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위로

평범함도 사치일까

by 송달

우리는 노력으로 살아간다.

움직임 자체가 노력이며, 일하든 놀든 결국 마음을 다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슴이 답답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기준조차 없다.

그저 혼란스럽고 무의미한 질문만 되뇌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괜히 섭섭하고, 미운 생각들이 나를 위로하며,

주어진 일을 구역구역 해낸다.

누구는 로또를 맞고, 누구는 유명인이 되지만,

나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소소하게, 굴곡 없이,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도 힘든 걸까.




주위를 보면 다들 행복해 보인다.

나는 걸어가고 있지만 몸에는 힘이 없다.

그저 교감신경에 의해 움직이는 듯하다.

목적이 있어도 목적 없는 사람처럼 걸어간다.


현실이 나아지지 않아도, 꿈을 이루지 못해도,

그저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에너지 넘치고 희망 가득한 삶의 묘약 같은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설화처럼, 저승사자의 착오로 죽음을 맞은 사람이

옥황상제에게 소원을 말하라 했더니,

“비 새지 않는 작은 집, 토끼 같은 자식, 현모양처 아내와 걱정 없는 삶”을 말했더란다.

그랬더니 옥황상제가 말하길,

“그런 삶이 있다면 내가 자리를 내어주고 그 삶을 살겠다.”

웃긴 얘기지만 마음 한편에 남는 말이다.




이 순간에도 삶을 포기하는 이들이 있다.

IMF 때, 오히려 가정이 화목해지고 이혼율이 줄었다는 말처럼,

고통 속에서 진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삶에 묘약이 있다면 나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착하게 살면 무시당하고 가난해지며,

잘 살아보려 하면 사기꾼 소리를 듣는다.


퇴근길 술 한 잔, 게임, 운동조차도

삶의 고통을 잠시 잊고자 하는 탈출구다.

멘토의 조언, 오늘의 운세, 종교의 위안, 행운을 부르는 습관.

하지만 삶은 노력에 비해 너무나 피드백이 없다.




그래서 궁금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노력 없이 부를 얻을까.

그들 스스로도 설명을 못 한다.


“그냥 어느 날부터 돈이 들어왔다.”

“돌아가신 부모님 덕분이다.”

“배우자 덕이다.”

“신이 도왔다.”


졸지에 부자가 된 ‘졸부’들이라며 조롱받지만,

그들도 본인들이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반대로 돈이 흩어질 때도, 아주 미미한 실수 하나에서 시작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로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 모든 일엔 분명 이유가 있다.




부의 흐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바로 ‘땅’, 즉 명당이다.

‘떵떵거리며 산다’는 표현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정치와 경제, 부의 중심에는 좋은 땅이 있었다.

지금의 도시도 그 옛날 명당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터전이다.


심지어 현대 정치에도 풍수에 따른 천도설이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 사주, 풍수를 미신이라 치부한다.

기라는 말조차도, 외국에서 먼저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쓰기 시작했다.


과거시험 과목으로 존재했던 사주와 풍수는,

이제는 정식 학문으로 자리 잡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 틈을 비상식적 말들이 채우고, 그 피해는 결국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무작정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자.


돈 많고 잘 나갈 땐 모든 게 미신처럼 들리지만,

막상 힘들어지면 그들도 돌아보게 된다.

흥망성쇠는 순리다.

그 순리를 인정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단절된 섬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엮여 있는 하나의 그물망이다.


금융회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주와 풍수를 이해하려는 것도 곧 사업의 일환이다.

삶과 사업이 따로가 아니라 하나다.”

그 순간에 필요한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또 다른 순간을 위해 남겨두는 삶.


아이폰의 성공은 다양한 장점을 모듈화 한 데서 출발했다.

삶도 마찬가지다.

선배들의 삶, 성공자들의 경험을 모방하고 받아들이며

우리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인생의 방식 아닐까.


삶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다.

많이 안다고 더 나은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산다고 반드시 보상받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왜 그런가?"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기와 사주, 풍수와 명당.

그 모든 이론은 결국 하나의 물음에서 시작된다.

"어떻게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라는 간절한 바람.


우리는 운명을 믿지 않아도 된다.

다만 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나라는 존재 또한 이유 있는 이유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사진: Unsplash의 Paige C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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