먼저 갔어. 나도 데려가지. 나도 데려가요! 나도 데려가."


엄마가 울고 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언니한테 듣기론 엄마가 아침부터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해 저렇게 1시간이 넘게 울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삶이 지치고 힘이 들 때면 술을 마셨다. 잘 못 마시는 술을 어쩌다 마시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신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빠를 애타게 부른다. 목놓아 부르면 잠시 잠깐 아빠가 와서 엄마를 한 번만이라도 꼭 안아주고 가주길 간절히 바라보기도 했다.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수건이 다 젖을 정도로 울고 있는 엄마를 바라봤다. 초췌한 엄마의 모습은 가냘프고 외로워 보였다. 고단한 엄마의 삶을 내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엄마는 수건에 코를 팽하고 풀더니 나를 슬픈 표정으로 쳐다봤다.


"빌리진, 날 봐요. 휘저서 껌. 다라이 아이 더원."


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이클잭슨의 빌리진을 엉터리 영어발음으로 부르며 열심히 춤을 추었다. 엉덩이를 더 우스꽝스럽게 움직이고 문워크를 하고 브레이크 댄스를 추었다. 엄마는 내가 춤을 추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조금씩 미소를 지었고 같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다. 엄마의 슬픔이 걷히고 있다.


"어이구, 우리 딸 잘한다. 언제 이런 건 다 배웠어."


"빌리진 여사님. 날 봐요. 날 보고 웃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내가 옆에 있어 줄게요."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 부르며 춤을 추는 나를 보고

슬픔으로 가득했던 엄마가 웃는다. 행복한 미소를 띠며 나를 보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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