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원래 허하여 비어있다
일상 속에서 "좋다"와 "싫다"를 너무 쉽게 말한다.
그 감정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좋고 싫음은 고정된 감정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흐름에 가깝다.
어떤 물건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싫다”라고 말하던 사람이,
가격이 크게 할인되자 갑자기 “그래도 괜찮네”라며 태도를 바꾼다.
처음엔 마음에 들었던 어떤 일이,
기분이나 환경이 변하면 쉽게 “이젠 싫다”로 뒤바뀐다.
이렇듯 감정은 명확한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뉘앙스와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맞고 틀림,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경계는 허상이다
삶의 중심에는 사실상 ‘맞다’와 ‘틀리다’도 없고,
‘된다’와 ‘안 된다’는 이분법적 잣대 역시 애매하다.
모든 것은 자기 기준에 의한 균형이 맞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세상일에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법조문조차도 예외가 없다 하지 않지만,
끝에는 항상 단서 조항이라는 여지를 남긴다.
유권해석과 맥락에 따라 어느 쪽으로든 해석 가능한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결국은 이해관계의 힘, 관점의 균형에 따라 문제가 풀려 나간다.
사업가들, 이른바 "영업의 왕"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이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들은 거래 상대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며
성사 가능성이 없는 계약조차 성사시킨다.
“세상에 안 되는 건 없다”는 그들의 말은 단지 허세가 아니다.
그들은 가능성의 문을 닫지 않는 태도로 움직인다.
어느 그룹의 회장이 웃으며 말했단다.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딱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골프, 또 하나는 자식.”
그 두 가지는 재물과 권력으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의미다.
역시 인간의 마음은, 때로 하늘이 관장하는 일처럼,
쉽게 움직이지도, 강제로 바뀌지도 않는다.
마음먹기? 아니, 마음은 가동하는 것이라 흔히들 말한다.
“세상사, 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마음은 먹는 것이 아니라, 가동하는 것이라고.
마음먹는다는 말은 다름 아닌 ‘소원’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평소에 쉽게 하지 않던 결심을 할 때,
혹은 막막한 현실 앞에 뚫어야 할 길을 찾을 때,
그때 비로소 마음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로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상사 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 안 먹고 바보처럼 살고 싶다.”
그 바보스러움 속에
복잡한 세상사와 조건에 휘둘리지 않는
자유와 미련 없는 평화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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