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침묵

호흡의 온기를 느껴보았는가

by 송달

죽음의 기운을 감지하는 순간


가끔 정신이 묘하게 어지럽고,

현실과 꿈의 경계가 아득해지는 듯한 환각적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마치 세상과 어긋난 차원에 잠깐 발을 들이는 느낌이다.


이어서 밀려오는 속의 메스꺼움은 이유 없는 육체의 반응처럼 다가온다.

이런 이상한 감각에 대해 해답을 찾으려 애썼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한 글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 글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생일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와 연결된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기운의 파동을 감지한다.”


진실인지, 우연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 말에 이상할 정도로 끌렸다.

이후로 그 기운이 느껴질 때면 마음속으로 조용히 누군가를 배웅하게 되었다.


‘누군가,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세상 부름을 받고 왔다가 돌아가는구나.’





삶의 순서와 이별의 무질서


쌍둥이는 한 부모의 뱃속에서 태어난 생명이기에 기쁨과 슬픔을 나눈다 한다.

그런데 하늘의 기준으로 보면,

같은 생일을 가진 남남 또한 ‘일기지소생(一氣之所生)’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육체로는 남남이지만,

같은 시공간의 기운 아래에서 이 세상에 첫발을 디딘 존재들이다.

삶은 태어남의 순서를 지키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부모의 은혜로 이 세상에 나왔으나,

떠나는 순간만큼은 스스로의 삶이 이룬 무게와 때에 따라 각기 다르게 돌아간다.

그 이치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어쩌면 너무나 정교한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는 누가 죽었다는 말을 들어도 마음에 아무 감흥이 없었다.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도, 감정이 더 깊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덤덤해졌다.

삶의 희로애락을 너무 많이 겪은 탓일까, 아니면 죽음이라는 것이 더는 특별한 사건이 아닌,

자연의 흐름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일까.


어떤 사람은 말하곤 한다.


‘이제는 좀 데려갔으면…’

삶이 벅차거나 허망해질 때,

죽음이 두려움이 아닌 해방처럼 느껴지는 나이도 분명 있다.



사진: Unsplash의 360 floralfl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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