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과 흑색

상극 속 성장과 삶의 필연

by 송달

물과 불, 상극만이 진짜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우리는 상생을 좋아한다.

연인, 친구 관계에서도 "우린 잘 맞을까"를 궁금해한다.

서로 상생의 궁합이냐는 뜻이다.


상생은 필연이다. 나무는 물이 필요하고, 불은 나무를 태운다.

음양의 이치가 그렇다고 기준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일은 그때마다 중심이 이동한다.

이렇듯 상생은 생명을 잇는 순환 구조다.


몸도 그러하다. 겨울에는 불의 기운이 생명력을 더한다.

하지만 여름에는 더위가 기성을 부리는데도 불을 더한다.

이것은 상생과 극상생 모두 생명의 원동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부부도 처음에는 도파민의 과다생성으로 상대가 좋아 보인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점차로 본래 인간의 면모를 보인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상극의 관계로 변화한다.


인간관계도 힘들 때, 가까운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면 외면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도 세월이 흐르면 혈육의 온기마저 희미해진다.

어제의 상생이 오늘의 상극이 되는 것이다.

결국, 각자의 환경이 좋을 때만 원만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것이 상생 관계의 일면성이다.




삶에 진짜 힘은 상극에서 온다.

까다로운 완벽주의자는 일처리가 명확하며, 상대의 도움 요청을 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부부도 시련이 닥치면, 배우자 중 한 명이 수습에 나선다.

평소 말다툼을 하던 부부도 어려움이 닥치면 당연하듯 발 벗고 나선다

상생이든 상극이든 결국에는 삶의 중심이 되는 상생에 근본을 두고 있다.


몸이 아플 때도,

생명을 살리는 건 상극의 독성물질이나 수술이라는 칼이다.

복어 독성도 추출하여 항암에 사용한다고 한다


나무와 채소도 칼이 닿으면 상하지만,

상극인 칼에 의해 음식조리가 되고, 가구도 만들어진다.

완전한 사용 가치란, 상극의 충돌에서 진정한 상생의 이치를 볼 수 있다.




결국 세상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나와 맞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기준만이 있을 뿐이다.


상극의 계절에는 물질이 괄목할 만큼 성장한다.

변화의 시대에는 자연재해나 전쟁등으로 사회나 물질세계에 큰 변화가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라고.


편안함을 추구할 땐 나와 맞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좋다.

가정이나 기업이 문제없이 흘러갈 때는,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경주최부자, 전라도 운조루는 오랜 세월 동안 가문을 유지하고 있다.

상생의 기운을 물질에 휘둘리지 않고, 배품과 나눔을 함께하고 있다.

그 구심점 역할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그들만의 쉽고도 어려운 비결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성장만을 말한다면, 나와 충돌하고 눈에 거슬리는,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변화를 조언하고 실행에 옮기는 인재등용이, 또 다른 상생의 편안함을 위한,

한 시대를 준비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자연도 상생 뒤에는 반드시 상극의 시기를 통해, 균형을 다시 맞춘다.

그 시점을 늦추어 보려고 수많은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노력은 미미하다. 강대국들의 흉내내기로 일관되어 가고 있다.


결국, 자연은 어느 시점에 또 다른 방식으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원시반종이라는 말을 한다.




'맞음'보다 '다름'이, 삶을 더욱 진지하게 만들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내일을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자연은 상생으로 순환하지만, 인간은 상극으로 성장한다는 역설.

그 안에서 우리는 조화와 안정을 찾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불편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와 회복의 리듬 속에서,

나는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얼마나 다층적인지를 본다.

그 모든 불협화음속에 나의 미래가 있다.



사진: Unsplash의 Imam Kurniawan

작가의 이전글초심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